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읽는 12가지 코드 - 통찰력 있는 역사 읽기를 위한 새로운 한국사
신명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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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이야기를 해야겠다.

중국은 자국의 역사가 아닌 것조차 자기 역사로 만드는 일에 인력과 비용타국과의 마찰까지 감수하고 있다일본은 역사 왜곡과 책임 회피사과와 회유와 동시에 기만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하지만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는 오히려 존재하는 기록마저 검증되지 않았다는 식의 논리로 우리 역사에서 빼버렸다 한다.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야기다.

 

우리 역사는 길고 또 방대하다하지만 그 역사를 보여주고 증명해 줄 기록과 유물은 턱없이 부족하다역사를 대할 때 우리가 끊임없이 와 어떻게라는 의문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다민족주의에 입각해국수주의적 사관으로 우리 입맛에 맞게 역사를 왜곡하라는 것이 아니다. ‘증명되지 않았다는 일방적인 주장은 이권 혹은 명예가 걸린 타국이 무턱대고 우겨대는 주장일 수는 있어도 우리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료가 적고 증명되지 않았더라도 우리 역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증명해 나가는 것이 혹 아닌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잃는 것이 적은 태도다.

 

<한국사를 읽는 12가지 코드>는 여러 의미로 편협한데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솔직히는 얼마 읽지 않았을 때부터 이 책을 덮을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었다.

통찰력 있는 역사 읽기를 위한 새로운 한국사라는 부제가 무색할 만큼 과거 역사학계의 주장을 받아들이고반복하고거듭 의심스러운 견해를 확정된 역사인 것처럼 서술하는 데는 질릴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말하는 12가지 코드가 무엇인지는 사실 의미가 없다실제 우리가 중요시해야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첫째로 이 책에는 역사를 왜 읽는가?”하는 문제를 제시하지 않는다.

왜 읽는지를 모르고 어떻게 읽을까?’를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다이 책을 읽는 일이 시작부터 의문스럽게 여겨졌던 이유다.

 

이 책은 역사책답지 않게 강역을 그린 지도나 현대와 비교확인해 볼 수 있는 영토의 구분을 담은 지도가 없다그마나 겨우 실린 네 점의 지도는 21쪽에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109쪽에 하멜표류기, 313쪽에 한성부지도, 328쪽에 도성도 정도다.

현대인에게 우리 역사를 읽는 코드를 소개하겠다는 저자가 한국사의 강역 변화와 주변국과의 관계를 가장 알기 쉽게 한 눈에 보여줄 지도를 빠뜨렸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이런 상식 밖의 부재는 이런 의문으로 채워진다.

이 사람이 고대사의 강역 문제를 불거지게 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지도를 싣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것인데중국이 주장하는 고조선과 고구려부여와 발해의 강역과 우리나라 역사학계 주류가 주장하는 강역비주류가 주장하는 강역이 모두 제각각으로 일치하지 않아 논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골치 아파질 일은 피하는 것이 제일이라지도를 싣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게 된 것이다.

 

[고조선의 도읍지 왕검성]

316~317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평양성은 옛 한나라의 낙랑군이다.”라고 한 신당서의 기록을 인용하기도 했다결국 일연은 위만조선의 수도인 왕검성이 곧 평양성이라고 생각한 셈이다이렇게 본다면 일연은 단군조선의 처음 수도는 평안도의 왕검성이었다가 후에 황해도의 구월산으로 옮겼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런데 일연은 그렇게 판단했을지 모르지만정작 왕검성의 위치를 놓고 한나라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결정적 차이점은 응소처럼 왕검성이 요동지역에 있었다는 주장과 반대로 신찬처럼 왕검성이 한반도 지역에 있었다는 주장이다논쟁이 격렬하다 보니왕검성이 처음에는 요동지역에 있었다가 나중에 한반도 지역으로 옮겼다고 하는 절충의견이 제시되기까지 했다각각의 의견은 나름대로의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있어서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쉽게 판결나지 않고 있다.

단재 신채호는 단군조선의 왕검성에 대하여 획기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단재 신채호의 획기적인 의견이란 왕검성이 중국 대륙 내 하얼빈’ 등 세 곳에 위치해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일연이 적은 것처럼 평양성이라거나황해도의 구월산이라는 주장은 중국 측의 억지 주장일 뿐이고일제 사학자들이 우리 역사를 축소하기 위해 그렇게 적었다는 것이 신채호 선생의 생각이다.

  319쪽 6

예컨대 평양은 한반도의 평양을 지칭하지만 동시에 만주의 하얼빈을 지칭할 수도 있고 요동의 안시성을 지칭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단재의 의견에 대하여는 물론 여러 면에서 의문이 들 수 있다하지만 단군조선을 비롯한 고조선의 수도가 반드시 하나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송두리째 부정한다는 면에서 단재의 의견은 큰 의의를 가진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천여 년이 넘도록 왕검성의 위치를 놓고 요동이냐 한반도냐 논쟁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수도는 꼭 하나여야 한다는 선입관 때문이었다고조선의 수도가 여러 개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왕검성의 위치 논쟁은 쉽게 타결될 수도 있다사실 유구한 한국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수도가 언제나 하나였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당시의 지리적정치적 상황에 따라 복수의 수도가 존재했던 시대가 적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낀 것은 저자의 위선적 태도다위선이라 말하면 지나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굳이 위선이라 적은 이유는 이 책에서 여러 차례 신채호 선생의 의견을 인용하고 또 위에 인용한 것처럼 큰 의의를 가진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거의 모든 사실을 사실 무근’ 혹은 민족사학자의 작위적 해석’, ‘일제에 대한 미움에서 내놓는 주장’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국시대라는 표현을 본문 전체에서 거듭 사용하고고조선의 강역을 적으면서 일연의 견해를 좇는 듯 하면서 소극적인 주장을 펴는가 하면김부식에 대한 신채호 선생의 비난이 지나치다며 변론하는 논거도 불분명하다.

