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오랜 시간 내가 가지고 있을 자유 의지에 대해 굳은 믿음을 지닌 채 살아왔다.

내 삶은 내 선택에 의해 크게 변화하며, 그 선택은 전적으로 내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렇게 쓰고 있으니 이런 말을 전에 썼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 말을 전에 썼다고 생각했다는 생각을 썼던 것조차 전에 썼던 것 같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이 생각은 전적으로 내 의지에서 우러나온 생각이 아니다.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나 자신,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믿음이야 말로 가장 믿을 수 없는 것, 불신하고, 경계해야 할 최악의 적인 셈이다.

자유 의지의 정체, 우리가 자유 의지라 믿어온 것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이 책에서 그 답의 힌트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도발적인 붉은 색.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다시 본 표지는 '도발'의 메시지는 지워지고 부서지고 무너진 가슴을 떠올리게 했다.

이건 지나치다.

분명 지나친 배신행위다. 자유 의지를 박탈당한 인간을 직시하게 하다니 말이다.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 떠 만들었다는 인간, 그리고 인간에게는 신의 전능함의 상징인 '자유 의지'가 주어졌다고 믿어왔다. 아니, 믿고 싶었다. 이것은 동물에 가까우냐, 신에 가까우냐를 결정짓는 요건이니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 선악과를 먹고 원죄를 선택했던가?

아니다. 그 행위의 원인은 뱀의 '유혹'이었다. 그리고 아담의 죄지음의 원인은 '하와'였고 말이다.

이렇게 태초의 인간이라고 하는 아담과 하와의 '선택'부터 '자유 의지'의 위치는 위협받게 된다. 무엇이 자유 의지인가? 무엇이 인간의 존엄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이 책은 과학적 논재로써 '자유 의지'를 다룬다.

무엇이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증거가 되는가를 실험과 경험, 기록을 통해 증명해 간다.

부정하고 싶은 진실, 결국 마음 한 구석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인정해왔을지 모를 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오랜 믿음은 부서진다. 표지처럼 붉어진 상처와 함께.

 

난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고 자신할 수 없어도, 세상 앞에 홀로 세워진 순간에는 변명처럼, 혹은 변호하듯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게 된다.

이건 비겁한 걸까? 정말 더 나은 선택은 없었을까? 정말 최선이었던 걸까?

 

29쪽 꼭두각시는 자기를 조종하는 줄을 사랑하는 한 자유롭다.

 

아아, 이 얼마나 비극적인 말인가.

기꺼이 조종당한다면 조종당하고 있을지라도 '자유롭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비겁한 눈가림에 불과하다. 그래서 저자는 차라리 자유 의지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삶이 범죄가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결론은 여러 조건을 살펴봐도 결국 그 범죄는 일어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이것은 운명론과 닮았다. 그의 삶 전체가 그의 행동을 이끌어 냈기에 어떤 요소가 바뀐다고 하는 가정은 무의미하며, 그 일은 결국 일어났을 것이라는 것이다.

범죄자는 범죄자, 피해자는 피해자, 실패자, 패배자는 그 실패자 패배자로 달리 자신의 의지로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들의 행동, 선택, 사상, 결정과 결과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되도록 작용함으로써 일어난 결말이라는 거다.

 

이런 이야기,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그렇다면 반인륜적인, 패륜의 범죄자들은 동정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키워졌으니 말이다.

 

우리는 흔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로 돌아간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꿈꾸듯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정말 꿈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나 자신이 전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마 그 변화조차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에 옮겼다기 보다 주위의 영향을 받아 그렇게 되었을 확률이 높다. 대단히.

 

이 책은 우리의 믿음을 깨부순다. 순진하고 순수한 우리의 '의지'에 대한 믿음을 철저히 부정한다.

어쩌면 이 책 속에서 늘어놓는 이야기는 그저 한낱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말이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으로 채워진 책에 무슨 절대적 신뢰를 보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저자는 이 배고픔의 문제가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자유 의지'에 가장 핵심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하는 이야기를 한다.

 

왜 하필 지금 배고픔을 느끼는 걸까? 애초에 배고픔은 왜 느끼는가?

정녕 자유 의지가 있다면 배고픔쯤 이겨내야 하지 않겠나? 자유 의지의 힘으로 본능을 억제하고 이성적 사고를 계속해야 하지 않는가?

 

저자는 어쩌면 '자유 의지'라는 미명아래 개인에게 모든 것을 책임 지우는 세태에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잘 되면 내 덕, 잘 못되면 네 탓"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스개 같지만,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지 않게 도와줄 수 있는 한 줄기 지푸라기는 되어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적어도 모든 것이 내 잘못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정녕 인간이 완벽한 자유 의지를 소유하고 있는 존재라면, 남을 탓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실패나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거다.

 

자유 의지가 없다는 말에 발끈 할 게 아니라, 모든 것이 네 자유 의지의 발현이라는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책임 앞에 무너지는, 우울한 사람이 너무나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 정말 자유 의지가 있는 걸까?

한 번은 생각해 볼 질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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