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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몽상 -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홍성영 옮김 / 하늘연못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총 847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이다보니 참 많은 것이 담겨있다.
그래서 무슨 감상을 적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핑계를 대신해 내 나름으로 생각해본 "이 책에 적합할 것 같은 읽는 순서"를 적어두기로 한다.
먼저 이 책의 구성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련다.
총 4부 더하기 역자의 말 더하기 작가 연보 합 847페이지.
짜맞춘 듯 각부는 각각 약 200페이지 분량.
제 1부 환상, 제 2부 풍자, 제 3부 추리, 제 4부 공포.
나의 "이런 순서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크게 두가지를 기준으로 해야겠다.
첫번째는 에드거 앨런 포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경우이고, 두번째는 "그게 누구야?", 혹은 "이름은 들어봤지."의 경우가 되겠다.
참고로 나는 후자에 속했다.
사실 '거의' 누구에게 이렇게 잃으면 좋겠다며 간섭, 혹은 선입견이 될지 모를 사족을 붙이지 않는 편인 아닌 내가 이런 지침까지 세운 데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간만에 최근 읽었던 어떤 책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아득한 절망(조금 과장하자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건 뭐 이미 '난해하다'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무지무지 난해했기 때문에 이 글을 적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잃으면 더 재밌게, 더 깊이 음미하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나름의 '즐김의 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앞에 적어놓은 글로 "이 책이 그렇게 어려웠어?"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버리길 바란다.
꼭 그렇지만은 않으니 말이다. 다만 사용 순서와 방법의 문제다.
아무리 좋은 자동 장치도 사용에 서투르면 구식 수동 장치만큼도 못써먹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면 좋으리라.
본론으로 첫번째 에드거 앨런 포를 아는 사람은(이미 이 책 정도는 읽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앞에서부터 읽어 나가도 상관 없다.
마음대로 읽고 싶은 부분을 펴고 읽어가시길.
이미 에드거 앨런 포를 아시는 당신은 얼마든지 이 책의 진미를 즐길 수 있을테지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중요한 것은 두번째 쪽이다.
난 보통(거의 틀림없이) 거의 모든 책을 앞에서부터 쭈욱 읽어나간다. (심지어 문제집을 풀 때도 그렇다.)
그런 습관이 이 책 앞에서 나를 무너뜨렸다.
에드거 앨런 포를 전혀 혹은 거의 모르는 당신께는 먼저 840페이지부터 847페이지까지 이어져 있는 작가 연보를 읽어보시길.
시간이나 장비에 여유가 있으신 분이라면 그가 활동하던 시대적 배경과 그의 생애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읽는다면 금상첨화.
그런 후 1부를 건너뛰고 2부를 읽는다.
2부는 제법 흥미진진하기에 워밍업에 좋습니다.
그런 다음에 비로소 1부를 펴고 읽기 시작합니다.
이야, 제가 왜 이렇게 배치를 했는지는 읽으시는 분만은 아실테지요. 흐흐흣.
그 다음은 읽고 싶은 대로 읽습니다.
사실 한 편 한 편에 대해 감상을 적어가며 읽고 있었지만, 단편들의 모음집이고 이해 불가 판정 작품도 생기고, 난해 판정은 널리고, 이해 혹은 즐김을 초반엔 찾기가 너무 힘들어 하나하나 적어나가는 것이 읽어가는 호흡을 자꾸 끊는 것 같아 "책을 즐기자"하는 생각으로 그만 두었습니다.
그렇게 한 뒤에야 비로소 속도가 붙고 마침 재밌는 부분들을 만나서 즐거이 읽어 내려갔습니다.
제 경우엔 초반의 고비를 넘고 나서는 무척 속도감 읽게 내려갔습니다.
역시 고전의 반열에 드는 작가의 작품이다보니 이야기의 짜임이나 구성 전개가 무척 매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해 불가 판정 작'은 예외지만요.
현대적인 문체나 소재, 전개에 익숙해지다보니 고리타분하고 뭔가 시시하다고 느끼게 되는 부분은 아쉽다기보다 되려 씁쓸했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맵고 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버린 것일까?하는 달갑지 않은 깨달음이 말이죠.
이 책에 실린 소재들도 그 당시엔 정말 충격적이다 못해 엽기적인 수준이었을 것을 생각하니 우린 얼마나 무뎌진 것일까? 하는 반성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모든 감상을 제쳐두고 이런 이야기를 적고 있는 것은 아마 '고전에서 되새길 수 있는 순수함'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작가의 창작에 있어 부정할 수 없는 고려 요소 중 하나가 독자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끈질기게 인기가 있든 없든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만 써 내려가는 작가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학계라고 경제의 원리가 존재하지 않을테니 가난한 작가가 언제까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써나가는 자세를 관철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작가는 독자가 원하면서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됩니다.
아, 어쩌다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이 독자가 원하는 것일 경우도 있겠습니다. 이것이 최선이 되겠군요. 정정합니다.
이 얘기와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 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순수함의 회복"을 외칠 수 밖에 없습니다.
단순한 광기가 지배하는 낭만도 철학도 없는 작품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아마 읽는 순간의 팽팽한 긴장감, 스릴, 짜릿함은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요?
최초의 추리 소설이라는 '모르그 가의 살인'이 실려있기에라거나 에드거 앨런 포라는 위대한 작가의 상상, 창작, 고뇌와 묘사, 풍자가 담겨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담고 싶어했을 순수한 열망을 떠올리며 이 책을 돌아봅니다.
두껍다고 하면 무척 두꺼울 수 있는 이 책이 무척이나 술술 읽히는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했을까요?
무엇이 나에게 책장을 넘기게 했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최초'라는 것의 의미, '기원'이라는 말이 품은 속 뜻의 어떤 다른 면을 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애써 적어둔 감상들을 내팽개치고 보니 뭔가 허전한 것 같기도 하지만 오늘은 허전한대로도 좋을 듯 합니다.
철학과 낭만이 담긴 추리, 공포의 맛을 보시겠습니까? "예", 라면 자 이제 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