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대제국들
짐 마셀로스 엮음, 박경혜 옮김 / 푸른길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며 재인식 하게 된 사실이지만, 불과 몇 세기 전까지 세계의 지배자는 유럽이나 아메리카가 아닌 아시아였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이미 충분히 찾았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 그렇게 생각한다.
 

 
아시아의 대제국하면 역시 제일 앞에 세울 것은 칭기즈 칸의 몽고다.
 아시아 전역 뿐 아니라 유럽의 턱밑까지 정복했던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대제국.
 그것이 그의 제국 앞에 붙은 가장 평범한 수식어다.
 
책 속에서는 칭기즈 칸의 부상에서 시작해 칭기즈칸 이후의 제국의 상황, 몽골 제국의 군사제도, 일반 정치, 법, 그리고 쇠퇴와 해체의 배경과 과정을 비교적 간략하게 핵심을 적고 있다.
 그리고 몽골 제국의 위대한 점과 쇠퇴와 해체 이후 세계에 미친 영향들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워낙 거대했고 강대했던 만큼 제국의 해체 후에 새롭게 들어선 제국이나 이미 존재했던 제국, 그리고 유럽에까지 그 영향은 강렬하게 남았음을 알 수 있다.
 

 

 
책 속에서는 칭기즈 칸의 정복자의 면모 뿐 아니라 지배자로써 자질이 돋보이는 '어록'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워낙에 위대한 제왕의 독존적 능력을 지닌 강력한 제왕 통치하의 빠른 확장과 부흥은 확고한 후계체제와 정책의 부재로 이어졌고 칭기즈 칸 사후 수 많은 내전과 제위 쟁탈의 빌미가 되어 빠른 제국이 분열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칭기즈 칸의 제왕의 자질은 정복자의 면모 뿐 아니라 통치자의 면모에서도 돋보였다.
  그는 수 많은 왕국과 부족을 통합하면서도 유연한 통합책을 사용하여 그들의 종교와 사상을 존중함으로써 제국 안에 그들을 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실효성 있는 정책에 대해서는 망설임 없이 실행하여 신하들의 신뢰와 충성을 끌어냄과 동시에 제국의 원활한 통치를 끌어냈다.
 
다만 이 책의 몽골 제국에서 발견한 아쉬운 점은 고려를 완전한 속국으로 그린 지도와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이다.
 고려와 몽고의 첫 대면은 거란족을 함께 퇴치한 것에서 시작되었고, 그 후 계속되는 몽고의 조공 요구에 반발하여 국경지역에서 몽고 사신 저고여가 피살 된 것을 빌미로 삼아 몽고의 장군 살리타이가 1231년에 1차 전쟁을 하게 된다.고 배웠던 것 같다.
 이 책에서 칭기즈 칸은 1227년에 사망한 것으로 나오는데 위의 지도에는 고려라는 이름도 없을 뿐 아니라 칭기즈 칸 사망 전에 고려가 몽고에 정복 된 것처럼 나와있다.
   이것 만은 바로 잡혔으면 한다. 왜? 우리나라에서 출간 된 책이니까라고 하면 안될까?
 
 
명나라는 원나라 이후 최후의 한족 제국이다.
 

 
 명의 초대 황제인 홍무제는 본래는 홍건적에 가담했던 장수로 용인술과 정치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사회, 정치, 경제, 군사적 방면에서 거의 완벽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황권을 강화한다.
 
명나라의 인재 등용 방법은 과거제도 였으며 진사되는 과정이 무척이나 복잡하고 경쟁이 심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신사'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명나라 시대다.
 
'신사'는 과거를 통해 고위직에 나갈 수 있었던 권력 계급, 지방의 사족들이었다.
 긴 세월을 넘어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에 만연한 공직에 대한 갈망이 여기서 오지 않았나 싶다.
 과거급제만 하면 모든 것이 보장되던 시대, 단번에 특권층으로 도약할 수 있는 인생역전극에 그 당시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었을까?

