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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안중식 옮김 / 지식여행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겐 어떤 의미로 특별한 책이다.
우스운 것은 그 사람에게 주었을 이 책이 언제, 어느때 내게 돌아와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 내 손에 들어왔던 것처럼 여전히 있었다.
사실 난 슬픈 이야기는 질색이다.
타인의 아픔, 슬픔을 전해 듣는 것은 내 슬픔에 비할 것이 못된다.
난 그렇게 되어먹은 놈이다.
아마 아직은 살에 닿을듯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마주한 적이 없어서일테지만 현실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이런 내가 모질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들이 오열하는 슬픔을 공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슬픈 이야기 앞에서는 너무 쉽게 수문을 열어버리는 못난 눈물샘도 내 것이다.
늘 울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듯이 그들의 슬픔에 공명하는 나의 눈물을 막을 도리가 없다.
현실의 죽음은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되려 실감하지 못하는 현실이란 참 우습기까지 하다.
이야기의 여주인공은 백혈병이다.
완전한 불치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치율이 높은 것도 아니고 환자와 가족에겐 무척 힘겨운 병인 그 백혈병이다.
146쪽.
아키 : "난 말이야, 지금 내 안에 모두 있다고 생각해."
겨우 입을 열어 그녀는 말을 고르듯이 이야기했다.
"모두 있고,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아. 그러니까 부족한 것을 신께 빌거나 저 세상이나 천국에 바랄 필요는 없어.
왜 그러냐면, 전부 있는걸. 그걸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 : "내가 아키를 좋아하는 마음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니까, 죽고 나서도 분명 계속 있는 거네."
이들의 이야기는 너무 자연스럽게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보고 있는 내가 더 슬퍼지게 만든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불안과 공포를 넘나들며 깨달을 수 있는 이야기일까?
모든 것이 내 안에 있기에 더는 부족한 것도 바랄 것도 없다는 이야기가, 단지 그것을 찾아 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조차 꿀 수 없는 사람이 그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죽고 나서도 분명 계속 있는 것이라고, 내 안에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니 된 것이라고 납득해도 되는 것일까?
이래서 이들의 사랑은 더욱 애닯다. 그들의 의연한 사랑이 더욱 슬프고 아프다.
아키는 12월 17일, 사쿠타로는 12월 24일. 그 둘의 생일이다.
173쪽.
나 : "그렇다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나서 아키가 없었던 적은, 지금까지 단 일초도 없었어."
"내가 태어난 이후의 세계는 전부 아키가 있는 세계였던 거야."
"나한테 있어서 아키가 없는 세계는 완전히 미지의 세계이고, 그런 것이 존재할지 어떨지조차 모르겠어."
아키: "괜찮아. 내가 없어져도 세계는 계속 존재해."
지금까지 그녀가 없는 세상을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그에게 그녀가 없을지도 모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무것도 없는 세계' 전부였던 사람이 없는 세상이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정말 그래도 그렇게 계속 존재해도 괜찮은 것일까?
그럼에도 계속 존재한다는 그녀의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들의 사랑은 끝을 향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는데, 바보같이.
221쪽.
나 : "그녀는 죽었다. 시신은 태워져서 뼈가 되었지. 그 뼈를 나는 이 손으로 붉은 사막에 뿌리고 왔다. 그런데도 그녀는 있어.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아. 착각 따위가 아니야. 어쩔 수 없는 감각이야. 꿈 속에서 자신이 하늘을 날고 있는 걸 부정할 수 없듯이 그녀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어. 아무리 증명할 수 없어도 그녀가 있다고 내가 느끼는 건 사실이야."
나는 소리지르지 않는다.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그저 그 사실을 이야기할 뿐이다.
비록 친구는 애처로운 모습으로 나를 보지만.
아키는 죽었다. 나는 남았다. 그리고 슬픔도 남았다. 아픔도 슬픔과 함께 남았다.
할아버지는 반대로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죽었다. 아키가 남았다. 그리고 슬픔도 남았다. 아픔도 슬픔과 함께 남았다.
지금 나는 아키를 대신해 살고 있는 것이라고.
바보같이 눈물 흘릴 이야기라는 것을 알기에 공공장소에서는 읽지 않는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과 그다지 다르지 않으리라.
그저 서럽도록 슬프지만 아프지는 않다. 눈물은 나지만 슬프지도 않다.
이렇게 앞뒤 맞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밖에 없게끔 나를 흔들어 놓는다.
책을 읽다 바짝 마른 낙엽 두 장을 발견했다.
겨울에 샀던 책인데, 언제 누가 넣어두었던 것일까?
정말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도, 사랑도, 기억도 나의 미래까지도.
내가 해야하는 것은 회상이나 상상 기도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일.
보물찾기라고 이름짓고 싶은 탐험뿐이다.
슬픔이 슬픔으로 끝내 남으면 그것은 아프고 아프다.
슬픔도 숙성되면 온화함이 되는 것일까?
아픔도 무르익으면 상냥함이 되는 것일까?
아픔과 불안과 슬픔과 상실, 이야기에서 배운다.
오늘은 마냥 감정적이 되고 싶은 날이었다.
세상에게서, 이야기 속에서 감정을 배우는 난 감정적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