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군주론 - 이탈리어 완역 결정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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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규모가 작은 집단이거나 큰 집단이든지군주국이든 공화국이든 민주주의 국가든 모든 집단은 대표자 혹은 지도자를 필요로 해왔다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늘 이상적인 지도자상에 대해 고민했고지도자 역시 이상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이런 노력과 고민은 많은 사상과 이론학문을 낳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 가운데서도 잘 알려진 저서이고 특히 사자와 여우의 모습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이상적 군주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다폭군과 간웅들이 행하는 폭압과 교묘하고 간교한 술책들조차 군주의 위상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수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 비도덕적이다거나 무비판적이다라는 식의 비난의 여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자나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적인 독자에 불과하기에 그런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하자.

 

재밌는 부분을 발견했다마키아벨리가 프란체스코 베토리 로마 교황청 주재 피렌체 대사에게 보냈다는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270쪽 저는 메디치 가문의 군주들이 저에게 돌을 굴리는 작업부터 하라는 명을 내릴지라도 일단 채용부터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채용된 후에도 그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저 자진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만일 그들이 이 책을 읽기만 한다면 제가 15년간에 걸쳐 통치술을 탐구하면서 허투루 세월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장악하면서 자신을 공직에서 내친 상태에서 다시 공직에 복귀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로 써내려갔다하지만 결과적으로 생전에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죽기까지 공직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오히려 그의 저서는 자신이 헌정하려 했던 메디치 가문이 아닌 다른 나라다른 정부다른 시대의 사람들에게 더 널리 읽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군주론>은 어디까지나 군주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처럼 보인다. ‘사자와 여우의 면모를 모두 지녀야한다는 생각만 봐도 피지배자의 입장에서는 필요는 인정하지만 원하지는 않는 군주상일 것이기 때문이다사자는 난폭하거나 잔인하기 쉽지 인자하기 어렵다여우는 간교하고 교묘할지 몰라도 진실하지 않다흔히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외부에 대해서는 사자와 여우같기를 바랄지 몰라도 스스로에 대해서는 한 없이 인자하고 너그럽기를 바라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소망이기 쉽다는 것이다.


<군주론>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달라지고 제도와 체계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이상적 군주상에서 멀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완전한 지배와 피지배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유사한 통치와 피통치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라고 생각한다이러한 모습 혹은 구도는 완전한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는 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설사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하듯 소국과민한 형태의 나라에서조차 누군가는 그들을 대표해 나라 안팎의 일을 처리해야만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고모이게 되었을 때 많은 것거의 모든 것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아마 책임을 지는 누군가의 존재가 아닐까 싶다.

결국 마키아벨리의 말들을 모아보면 결론은 책임에 가서 닿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군주 혹은 지도자는 잘해야 이름을 남길 뿐이고 잘못했을 때는 시대별로 제각각 다른 죄목을 받는 불명예의 소유자가 되기 쉽다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자신의 욕망에서든 타인의 추대에서든 혹은 강요된 것이든 그 자리에 앉은 이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에 대해 자신이 가장 이상적인 군주라고 말하는 셈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마키아벨리의 공직에서의 업무 수행과 이후의 저술 등을 보면 나라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위치인 군주보다는 군주를 보필하고 백성의 살림을 두루 살피는 재상에 더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군주론>을 통해 여러 차례 이야기하는 것이 백성들이 증오를 사지 말 것이라는 말이다사자같이 용맹하고 결단력 있는 군주라고 해도여우처럼 간교하고 교묘한 군주라고 해도 백성들의 증오를 사게 되면 필히 그 자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목숨도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사자와 같고 또 여우와 같은 군주란 결국 사자와 같은 용맹과 결단력을 지닌 동시에 여우와 같은 유연하고 현명한 사고를 가진 군주를 말하는 것이다현명한 군주라면 자신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밝히 알고 백성을 중히 여길 줄 알 것이고나라의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고난을 백성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며모든 비난과 찬사에 대해 책임질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이상적인 군주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군주론>을 읽어온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시대는 어떤 군주, 지도자를 원하는 것일까?

지금의 지도자는 어떤 점에서 잘하고 있고, 어떤 점에서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백성의 증오를 사는 일만큼은 피하라 했는데, 어떨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119쪽 신생 군주국의 군주는 그의 행적에서 다음과 같은 유형의 필요한 조치를 찾아낼 수 있다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하며 동맹을 확보하는 일무력 또는 기만술로 승리를 거두는 일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일군대로부터 복종과 존경을 확보하는 일군주에게 해를 끼치거나 끼칠 수 있는 자들을 제거하는 일낡은 법제를 혁신하는 일엄격하면서도 친절하고 고결하면서도 관대하게 처세하는 일불충한 군대를 해체하고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는 일여러 군주 및 영주와 동맹을 맺음으로써 기꺼이 돕게 만들고 최소한 해를 끼칠 때도 주저하게 만드는 일 등이 그렇다.

 

129쪽 요컨대 잔학한 조치는 반드시 일거에 시행돼야 한다그래야 피부로 느끼는 고통도 줄어들고반감과 분노도 덜해진다반대로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한다그래야 그 맛을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다그러나 군주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늘 백성과 함께 사는 것이다그래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발적인 사태로 인해 기존의 자세를 바꾸는 일이 없게 된다그리하지 않으면 비상시에 단호한 조치를 취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그런 상황에서는 이전에 베푼 그 어떤 은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마지못해 베푼 것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백성이 감사하게 생각할 리 없다.

 

150쪽 앞서 나는 군주에게 확고한 권력기반을 갖추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 바 있다그리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런 기반 가운데 신생 군주국 또는 세습 군주국이든 혹은 혼합 군주국이든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토대는 역시 좋은 법제와 군대이다좋은 군대가 없으면 좋은 법제가 있을 수 없고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 반드시 좋은 법제가 있다.

 

165쪽 다윗은 이를 입어본 뒤 그리해서는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며 사양했다자신의 투석기와 단검만 들고 골리앗과 싸우고자 한 이유다요컨대 몸에 맞지 않아 부담만 되는 남의 무기와 갑옷은 몸을 압박하거나 움직임을 거북하게 만들 뿐이다.

 

178쪽 주의할 점은 악행 없이 권력을 보존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악행으로 인한 오명도 크게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모든 사항을 잘 고려할 경우 뛰어난 자질로 보이는 일을 행하는 게 오히려 파멸을 초래할 수 있고반대로 악한 성향으로 보이는 일을 행하는 게 오히려 안전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191쪽 무릇 백성이 군주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따르게 마련이나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군주의 선택 여하에 달려 있다현명한 군주라면 백성의 선택이 아닌 자신의 선택을 기반으로 권력의 기반을 구축할 것이다다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앞서 말한 것처럼 두려운 존재로 군림하되 증오를 사는 일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238쪽 요컨대 군주는 늘 주변의 간언을 들어야 하지만 남이 원할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 들을 수 있어야 한다원치 않을 때 누군가 주제넘게 간하려 들면 이를 저지해야 한다그러나 군주는 늘 주변 사람의 간언을 구하고끝까지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나아가 누군가 두려움 등으로 입을 다물 경우 진노하는 모습을 보여 속마음을 드러내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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