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혹시 "더 나은 질문이 더 나은 대답을 만든다."는 말을 알고 있는가? 

 내가 이 책을 읽으려한 이유는 '정의'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동기에서 펴든 이 책은 최악의 선택이었거나 또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최악의 선택'이었던 이유는 내가 원한 확적정이고 명료한 '정의'를 내려주지 않으며, 무척이나 다양한 견해를 내게 제시함으로써 되려 혼란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최고의 선택'이었던 이유는 나만의 능력으로는 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같은 선택을 두고 정반대에 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내가 이 책에서 만난 정의는 늘 양극단에 동시에 설 수 있는 모순되면서 변화 무쌍하고 무한의 잠재력을 지닌 신기한 존재였다.

 

무척 가볍게 펴들었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무척 무겁고 더디게 느껴졌다.

 당나귀가 꾀를 부린다고 솜짐을 지고 물 속에 빠졌다가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게 된 것처럼, 내가 바로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책을 펼쳐든 내 의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간신히 100페이지 쯤을 넘어갔을 때다.

 그래서 이것은 이야기해두련다.

 쓸데없는 참견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이 무척 더디고 난해하다 못해 산만하게 느껴진다면 즉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펴시길.

 그리고 동봉된 DVD를 꺼내어 재생.

  그런 후에 다시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난 이 책에서 정의에 관한 단정적인 결론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정의에 대한 완전무결한 정의를 내려줄 생각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던 것 같다.

 독자와 저자의 의도가 상충될 때 그 책을 읽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난 얻지 못해 화를 낼테고, 저자는 말이 없을테니.

 

계시나 영감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을 정도로 내 선택은 탁월했다.

 DVD를 보며 "아, 이런 것들이 담긴 책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DVD를 보고 난 후에 책 속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되었는데 그 이유는 저자가 하는 말을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려 하는 사실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난 그가 제시하는 수 많은 견해를 보고, 그 안에서 비판 혹은 동조 할 수 있으며 전혀 다른 견해를 제시할 수도 있었다.

 

결국 그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있는 것은 '강의'다.

 그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고 있었다.

 토론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하게하고 타인과의 의견 교환을 통해 그 견해를 수정 혹은 강화 또는 보완해가며 자신만의 '정의'의 개념을 확립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벤담, 밀, 로크, 롤스의 말이나 이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 많은 견해가 존재함을 아는 것과 그 견해들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통해 무조건적 수용이 아닌 스스로가 이성적, 도덕적으로 숙고하고 판단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주제넘게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려 들었으니 진도가 더딜 밖에.

 

저자인 마이클 샌댈은 어쩌면 답이 없는 '정의'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은 필연적으로 필요한 질문이다. 이성을 일깨워 이성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 보는 것 만으로도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그의 말대로 해보기로 한 나는 이 책의 흐름을 따라가며 우리 나라의 상황들(예를 들면 예전의 유승준 사건, 최근의 SNS와 관련해 논란이 되었던 선거법 관련 사건, 버핏세, 학교 폭력, 일본군 위안부, 독도 영토분쟁 등)을 떠올리며 많은 곳에서 공감하거나 비판적 입장에 서기도 했다.

 

책에 나오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견해의 충돌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우리의 자세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는 완결 혹은 완료 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들 하나 하나의 '정의'가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의 '정의'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우리에게 스스로의 '정의'를 견지할 것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한 그 권한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 책은 '정의'를 정해주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정의'에 대한 견해를 보여주는 책에 가깝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의 원본 격인 '수업'의 역할이 아닐까?

 

다시 적어보지만 "더 나은 질문이 더 나은 답을 만든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정말 다양한 사회, 다원화 된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건과, 분쟁, 논란, 이슈들이 하루도 쉬지않고 흘러나온다.

 

그 안에서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정의'를 관철할 필요가 있다.

 관철한다고 해서 딱딱하게 굳어있을 이유는 없다.

 굳건하지만 유연한 그런 '정의'를 추구한대도 그 '정의'가 내게 있는 한 스스로는 타인의 비난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참, 책을 읽으며 "이 사람의 강의가 정말 듣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