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민주주의 역사
로저 오스본 지음, 최완규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내겐 이례적으로 읽기 시작해서 다 읽기까지 3주 가까운 시간에 걸쳐 찬찬히 읽은 책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볍게 읽어내려 갈 수도 없는 책일 뿐더러, 가볍게 읽히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거나 위협받지 않을 것이며, 지금의 자유와 권리를 무한히 누려갈 것을 당연히 여긴다.

몇 십년 전 70년대와 80년대까지도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 위상은 어떠했는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정말 느닷없이 일어났듯, 지금 우리의 권리와 자유가 박탈당하고 침해당하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완의 제도로써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을 견지하고 이 책을 읽어나간다면 좀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의 말미 즈음에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책을 통해 두 번 언급된 말로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 역사는 몇 안되는 장소에서 단기간에만 일어났던 현상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와 그들이 주도하는 세계에서 평생을 산 사람들은 운 좋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는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일까?

억세게 운이 좋지 않다면, 느닷없이 찾아들지 모를 위기에 대비해 민주주의적 양식을 쌓아둘 때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민주주의의 시초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도 더 된 아주 오래 전 이야기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우리가 현재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2500년에 걸쳐 발전해 온 것일까?"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결론을 통해 답을 내어놓자면, "아니다"이다.

 

최초의 민주주의의 출현은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긴 시간을 통해 발전되었다기보다 퇴보하고 쇠퇴해서 지도자와 지배계급에 입맛에 맛게 이용될 때만 잠깐씩 그 한쪽 면이 다시 수면 위에 떠오르곤 했던 것 뿐이다.

 

무엇이 민주주의의 쇠퇴를 불러왔을까?

최근 100여년 사이에 급격히 민주주의의 역풍이 강력하게 불어올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현재 우리 사회는, 그리고 세계는 진정 민주적인가?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과 발전 방향에 대한 예측은 긍정적이 될 수 있는가?

무엇이 민주주의 인가?

 

정말 많은 질문이 떠올랐고,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을 통해 끄집어 낼 수 있었다.

다만 경계하는 것은 저자의 사견에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을 바로 잡는 것, 그것 뿐이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 근대로 이어지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발전 양상과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음모와 암투.

민주주의의 번영과 몰락, 그리고 민주주의와 상대적 개념으로 일컬어지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전제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번영과 몰락이 가장 치열하게 일어났던 근 100여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세계 곳곳에 시선을 던져가며 짚어준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저자의 풍부한 세계사적 지식과 그 지식에서 얻어낸 냉철한 결론, 그리고 때때로 드러나는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을 적절히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고 여겨졌던 것은 민주주의 역사가, 특히 근대 이후에는 전쟁사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세계 열강의 식민지 경영, 전후 처리 과정과 이후의 사상의 변화와 흐름, 그리고 식민지배가 끝나고 독립하게 된 국가들의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총성이 있거나, 혹은 없는 세력 다툼.

그런 점이 더더욱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키웠다.

 

결론을 통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민주주의를 표현한다.

"민주 사회는 수많은 삶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늘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또 공동체적 창의성의 줄기찬 발로다. 그런 창의성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를 막으려는 세력 또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강경, 혹은 점진적인 수단을 이용해왔다.

그런 이들의 노력이 헛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또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현재에 이를 수 있었겠지만, 나 혼자만의 힘으로 달성하려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을 흐리고 훼손시키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나는 사실 민주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알 수없게 되고 말았다.

국가를 다스리는데는 오히려 강력한 전제 정권, 혹은 독재가 유리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자유와, 권리를 강렬히 희망한다.

 

민주주의는 국가를 위한 것도, 기업을 위한 것도, 집단이나 개인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의 것,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타인의 권리가 짓밟히는 순간에는 외면하다, 자신의 자유가 구속될 기미만 보여도 비명을 지른다.

홀로 완성될 수 없는 것,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 아닐까.

 

세계사와 함께 읽으면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세계 대전, 유럽과 아메리카의 근 현대사, 식민 국가들의 독립과 정부 수립 과정, 소련의 붕괴와 공산국가들의 전향,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독자적으로 구축한 나라(여기엔 북한도 포함된다), 그리고 세계사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를 참고로 한다면 좀 더 깊이 있게 다가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 오래 두고 배울 수 있는 책과의 만남이 참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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