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0
노자 지음, 이강수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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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網恢恢 疏而不失

천 망 회 회 소 이 부 실

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커서 성글지만 빠뜨리지 않느니라.

 

이 구절을 읽으면서 사람이 쳐놓은 그물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건만, 하늘이 쳐놓은 그물이야 오죽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쳐놓은 그물이란 것이라면 법망에서 인망, 욕망 같은 것들 일테지.

사람의 욕심이란 한결 같지 않아 어떤 그물에 갇히기를 소망하고, 어떤 그물은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 발버둥친다.

 

재주 좋은 이들은 빠져나가야 할 것은 용케 빠져나가고 얽히고 싶은 것엔 또 번번히 걸리는 기가막힌 솜씨를 뽑내기도 한다.

하지만 하늘의 그물을 어찌 피해갈 수 있을까? 事必歸正(사필귀정) 하늘의 그물은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을 진저.

 

그러나 부디 인망이여, 욕망이여 나를 놓아주기를.

미련한 미련도 내려놓을 수 있기를.

 

聖人終不爲大 故 能成其大

성 인 종 불 위 대 고 능 성 기 대

성인은 끝내 일이 커지게 하지 아니하는지라, 그러므로 그 위대한 일을 완성할 수 있다.

 

많은 것을 미루고 또 미루다 한꺼번에 하려고 발버둥치다 결국 나가떨어지곤 하는 내겐 뼈아픈 구절이었다.

 

허허, 참.

모두 합하여 81장.

그 중에서 마음에 울린 구절들이 하나같이 현재의 나와 관련된 구절들이라는 것이 이젠 새삼 놀랍지도 않다.

 

그 사람의 경험과 현재의 마음, 기분, 하고자 하는 바램들까지가 책을 읽는 시선을 달리한다는 것을 강렬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 뿐이다.

성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나아졌다고 믿었는데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늘 달리던 제자리를 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처럼 기운이 빠지는 때가 있을까?

 

지혜란 또한 실천인 것을.

모든 것이 모든 앎과 깨달음에서 행함을 빼면 그저 날을 다한 꽃잎처럼 살랑이는 봄 바람에도 흩어지고 만다는 것을 왜 잊었던가.

 

진 꽃잎은 바람이 한 곳에 몰아넣고 한번, 두번 밟히고, 한날, 두날 지나면 찬연한 색을 잃고 흙빛을 머금게 된다는 것을.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민 지 종 사 상 어 기 성 이 패 지

사람들이 하는 일은 언제나 거의 이루어질 무렵에 그것을 망친다.

 

왜?라고 물을 것도 없다.

그의 말이 맞다.

하지만 이것은 포기하지 못하는 미련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무엇인가를 인위적으로 하기 위해 자연적인 것을 망치고 만다는 것이다.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본래의 자연스러운 것은 망가져간다.

그리고 이제 되었다. 이루었다 싶은 순간엔 이미 본래 원했던 것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언제나 거의 이루어질 무렵에야 그것이 망가져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는 서글픈 결말을 이름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자 했던가, 무엇을 바랬던가하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아니, 잃어버렸다면 더 늦어버리기 전에 찾아와야겠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남편의 시계줄을 사기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았던 델라와 델라의 아름다운 금발에 어울리는 머리핀을 사기 위해 시계를 저당 잡혔던 짐의 이야기는 분명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그들은 결국 무엇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했던가?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가난이 지겨워 악바리처럼 굴어가며 온갖 모진 일 다하고, 온갖 못된 짓 다해서 부자가 되었지만 사람은 떠나고 깊은 병만 남은 어떤 부자 이야기처럼. 그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벌었던 것일까?

초심, 처음 그 소망을 가졌던 마음을 잃지 말아야지.

 

知我者希 則我者貴

지 아 자 희 즉 아 자 귀

나를 알아주는 이가 적을수록 나는 더욱더 귀중해지는지라.

 

타인을 위해 살아가지 말자.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아가지 말자.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한탄하지 말자.

 

결국 하늘에서 성인을 거쳐 나로 돌아와 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본래의 나를 잃지 않는 것.

사람들이 하는 일이 언제나 이루어질 무렵에 망쳐지는 것도 결국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일테지.

나를 아는 것.

소크라테스도 나를 알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삶이란 참으로 신비롭다.

삶 속에서 만나는 책도 놀랍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책을 발견하는 내 삶이다.

 

삶이 먼저인 것인지 내가 먼저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살아가는 삶이고, 살아지는 나의 삶이다.

 

망설임이 크면 나아갈 수 없다.

걱정이든, 미련이든, 두려움이든 나를 잃게 만드는 것은 모두 삶을 위협하는 적이다.

하늘은 세세한 것까지 우리를 말리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것이 되어야 할 모습으로 되고, 이루어져야 할 모습으로 이루어진다.

성인이 무위로써 위대한 일을 성취하였다는 것은 결국 본래의 자신을 잃지 않았다는 것.

노자는 오랜 역사를 지내오며 수 없이 많은 형태로 해석되어 세상에 뿌려졌다.

 

놀라운 것은 서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동양 서적이 노자라는 것이다.

아마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 무위와는 거리가 먼 세상에 어째서 노자의 무위사상이 담긴 이 책이 이렇게 많이 팔릴 수 있었던 것일까?

 

물으나 마나 한 물음이겠지만, 결국 다들 자신을 찾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 사람에 얽매이지 않고, 욕망과 재앙을 부르는 욕심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으로의 회귀를 본능적으로 소원하는 것이리라.

 

아쉬운 것은 내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

십분의 일도 아니 백분의 일이나 노자를 이해한 것일까?

욕심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다시 읽는 노자는 또 어떻게 다가올까?

그 날에는 어떤 구절이 내 마음을 울릴까?

 

이것이 고전의 매력.

끝없이 변화하면서, 끝간데 모를 가능성을 품고있는 나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

금새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정리하며 적어가는 시간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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