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책방 - 잠 못 드는 밤을 위한 독서 처방전
조안나 지음 / 나무수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감상을 자주 남기지만 타인의 감상을 읽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렇게 감상이 하나의 책으로 완성되어 나온 경우라면 더더욱 그 불편함이 커지곤 한다.


'서평'과 '리뷰'와 '감상'은 비슷하지만 모두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아직까지 책을 '평가'할 분명한 기준이 없기에 서평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그래서 보통 리뷰 혹은 감상이라고 적는다.

이 책, 리뷰에 대한 리뷰 역시 사사로운 감상을 담은 감상문에 불과하다.

책 속에 담긴 작가 조안나의 감상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감상에 대해 떠올리게 될 딴 생각은 그대로 내보낼 생각이다. 


결국 감상은 돌고 돌아 감상으로 돌아온다. 자유로움, 서평의 정형성을 벗어나서 쓸 수 있는 감상문의 최대 장점이 아니던가.


<달빛 책방>이라는 제목은 저자인 조안나의 블로그 이름인 모양이다. 분명 멋스럽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에 조금의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

이 책에는 모두 마흔여덟 권의 책에 대한 소개가 담겨있다. 정확히는 서른여섯 권의 소개와 열두 권의 간략한 소개라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서둘러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을 적자면 이렇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나는 편집자는 되지 않을 셈이다. 차라리 모진 비평을 쏟아붓는 비평가가 되리라."


저자는 자신을 '간서치'이자 '편집자'라고 말한다. 한 때는 창작을 꿈꿨으나 이제는 그 꿈을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고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읽고 생각하고 적기를 그치지 않는 것을 보면 단념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싶다.

제대로 국어국문과나 문예창작과의 과정을 밟지 않았던 나는 그 모든 과정을 거쳐서 체계를 만들고, 그 체계 위에 자신만의 개성을 쌓아올린 저자들을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고 있다. 

그들이 딛고 있는 발판인 정보와 지식과 체계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말은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지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 것도 배우지 않은 것이나 다름 없는 나와 수 년 간 '많은 것'을 배웠을 그들 사이에 차이가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약간의 부러움을 갖고 이 책을 읽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부러움은 역시 '약간'에 부러움일 뿐이다. 보통은 나 스스로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가끔은 부끄러움도 느끼면서 얻어낸 나름의 발판에 자부심을 느낀다. 

다만, 아직도 그 발판이 위태로운 모양을 하고 있고 높지도 단단하지도 않다는 것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정규 교육'에 대한 견해를 적은 이유는 단순히 '부럽다'고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교육의 결과 자연스럽게 생기는 크고 작은 틀에 대해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의 이런 내용은 이렇게 '해석해야' 옳으며, 그 이유는 '믿을 만한 사람이 번역'했기 때문이라는 식의 근거는 사실 내게는 그다지 큰 설득력을 갖는 말이 아니다.

일단 모든 작품을 의심하고 읽는 습관이 있는 나는 그것이 번역서일 때는 특히 경계의 수위를 높인다.


나는 파수꾼이다.

그런데 이 파수꾼에게는 아군이 없다.

모든 출입자, 그러니까 밖에서 들어오려는 사람 뿐 아니라 이미 안에 있는 사람이 밖으로 나가려 할 때에도 감시의 끈을 놓치 않는다.

이렇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나는 '감상가'라는 이야기다. 

파수꾼이자 감상가, 그게 책읽는 나의 정체성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서른여섯 권 가운데에도 처음 들어보는 제목들이 제법 많다. 

이런 작가가 있었는지, 그 작가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 낯익다고 여겼던 작가들이 새삼 생소하게 여겨졌다.

그런 점에서 이런 책들은 도움이 된다. 

'매개', 그것도 솔직한(아마도) 인상과 그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통한 소개는 그 책에 대한 저항이나 거부감 혹은 낯섦을 상당부분 덜어준다. 

덕분에 좋은 작품, 마음을 혹하게 하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새삼 그 작가에 빠져들게 되는 일도 있는 것이다.


모든 독자에게는 취향이 있기에 "왜 이런 책은 없지?", "이 작가도 좋은데 이 사람은 안 읽는 모양이네?", "뭐야, 나랑 생각이 전혀 다르잖아."하며 작자의 감상에 비판을 하는 일은 사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가는 수수께끼를 낼 뿐 수수께기의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정말 독자'라는 말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이방인>이나, <그리스인 조르바>, <데미안>에 대한 생각은 내가 읽고 느낀 것과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런 것이 다른 사람의 감상을 읽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구나."

"저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저런 근거가 있구나."하며 새삼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생각이 가 닿는 것이다.


오래 전 책을 읽을 때 "그 책 속에서 '단 한 줄'이라도 마음을 빼앗는 문장을 발견한다면 그 책을 읽은 것은 잘한 일"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적었었다. 

정말 그렇다.

이 책은 물론 날 것 그대로의 감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잘 다듬어지고 골라진 봄의 보드라운 흙 같은 느낌의 글이다.

손이 많이 간 만큼 생생함은 떨어지지만 그 위에 자신의 생각을 심기에 적절한 잘 닦여진 길이라는 거다.


아직 어떤 책을 읽을지,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생각만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 매력적인 중매쟁이가 되어줄 그런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도 누군가가 '이 책을 읽어주세요'하고 요청할 수 있는 공간을 블로그에 만들어 둘까?"하고 말이다.


한 번 해봐야겠다. 

다른 사람이 요청해서 읽게 되는 기분은 어떤지, 그때는 어떤 식으로 어떻게 쓰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게 색다른 양념처럼 글쓰기의 맛을 풍요롭게 해줄 것만 같다.


읽고 싶으면 그 책을 펼치면 된다.

생각했으면 움직이면 된다.

그렇게 책을 앞에 두었을 때는 단순해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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