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하는 철학
로제 폴 드르와 지음, 박언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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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진리인가?"라는 물음을 수 없이 던졌더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물음의 무의미함만 점점 분명해졌다.

 흔히 말하는 철학의 계보, 혹은 계통수처럼 그려진 철학자 지도,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모든 시대를 통털어 동일 했던 적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가 '진리'를 말하고 있는지를 따져묻느라 힘을 쏟기도 한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다.

 

 철학은 어딘가 모호한 곳이 있어,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한 철학자를 전공하고 연구한 사람들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은 걸 보면,

결국 철학 역시 시대와 시간의 해석의 여지가 끼어들 수밖에 없기에 절대적인 것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게 되는 거다.

 그래서 철학이나 인문학에 대한 '대중서'를 읽을 때면 괜스레 경계하게 되곤 한다.

 

 나부터도 잘 모르지만, 나보다 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읽으면 딱 오해하기 좋을만한 일방적 견해만 늘어놓는가 하면,

특정 철학자나 사조를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일도 적지 않으며, 왜곡해서 해석해두기까지 하는 책들이 있다.

 이러한 책들의 저자가 하는 말은 '쉬운 접근' 혹은 '무난한 해석'이다.

어렵게 느끼니까 조금 이상해지더라도 쉽게 만들어보겠다는 거다.

 철학이 진리를 궁구하는 학문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들에 대한 기만으로 가득한 해석을 들려주는 일을 '쉽게'라는 말로 정당화 하는 건 이상하다.

 

 로제 폴 드르와는 <일상에서 철학하기>로 만나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시원치 않게 여겨져 노란표를 해두었던 저자다.

하지만 이번 저서를 읽으면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접근하면서도 나름의 기준으로 선별한 계보를 선보인 것이 마음에 들어 생각을 고쳐먹은 서자이기도 하다.

 

 현대적으로 철학의 흐름을 해석했을 때 지금까지 철학자로 인정받지 못해왔지만 흐름의 결락을 메꾸기 위해 필요해진 학자가 있다면 새롭게 영입하는 것까지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었다.

 재밌던 건, 그 철학자의 대표저서를 꼽고는 더 알고 싶으면 읽어야 할 책들을 국내에 번역 소개된 목록으로 다양하게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와 같은 문외한도 이걸 읽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철학은 철학을 하는 사람이나 철학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학문임에는 틀림이 없다.

해석의 방향이나, 견해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주장을 편 사람이 있는가하면, 같은 주제를 가지고 달리 볼 여지를 두지 않고 초지일관 이론을 전개하는 학자도 있었다.

 초지일관 이론을 전개한 학자의 제자들의 대에서 학파가 다시 나뉠 수 있다는 건 신기하지만 그것이 철학의 속성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면 낯설기만 한 것도 아니다.

 

 내 능력으로는 누구의 사상이 어떻고, 누가 어떤 말을 했고 하는 걸 옮겨적는 것조차 쉽지 않다.

철학에 관심은 있는데 누구부터 읽어야 할지, 누구를 정했더라도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 본문에서 -

 

49쪽.
고대 그리스어로 에토스는 무엇보다 하나의 행동방식, 삶의 유형을 가리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 '의미로 충만하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에토스의 영역이다.

 

68쪽.
또 플라톤의 제자이자 라이벌이었더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리에키온 학당 역시 그의 작품을 논평하고 지식을 함양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자아 변화의 현장이었다.

 

120쪽.
이 독특한 시도는 그의 기획을 무한히 계속되도록 만들었다. 몽테뉴의 말대로, <수상록>은 '이 땅에 잉크와 종이가 남아 있는 한', 좀 더 쉽게 말해 몽테뉴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한 무한히 계속되어야 했다. 따라서 이 책의 목표는 하나의 지리를 구축하거나 어떤 정확한 지식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다.

 

225쪽.
루소는 철학자란 자기 집 앞에서 동포의 참수형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286쪽.
헤겔의 천재성은 바로 이 부정의 힘, 부정의 능력을 파악했다는 데 있다. 여기서 부정이란 결함이나 결핍, 부재가 아닌 현실의 한복판에 작용하는 하나의 힘으로서, 현실의 내부에 구멍을 내고 현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다.

 

345쪽.
물론 대규모의 철학 연구작업과 전문 철학자들, 직업적 학자들, 특수한 철학 연구소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독자 여러분의 평범한 도전, 여러분 나름의 사고의 결합 역시 하찮거나 부끄럽게 여길 것들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발언이 너무 바보 같은 짓거리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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