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6쪽

대부분 인간은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 춤추고 방황하고 비틀거리며 땅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살아간다고. 하지만 별을 닮은 인간도 있다고. 별을 닮은 인간은 확고하게 자신의 궤도를 걷는다고. 어떠한 강풍도 별을 닮은 인간을 날려버릴 수는 없다고. 자신의 내부에 자기의 법칙과 자기의 궤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별을 닮은 인간이다.


 별을 닮은 인간이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도, 여러 번 했던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법칙과 자기의 궤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꿈꿨다기보다 '빛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 같다. 별은 어느 순간에도 추락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해도 그 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별을 닮은 인간이고 싶다. 나의 궤도를 확고하게 걷는, 마르고 지는 일을 염려하는 나뭇잎처럼, 혹은 마르고 지는 날을 생각조차 못하는 나뭇잎처럼 덧없고 싶지는 않다. 기왕에 덧없고자 한다면 별의 마지막처럼 화려하게 우주의 한복판에 거대한 빛무리를 남기고 사라지고 싶다. 

 별도 흐른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에 밀려 흐르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질서, 내부의 법칙에 따라 자기의 길을 가는 것 뿐이다.


97쪽

나는 꽃이기를 바랐다

그대가 조용히 걸어와

그대 손으로 나를 붙잡아

그대의 것으로 만들기를


 이렇게 답하기로 했다.


나는 꽃이기를 바랐다.

그대가 조용히 다가와 

그대 눈으로 나를 담아

잠시 그대의 소유로 하기를

 


102쪽

한 사람의 시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시인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고. 시인을 향해 이론적인, 또는 윤리적인 결론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시인이 들려주는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밭을 지닌 사람은 작품이 지닌 고유의 언어만으로도 자신이 바라는 모든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 나는 관계에 서툰 편이다. 다른 무엇보다 타인에게 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하는 부분이 유난히 서툴다. 매일 혹은 순간순간 뭔가를 끄적이는 이유는 그 서툶을 메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할 줄 아는 게 쓰는 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헤세는 유명한 사람이다. 많은 작품을 소설, 시, 그림에 이르는 넓은 분야에서 두루 남겼고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헤세는 그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지음(知音)을 가졌을까?"

위에 발췌한 문장은 「카프카 해석」에 적은 것이라 한다. 헤세는 카프카의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이해했을까? 

감히 추측해 적자면 헤세는 카프카의 작품 속에서 '말하지 않은 말'을 들었던 것이 아닐까? 

 그 소리를 아는 사람 사이에서만 통하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단 몇 줄의 시 속에서 나눴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헤세 자신도 그처럼 이해받기를 원했으리라.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일목요연, 자세하고 많은 설명을 통해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은 사실 진정한 이해에서 오히려 멀어지는 길이 아니던가? 정말 이해하는 사람, 진정한 이해자라면 시인의 메시지를 어떤 왜곡이나 분해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만의 답을 얻는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마음밭을 갖춰가야겠다는 마음만 가득하다.

 


110쪽

독특하게 여기는 밑줄이 아닙니다. 사진이거든요. 

 


 

 인파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한적한 풍경입니다. 혼자 혹은 두서넛이 모여 신문을 읽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 그저 보기만 해도 느긋함이 옮아오는 그런 사진입니다. 그런데, 오호, 검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눈에 띄었어요. 

뭔지는 모르지만 테이블의 커피인지 혹은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노트, 어쩌면 헤세의 책을 손에 들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여인입니다. 

 누구일까요? 

한참을 들여다보고, 표지 뒤의 날개를 펼쳐보고 하면서 비교분석한 결과 작가이신 정여울 님인 것으로 확신합니다.

 낯선 곳이건만, 그 풍경에 녹아들어갈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 세계와 닮아있다는 것이겠지요.

헤세를 찾아간 길, 정여울 작가님의 헤세 사랑을 아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네요.

 


116쪽

누구든 제대로 말할 기회를 얻어

진심으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책들에 관한 메모


 

 말할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다.