 
강성했던 명 제국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사례 중 하나가 정화의 해외 원정이다.
 정화가 해외 원정에 사용했던 함선은 크기도 배수량도 엄청났다고 한다.
 총 5회에 걸쳐 페르시아, 멀리는 아프리카까지 이르렀던 정화의 원정도 영락제 사후 대양 원정 정책의 포기로 끝이 난다.

 

 
화려함과 거대함의 극치를 이루는 자금성과 만리장성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만리장성을 처음 쌓기 시작한 것은 시황제였지만 명대에 쌓은 것에 비할바가 아니라고 한다.
 명대에 쌓은 장성의 길이가 총 965킬로미터에 이른다니 정말 말도 안나온다.
 
크메르 제국이라는 이름은 무척 낯설다.
 아시아에 그런 나라가 있었어?
 하지만 802년부터 1566년까지 약 800년 동안 동남아시아에 군림했던 유서깊은 왕조로 우리에게는 앙코르와트로 알려져 있는 제국이다.
 

 
크메르 제국은 초기와 중기까지도 제국이라기보다는 왕국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안정되어있는 시기에는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사원짓기에 열심이었다.
 가만히 왕위의 흐름을 살펴보면 왕조의 교체가 비교적 잦은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혈족의 단일 계승체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계승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여겨졌다.
 
크메르의 기록은 거의다 종교적인 것으로 해외 무역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아 중국에서 발견된 사절단 파견에 대한 사료는 크메르 경제에 대한 아주 희귀한 기록이라고 한다.
 

 

아래가 앙코르와트.
 
워낙 대외적인 분쟁이나 교역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저렇게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세울 수 있는 기술과 자금이 있었음에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이 말이다.
 하지만 열심히 수 많은 사원을 건축해둔 덕에 현재 우리가 그들의 유적을 볼 수 있는 것일테니 어찌보면 다행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스만 제국은 호전적이며 정치 사회적으로 잘 정비된 강력한 제국이었다고 한다.
 
 

 
읽으면서 가장 흥미진진하다고 느꼈을 만큼 역동적이고 화려하면서 강력했던 제국이었다.
 현재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분열 독립되어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루마니아 그리고 터키 등의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무척 많지만 그중 눈에 띄는 사실은 '투르크'라는 말이다.
 난 그동안 오스만 뒤에는 투르크가 붙어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투르크'라는 말은 무식한 아나톨리아의 무슬림 농민들을 지칭하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위용은 강력한 해군 함대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패배를 몰랐으며, 패배 했을 때도 재건이 무척 빨라 5개월만에 완전 무장된 150척의 함대를 건설할 정도였다고 한다.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동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오스만 제국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었다.
 
강력한 군사력 뿐 아니라 완성도 높은 건축물에서도 오스만 제국의 위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오스만 제국의 톱카프 궁전.(방어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뛰어난 전망을 자랑한다.)
 
이렇게 강력했던 오스만 제국이 붕괴하게 된 원인은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이어진 저항이었다고 한다.
 제국은 정부 조직을 근대화 했으나 경제 및 사회적 기반이 부족했고 계획성 없는 경제 개혁은 계속되는 전쟁과 내란, 인적 경제적 자원의 점차적인 고갈, 강대국의 경제적 정치적 압력에 대응하기에 불충분 했던 것이다.
 
제 1차 세계 대전 후 분열된 오스만 제국은 1923년 터키의 국민 영웅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저항군이 아나톨리아를 탈환하고 술탄제와 칼리프제를 폐지하면서 터키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그 시대의 막을 내린다.
 
오스만 제국은 유연성 있고 실용적이며 상대적인 관용으로 투르크, 그리스, 쿠르드, 슬라브, 헝가리, 알바니아, 아랍인들과 같이 여러 종교와 언어를 가진 이들을 오랫동안 지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역사적인 제국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경제, 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낸 업적은 부인할 수 없다고 저자는 적고 있다.
 
페르시아의 사파비 제국은 이슬람권 이란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페르시아의 국가라고 한다.
 