32쪽 민족주의 사학의 거두 단재 신채호 선생이 사대주의자의 괴수’ ‘화랑을 원수처럼 여기고 배척하는 유교도 중에서도 가장 속이 좁고 엄하고 잔혹한 인물’ ‘외국의 문화로써 본국을 정복하고 유교로써 국교를 대신하려던 자’ ‘다만 중국을 숭배하는 자’ 등으로 비난해 마지 않던 사람이다김부식의 동생인 김부철 역시 당시 유학을 공부하고 중국문명에 경도되어 있었다바로 그런 김부철이 대의명분을 거부하고 현실론을 주장했다는 것이 놀랍다금의 군사력이 무시하지 못할 수준까지 올랐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35~6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사연구초를 썼던 1920년대는 일제강점기였다독립운동가들에게 일제강점이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명분론이 필요했다그렇기에 단재 신채호 선생에게 현실을 핑계로 금나라에 대한 사대를 주장한 이자겸이나 김부식 일파는 친일파나 매국노의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입장에서 본다면 김부식에 대한 단재 신채호의 평가는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한국인이라면 대의와 명분을 위해 가능성의 싹을 완전히 잘라낸 김부식의 행위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가장 분노할 일은 <삼국사기>를 쓰는 과정에서 중국에 불리한 일들은 삭제하거나 축소하고그 자료들을 없이 한 것이며(그 당시 쓸 수 없었다면 왜 남겨놓는 것마저 용납하지 못했던가정말 옹졸한 사람이다), 중국에 거역하는 일이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는(같은 민족까지도 말살하는태도를 비판하는데 부당하단 말인가?

 

역사를 삐뚜름하게 보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넓게 보자는 의미에서 김부식이 비판받는 것인데 오히려 식민지 당시의 민족사학자였기에 지나치게 혹평했다고 하는 것이 더 뒤틀린 시각이 아닌가 말이다.

 

그나저나 고조선의 강역을 찾아보다 우연히 국어사전까지 찾아보게 됐는데 여기서 다시 열통이 터지고 말았다.

일연의 <삼국유사속 지명들을 국어사전에서 찾은 결과다.

 낙랑군

명사역사

한사군(漢四郡가운데 청천강 이남 황해도 자비령 이북 일대에 있던 행정 구역기원전 108년에 설치되어 그 뒤 여러 번 변천을 거듭하다가 미천왕 14(313)에 고구려에 병합되었다낙랑.

 

구월산

명사지명

황해도 신천군과 은율군 사이에 있는 산단군이 은퇴한 아사달이 이 산이라고 한다높이는 954미터.

 

평양성

명사고적

평양의 주변을 둘러싼 성곽고구려 때에수도 평양을 방어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북성내성중성외성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축성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개축되었다.

 

아사달

명사역사

단군이 고조선을 개국할 때의 도읍평양 부근의 백악산 또는 황해도 구월산이라고 한다.

 

지명에 대한 기원이나 어원은 찾을 수 없고모든 강역이 한반도 내로 적혀있다적어도 아직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논란이 있는 지명이라면 국어사전 안에 여지를 남겨야 했을 것인데국어사전에서부터 우리 강역을 한반도로 국한하고 있으니 어떻게 이럴 수 있다는 것인가?

 

반도사관이니 식민사관이니 하는 것을 청산해야 한다고일제가 주입한 잘못된 사관이라고 하면서 그 사관을 바로 잡을 작고 기본적인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 우리 역사학계와 국어사전의 현실이다.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막상 직접 찾고 눈으로 보게 되니 몹시 실망스럽다.

 

사관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이 책은 한국사를 읽는 코드를 적는다고 하면서 기본적인 사관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은연중에 비치는 사관은 흔히 일제가 심어 넣은 식민사학의 잔재라 더 말할 가치도 없다.

앞서 적은 ?’와 어떻게?’와 맞물려 사관은 역사를 읽고 해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강역이 없고, ‘사관이 없고, ‘역사의 의미가 없는데 이 책의 12가지 코드가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고 해서 무슨 역사에 대한 더 나은 인식을 얻게 될 것인가?

 

더 나빴던 것은 무수한 오탈자다.

사실을 추구한다면, ‘확실함을 보여주려 했다면 도저히 이렇게 할 수 없을 만큼 성의 없는 오탈자가 너무 많았다.

꼼꼼히 한 자한 자 읽은 것도 아니고 서둘러 읽기를 마치고 평을 하겠다고 읽는 이의 눈에도 이정도 오탈자가 보였는데 하물며저자 본인이나 편집자들에게 보이지 않았다는 말인가?

물론 여럿이 여러 번 확인해도 확인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있을 수는 있다그런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어느 정도여야 가능한 이해라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견해를 지니고 있어도그 견해를 뒷받침하는 신뢰할만한 바탕이 없으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도 읽게 할 수도 없다.

아무리 커다란 건물도 그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무너지고 만다.

역사는 있다고 생각하고 증명하려고 해도 그 증명이 무척 어려워 보인다하물며 없다거나 아니라거나 하는 생각을 갖고 증명하려고 한다면 그 증명은 불가능한 것이 될 게 뻔하다.

 

저자와 출판사는 이러한 점을 명심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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