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고전강독 1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최고의 인생을 묻다 공병호의 고전강독 1
공병호 지음 / 해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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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할 때에는 체계와 규모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고전을 읽기 시작한 이유가 그러한 체계와 규모를 갖춰나가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물론 학문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 삶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바로,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믿기에 인류의 오랜 지혜를 빌리고 싶었다.

 

 

그 중 소크라테스는 단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마음을 다잡고 난 후 가장 처음 만난 고전의 주인공이 소크라테스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철학과 인문 역사에서 차지하는 엄청난 비중을 고전을 읽으면 읽을 수록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었고 가르쳐진 고전답게 읽는 이, 가르치는 이마다 조금씩 그 견해가 달라진다.

'실용 인문'분야에서 많은 저서를 내놓았고 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공병호'님은 어떻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읽었을까 궁금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향연은 먼저 읽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때 내가 느꼈고 깨달았던 느낌과 생각들을 책에 담긴 저자의 느낌과 생각들과 비교해보기도 하고 또 공감하기도 하면서 읽으니 절로 흥이 났다.

그러면서 더 깊이 느껴지고 더 많이 깨달아지는 효과도 누렸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고전에서는 그야말로 아는 것이 힘인 듯하다.

읽어보지 못했던 메논과 알키비아데스I 은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더 분명히 보여주는 좋은 단서가 되어주었다.

 

 

전공자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소크라테스를 읽지 않았었음에도 이 책에 담긴 소크라테스의 사상이나, 행동, 이론들에 대한 해석은 무척 탁월하다.

내공이라는 것이 결코 한 분야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의 이해력과 분석력에도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자의 연륜과 경험에서 우러나는 깊은 삶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죽음 앞에서까지 물러서지 않고 지켜냈던 그의 신념과 정의를 다루고 있다.

훌륭한 삶 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소크라테스의 삶에서 저자는 최고로 위대한 삶, 훌륭한 인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시대와 현재 우리 나라의 현실을 비교하면서 '정의'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지난 총선과 12월 19일에 있을 대선을 두고 과연 소신있는 정치가 가능한가에 대해 묻는 저자를 보며 안타까워해야 했다.

정치적 소신을 지킬 수 없는 정치 환경이란 너무나 비극적이다.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도 소신없이 다수에 이끌렸던 방만한 아테네의 정치였다.

처음부터 불의와 타협하고 싶어하는 정치인이 있겠는가?

공허하게 들리는 물음만 남는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하는 정의와 훌륭한 삶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과 바꿔가면서까지 지켜냈던 소크라테스의 정의는 상황과 조건과 타협할 줄 모르는 변할 수 없는 원칙이었다.

 

 

탈옥을 종용하는 크리톤에게 이야기하는 탈옥이 정의롭지 못한 세가지 이유만 봐도 알 수 있다.

"첫째, 탈옥 자체가 국법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에 나쁜 일이다.

둘째, 자신의 이 같은 행위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불법적인 행동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나쁜 일이다.

셋째, 자신이 평생 올바르다고 생각해 왔던 정의의 원칙(보복하지 않는 것, 합의한 것을 지키는 것)을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나쁜 일이다."

 

 

저자는 이와같은 소크라테스의 신념과 정의로운 삶이 비록 사형이라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지만 영원불멸한 이름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흔히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지만 난 이부분을 보면서 "악법도 정의다"란 생각을 했다.

 

 

"악법이라면 그것을 정당한 절차를 거쳐 개정하여라. 하지만 개정되기 전까지는 그 법을 따르라."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문답법과 산파술을 이용해 아테네 사람들의 무지를 깨우치고 다녔다.

어떤 사상을 가르치지 않았던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 뿐이라고하며 스스로 지자를 칭하고 현자라 일컫는 이들의 무지함을 깨우치려 노력했다.

그가 반박하는 것은 반박당하는 사람의 인격이 아니라 의견이었음에도 그들은 자신의 인격이 모욕당했다고 느꼈다.

후에 소크라테스가 아뉘토스에게 고발당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 외에도 소크라테스의 생사관과 정치관도 잘 정리되어 있다.

 

 

만인 중에서 가장 탁월하면서도 진정으로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믿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던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러한 교만하지 않은 겸손함과 순수함이 소크라테스의 삶을 탁월하게 만들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결국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훌륭한 삶'이다.

정의관, 생사관, 정치관, 인생관, 그리고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는 삶.

무엇 하나 쉬워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의 훌륭함과 탁월함의 본래 형상이 저 세상에 존재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있다는 것은 알지만 단지 볼 수 없을 뿐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믿어볼 일이다.

 

 

제법 찬찬히 내용을 씹듯 읽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렇게 감상을 적으려니 막막하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믿음, 그리고 앞으로의 비젼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강한 자신감과 함께 자부심을 보이고 있다.

자신에게 당당하며 자부심을 느끼지만 교만해지지는 않는 성품이 잘 드러나있어 인상적이었다.

 

 

시련은 그것을 넘어선 자에게 큰 축복을 내려준다.

지금이 시련이라면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우리 국민이나, 우리 나라에도 그러하다면 진정 제대로 고전을 읽을 때다.

 

 

인문 고전이 어떤 열풍이 되어 크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시류에 부응하려는 일시적 상술의 주무대가 되어서는 곤란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반가운 책이기도 했다.

 

 

자칫 딱딱하고 괴롭게 느껴질 수 있는 인문 고전에 새로운 활력이 되어주길 기대해본다.

 

 

 

 

[이 감상은 북곰 서평 이벤트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 감상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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