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아야 하는 이유 - 불안과 좌절을 넘어서는 생각의 힘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2년 11월
평점 :
세상을 사는데 이유가 필요할까? 하는 질문은 어딘가 어리석음이 풍기는 미련한 냄새가 난다.
그럼에도 몇 번씩 되묻게 되는 이유는, 태어나면서부터 삶의 이유를 사명처럼, 운명처럼 지니고 살아갔던 억척스런 인생이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들을 보며 좀 더 나은 삶으로 기억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그런 물음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을 돌아보면 어떤 건설적인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절박한 위기감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생존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는 확신만 늘고 만다.
많은 사람이 삶 속에서 목적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거나, 그저 휩쓸려 다니는 삶을 살아간다. 그 결말의 하나로 이른바 최악의 선택이자 최후의 선택이라 일컬어지는 '자살'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인 강상중씨는 이 책을 쓴 이유를 이야기하는 책 서두에서 자신이 겪은 비극과 그 비극 속에서 깨닫게 된 것들을 전하려 한다는 말을 한다. 그의 결론이 해답이라거나, 정답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슬픔과 절망에 대처하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눈은 사물을 보지만 자기 자신은 볼 수 없다.
우리가 삶의 태도와 목적을 정하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내 생각을 해보면, 그건 '살아오며 경험한 것',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그 근거가 되는 것 같다.
"눈은 사물을 보지만 자기 자신은 볼 수 없다"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말에 보태 "비극에 휩쓸려 불행한 상태에 있는 사람일수록 우주에 존재하는 깊은 진리를 더 쉽게 엿볼 수 있다"고도 한다.
이런 시선들은 자칫 자기만의 좁은 시야, 작은 세계 속에 생각을 가둘 수 있게 될 위험도 있지만, 어차피 우리 인간의 관계에는 한계가 존재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수용되지 않을테니 보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 된다는 말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지난 책에서 '고민'의 힘을 이야기 했다면, 이 책에서는 '고뇌'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고뇌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기를 원한다.
살아가기 위한 이유와 관해 이야기하는 여러가지 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거듭나기와 원자화된 세상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개인적인 공명, 진지한 공명에 대한 것이다.
거듭나기는 헤르만 헤세가 말했던 부화를 위해 알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는 과정을 닮았다. 깨지게 된 이유가 안으로부터 터져나온 자발적인 것이든, 외부에서 가해진 외부적인 것이든 결국 극복해야 하는 주체는 '나'다. 그리고 그 극복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외부와 공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공명은 깊이가 있어 진지하다. 가볍고 넓은 관계를 만들어가기에 급급한 현대에서 오히려 그 비중을 늘려가는 진지한 관계의 필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친구에 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고, 가족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원자화란 개개의 개별적인 존재로서만 존재하게 된 단락적인 현대를 상징화한 말이다. 하지만 그 원자 속에는 그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또 다른 구성원들이 있으니, 좀 더 들여다보면 "나 말고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라는 절망적 외침에서 벗어날 수 있게되지 않을까?
저자는 과거가 미래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미래는 단순한 가능성이고, 과거가 현재의 나를 만들기에 그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과거라는 말이다.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대도, 분명 과거가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기반이 된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또 살아가야 하며, 살아갈 것이다.
좋은 것을, 내게 좋은 것을 보기 위해 눈을 돌리자. 눈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마음에 좋은 것을 바라보도록 하자.
공명은 혼자서는 일으킬 수 없다. 사람과 함께하자. 그것이 좋은 이유가 되어주지 않을까?
살아가는 이유가 필요하다지만, 그 이유 속에 '혼자'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함께' 살아갈 궁리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