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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9월
평점 :
내게 편지란 평소에 말로는 하기 힘들었던 일들, 일단 풀어놓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릴 오래 참아왔던 일들, 혹은 수줍음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속 깊은 정, 사랑.
쓰다가 지우고 적어가다 고치기를 수 없이 반복하며 고심하고 고심해 건넬 내 마음이 담긴 몇 장의 종이.가 아닌가 싶다.
카프카가 그랬을까?
하고 싶은 말이 어찌나 많았던지, 얼마나 오래 쌓아두고 덮어두었던 기억들을 들춰냈던지 편지라고 하기엔 너무나 방대한 분량이었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작품이라고는 '변신' 밖에 읽어본 적 없는 카프카라는 하나의 존재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편지였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전에 '변신'을 읽으며 느꼈던 가족간의 깊은 골, 이해할 수 없던 그 매정함과 단절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느낀 아버지를 한마디로 표현해보면, 자기 중심적인 나라는 알맹이에 근엄함 엄격함으로 된 갑주를 두르고 언행 불일치의 칼을 휘두르며 애정을 '행사'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기를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고 아끼면 다른 사람도 그 마음을 반드시 알아채 줄 것이라 믿는다.
그의 아버지도 그런 사람의 한 명이었던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애정엔 너무나 접점이 없었다.
그것이 애정이었을지도 모른다라고 여길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 돌이키려해도 돌이킬 수 없게 된 슬픈 현실만을 마주할 뿐이었다.
어린 시절의 카프카는 아버지를 '거인'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고, 항상 두려움으로 아버지에 대한 공포만을 키워갔던 것 같다.
그것이 깊은 '트라우마'가 되어 성장하면서도 기를 펼 수 없게 되었고 늘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아버지의 한 마디(그것이 긍정적이면 긍정적이어서 불안했고 부정적이면 그런 반응이 당연했기에 불안해했다)에 너무나 연연해 했다.
아버지가 두렵고 무서웠지만 아버지를 떠날 수도 없었다.
그는 영원히 홀로 설 수 없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뿜어내는 위엄과 공포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노예였다.
거기에 그의 몸은 나약했고, 많은 병마에 시달렸다. 그것은 '최악'의 조건의 다름 아니었다.
편지 속에서 카프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버지 가슴 속엔 아예 처음부터 분노의 마음이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우연히도 바로 그 일을 빌미로 잡게 되어 가슴 속의 분노를 터뜨리신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지요.'
또 고함을 지르는 아버지를 보는 기분을 '교수형 준비를 하나하나 같이 지켜봐야하는 상황에 처해져 마지막으로 올가미가 그의 머리 앞에 내려지고 난 순간에야 자신의 사면 소식을 듣게되는 사형수'로 표현하고 있을 정도니 그의 절망이 얼마나 깊었던가.
카프카의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무엇인가 위대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그렇듯 그 역시 자신감이 강하고 스스로의 결정과 방식에 대한 믿음이 거의 절대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재벌 2세가 그렇듯 카프카는 상대적으로 주눅들어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카프카에게 있어 아버지는 늘 무섭고 어렵고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무섭고 어렵게 느꼈을 것은 위에 적어둔 것과 같은 것들이었고 알 수 없었던 것은 한결같지 않은 아버지의 행동이었으리라.
자식들에게는 욕을 하지마라, 음식을 흘리며 먹지말라며 금지 시켜놓고서는 자신은 수시로 욕설을 내뱉고 식탁에서 그의 자리가 가장 더러웠으며, 가게와 가정에서 멀어질 수록 관대하고 다정하고 친절하고 사려깊고 동정적인 되곤 했던 모습에 어린 카프카가 얼마나 큰 혼란과 원망을 느꼈을지.
언젠가 티브이에서 공익 광고로 "집 안과 집 밖에서 당신은 얼마나 다른 사람입니까?"하고 묻는 것을 보았다.
나 또한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다.
카프카에게 있어 글쓰기란 오랫동안에 걸쳐 의도적으로 진행된 아버지와의 결별 과정이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이 편지 역시 그 의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가 원하고 바랬던 것은 오직 정신적 무능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리라. 아버지의 크나큰 거인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 그 공포에서 해방되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정신적 무능력 상태를 벗어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세 번에 걸친 약혼에도, 그녀들을 정말 사랑했음에도 그는 결국 결혼하지 못하고 혼자 남는다.
카프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관계의 원만함에는 전적으로 동경했으나 그 동경의 크기를 넘어서는 아버지와 자식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그의 결혼을 통해 아버지와 대등한 존재가 되겠다는 이상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겪었던 갈등을 자신이 자신의 자식과 겪게 될까 두려웠다.
결국 이것이 '트라우마'가 카프카에게 내린 최종 선고가 되고 말았는지 그는 혼자 지내다 마흔 한살이 되기 얼마 전 병으로 죽고 만다.
이것이 카프카의 삶의 모든 기록이다.
그의 모든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의도적 결별을 위해 쓰여진 것이며,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와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 선택했던 결혼 생활을 위해서 아버지가 가진 모든 '능력'을 자신 또한 갖추어야 함을 깨닫고 난 후 무너져버린 삶.
그에겐 오직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벗어나기 위해 써내려가는 글이 있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새해 명절을 맞아 가족이 모여 화목한 시간을 보내야 할 날을 앞두고 읽기에 좋았던 것인지 혹은 나빴던 것인지 애매한 기분이다.
다만 마음 깊이 새겨둘 일이다. 아무렇지 않게 하는 어떤 행동들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늘을 드리울 수도 있음을.
그의 삶과 그의 작품들에 짧은 묵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