진심으로 이야기하기는 이야기 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진심을 전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사람, 누군가를 사랑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울 수밖에 없어지고 만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

 제대로 말할 기회를 늘 찾아야 하고, 진심으로 진실된 이야기를 해야만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왜 이 문장이 '책들에 관한 메모'에 들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책들에 담긴 이야기 가운데 어떤 이야기가 헤세에게 진심으로 다가왔던 게 아닌가 할 뿐이다.

 


161쪽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 때, 그 첫 느낌은 반가움보다 공포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영혼을 찍는 초고화질 카메라라도 가진 것처럼 내 마음 구석구석을 엿보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일단 경계하게 된다. 그 사람은 내 상처를 치유하고, 내 안의 가장 밝은 빛을 끌어낼 가능성을 지닌 사람인데도,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서 도망치고 싶어한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쩌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삶에 도래하지 않을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적은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나는 법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기적으로 느끼지 못하거나, 발견하지 못했을 뿐인 거다. 

 그런 만남이 있다면 분명 나 역시 공포로 어디로든 숨어버리려 할 것이다. 두터운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무기까지 손에 쥐고 경계를 해온 사람일 수록 그 공포는 커질 것이고 도망은 더 빠를 것이다. 

 하지만 그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는 동안은 안타깝지만 영원히 그 상처가 나을 일은 없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단정이자 확신이다. 

마주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공포일 수 있고, 설렘일 수 있고, 눈부심이거나 어두움일 수 있다. 

 보통의 우리는 도망치기에 빠르고 맞서기에는 약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면 공포를 느꼈을 때 도망치지 않고 상처와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오랜 상처에서 놓여나게 되는 것 아닐까.

 


251쪽

나의 깨달음은 오직 나만이 개척할 수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어야 했다. 그는 최고의 스승을 눈앞에 두고서야 알게 되었다. 깨달은 자를 매일 본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님을. 최후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스승이 아니라 고독한 자기 인식이므로.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고 한다. 하지만 외로움은 경계해야 할 것, 타파해야 할 것, 벗어나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왜 사람이 외로운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돌아오는 답은 "나이기 때문이다"라는 거다. 나의 인생은 누구도 먼저 가보지 못한 나만의 길이다. 그런 길을 가는데 외롭지 않다면 오히려 "자신을 삶을 살고 있는가?"하고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청출어람이라 했지만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가 나오기는 무척 어렵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스승을 뛰어넘을 수 없는 능력의 부족이라기보다 스승에 대한 예의, 그러니까 "어찌 제자가 되어 스승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말인가?"하는 생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스승의 길에 자기를 가져다 붙여놓은 셈이라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고, 많은 것을 알게 되더라도 자신의 삶을 살다 갔다 말하기 어려워진다. 외로움을 두려워 말자.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나만의 길을 가는 중이라는 걸 잊지 말자.

 최후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고독한 자기 인식이라지 않는가.

 


337쪽

이 드넓은 세상에서 구름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나보다 더 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세상에서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사물이 있으면 나에게 가르쳐다오!

『페터 카멘친트』


 

  헤세는 자신을 구름에 비추었다고 한다. 위에 적은 것처럼 '그'보다 더 구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왜, 흔히 아이들이 누가누가 더 사랑하는가를 경쟁할 때 뭐라고 말하던가?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태양만큼' 하는 식이 아니던가?

이 말들이 의미하는 바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많이"라는 말이기에 그보다 더 구름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없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더라도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다른 이 역시 자신이 아는 한 가장 많이 구름을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구름을 사랑한다. 홀로 물들지 않는 구름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서로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음을 사랑하고, 섞이지 않음도 사랑한다. 무엇보다, 미련도 없이 흩어질 줄 알는 그 넉넉한 무던함이 좋다.

 


401쪽

당신이 좋은 것은 아마 나와 비슷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나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올 여름에는 이 말을 써먹어보자.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는 좋아한다고 말하고, 나와 다른 여자(남자)에게는 사랑한다고 고백해보자.

나는 차마 못하겠으니, 누구든 시도해보고 그 결과를 일러줬으면 좋겠다.

이 문장에 공감했다. 좋아하는 것이나 사랑하는 것이나 사실은 이유가 없다.

비슷하기 때문에 좋아하고, 닮지 않았기에 사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의 애정의 이유가 아닌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닮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함께 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