 
 
사파비 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뛰어난 건축과 예술작품 들이었다.
 현재에도 이란의 양탄자는 최고급품으로 취급된다고 듣기도 했거니와 그들의 모스크로 대표되는 건축물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아마 그림으로 그렸다고해도 이렇게 그려 낼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도시 형태를 띌 정도로 거대한 광장이다.
 메이단에나크시에자한(세계광장)
 
영국인 토마스 허버트는 이스파한을 방문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메이단 광장은 의심할 여지없이 다른 어떤 곳 못지않게 넓고 쾌적하며 향기롭다. 남북으로 1000보, 동서로 200보 이상의 규모로, 파리의 로와얄 광장이나 영국의 거래소와 유사하나 여섯 배는 더 크다."

이 모든 것이 풍부한 물자와 인력 그리고 강력한 권력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인도의 무굴제국은 우리에게 타지마할로 익숙하다.
 

 
사파비 제국이 이슬람의 시아파의 왕조라면 무굴은 이슬람의 수니파 왕조라고한다.
 힌두교가 주를 이루던 남부 아시아를 지배하였던 제국으로 몽골제국의 티무르의 후손이 시조라고 한다.
 
타지마할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강력한 왕권과 풍부한 물자 그리고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찬란한 건축문화를 꽃피웠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마지막 아시아의 제국은 일본이다.
 씁쓸한 감이 없지 않지만 분명 한 때 거대하고 강대한 제국이었던 일본을 이야기한다.
 
페리제독에 의해 강제로 개항하게 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제국주의의 면모를 갖추게 되고 서구 열광과 함께 식민지 건설, 영토확장에 열을 올린다.
 섬나라라는 공간에 늘 갇혀 있던 탓이었는지 일본은 대륙으로의 진출을 늘 갈망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와 중국 동남 아시아를 노리곤 했다.
 

 
195쪽의 미국 외무부 관리 해롤드 마틴의 평가가 뼈아프다.
 일본이 조선에서 거둔 성공은 불쌍한 조선의 정부 및 사회, 상업에 대한 개혁과 진보를 의미한다. 청일 전쟁에 대한 일본의 승리는 조선인들의 동양적 나태와 미신, 무지, 외세 배척에 대한 압력을 의미한다. 이는 일본이 대표하는 현대 문명과, 중국이 대표하는 야만적이고 절망적인 구태의연함의 충돌이다.
 
사실 난 이 부분은 편집으로 빼주었으면 싶다.
 왜냐하면 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객관적인 척하면서 자기들 좋을 대로 해석한 이런 말을 내가 왜 읽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왜 불쌍하다는 것인가? 우리가 왜 야만적이고 절망적인 구태의연함의 대표가 되어야하는 것인가?
 이것만은 아니올씨다.
 
일본이 분명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성공이 세계에 아시아의 위용을 떨친 일이 될지라도 우리가 용서할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짧았던 일본 제국의 영광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과 함께 막을 내린다.
 
일본이 세계 대전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대목이 나온다.
 원폭이 가져온 전쟁의 궁핍이 희생자라는 의식과 전쟁 기억 상실증을 만들어 냈다고 많은 역사가들은 이야기한단다.
 자신들의 만행은 다 잊고, 원폭을 투하한 미국에 대한 피해의식이 자신들이 되려 희생자라는 의식을 낳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여전히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는 풀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하지만 오늘은 접어두기로 한다.
 이 책은 그들과 우리의 감정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니라 다만 객관적 존재로서 제국 일본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 장은 제국의 종말이라는 이름으로 앞서 소개된 아시아의 제국들의 쇠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한때 동양을 신비롭고 위대한 세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불과 몇 세기 전부터 미개하고 덜떨어진 세계처럼 여기고 지배와 착취를 자행했다.
 
우리는 단지 서구 열강 제국주의의 희생자요 피해자가 아니다.
 한때는 세계를 호령했던 강대한 아시아의 한 조각이다.
 
지금은 대부분 잃어버렸지만 과거의 영광을 기록한 책들의 가치마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긍지와 영광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다루지 않더라도 우리에겐 우리들의 제국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에게만 찬란하고 뛰어난 문명과 강대한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우리가 강했고 현재 우리가 조금 약한 것 뿐이니 이 구도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역사가 가지는 자부심과 민족혼을 깨우는 자극이 되었던 책이라, 이 책과의 만남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 감상문은 네이버 북카페 이벤트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