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의 추구 - 하버드대 최고의 행복 강의
탈 벤 샤하르 지음, 노혜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I Love You."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이다.

 아, 물론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마는.

그 말을 하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계신가요?

 

우리가 자주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모르는 내가 하는 사랑은, 그 사랑이 내가 모르던 어떤 것을 가르쳐 주게되는 상황이 오게되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까?

 

먼저 물어보도록 하자.

"당신은 완벽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 입니까?"

 "당신은 종종 행복합니까, 혹은 종종 행복하지 않습니까?"

 

이 책은 완벽을 추구하는 방법을 적어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완벽주의에 실체와 부작용을 숱하게 적어가며 완벽주의에 회의적 의견을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내게 쓴 소리를 한다고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적대적 관계에 서있는 '적'이 아니듯, 완벽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서 완벽주의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스스로 완벽주의자로 살던 때의 괴로움과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더 완전해지고 완벽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여유도 행복도 뒤로 미뤄두고 있을,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던 것 뿐이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의외로' 자주 목격하게 된다.

 늘 성공에 목마른 우리는 왜 그토록 성공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이해하기가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그 이해하기 어렵던 그들의 행위에 대한 단서가 이 책에는 들어있다.

 

완벽의 추구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완벽'이라는 단어가 많이도 등장한다.

그리고 '완벽'이라는 말 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말이 '최적'이라는 말이다.

 최적은 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말하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상태다.

 '최적'이라는 말이 가장 높은 빈도로 등장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최적주의' 예찬론자다.

 

'완벽'이 말 그대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상태라면 '최적'은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상태에 있으며, 최상은 아니더라도 수준 이상만을 목적으로 하는 마음자세다.

완벽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최적주의자는 '대충형 인간' 정도로 표현 될 것이다.

 

완벽주의자 만큼 행복과 거리가 먼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완벽주의자는 모든 것에서 완벽을 추구하기에 자신의 성과에서도 미흡한 점을 먼저 찾게 되고, 성공을 했더라도 성공의 기쁨은 잠시일 뿐 아직 하지 못한 미완의 것들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늘 불행하고, 불만족러운 상태에 놓이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최적주의자를 지향하자고 이야기한다.

 성과에 순수하게 기뻐할 줄 알고, 모든 것에 완벽을 기하기보다 어느 정도 이상에서 만족하는 것으로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완벽주의자는 실패와 성공 모두를 거부하는 모순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실패를 거부하기에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며, 성공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기에 성공을 즐길 수도 없다.

 그에 반해 최적주의자는 실패와 성공 모두를 받아들인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공에는 마음껏 기뻐한다.

 

완벽주의자 중에는 우울증 환자가 많다고 한다.

 그들은 늘 가지지 못한 부족에대한 갈망이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늘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초조함에 극도의 긴장이라는 살 얼음판을 기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은 두가지의 세상을 이야기했다.

 이데아와 현실 세계말이다.

 당신은 현실에 살면서 이상향인 이데아를 꿈꾸며 괴로워하는 완벽주의자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세상은 오직 우리가 보고 듣고 살아가는 현실 세계만이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에 살며 '중용'을 실천하려했던 최적주의자인 것이다.

 

이 책은 최적주의자를 칭하는 저자답게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중용'을 지킨 중후함과 편한함을 함께 지니고 있다. 

 

"난 왜 행복하지 않지?"라고 늘 되뇌는 당신.

 당신은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완벽'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나?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양비론에 휘둘려 실패에도 성공에도 괴로움만 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서양에서 고통스러운 감정을 거부했다면 우리나라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외면해왔다.

 유교 윤리에 의해 감정을 내비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 혹은 나약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배워온 것이다.

 

급격한 발전과 더불어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과정보다는 빠른 성과가 우선시되고 멀리 돌아가는 우회로보다는 직선적인 지름길로 빨리 가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렸다.

 

불완전함에 대한 불안과 완벽에 대한 갈망,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만족도 휴식도 잊은채 그저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을 뿐인 것은 아닌지 한번 쯤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다.

 

이 책은 '워크 북'으로, 실천해가며 천천히 읽어가면 좋은 책이라고 한다.

 그에 맞게 각 장의 마무리에 '과제'처럼 어떤 연습들이 적혀있다.

 모두 완벽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최적의 삶을 누릴 준비를 위한 연습들이다.

 

달리기를 할 때도 트랙의 발판에 발을 딛고 엉덩이를 높이 들어올리며 시선은 목표를 향하는 준비자세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변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준비는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나를 모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처럼,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모르고서는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래전 부산으로 떠났던 자전거 여행이 떠올랐다.

 지도를 펴고 '완벽한' 라인을 그리고 출발했으나, 결국 '최적의' 여행을 해야했던 기억이 말이다.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완벽할 수 없기에 내가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오늘부터 나도 '최적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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