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7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안영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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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으며 이 책이 떠올라 다시 읽어봤다.
 카프카의 창작물들은 무척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그와 아버지의 관계를 떠올리며 읽으니 훨씬 이해가 수월했다.

 

변신은 매일같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듯 죽어라 일하는 외판원 그레고르가 악몽에서 깨어나던 어느날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악몽에서 깨어난 그는 자신의 몸에 어떤 이상이 생겼음을 알아챈다.
 이런, 배 쪽에 무척이나 낯선 수 많은 다리와 조그만 점들이 있는 흉측한 벌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 악몽같은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그는 제 시간에 기차를 타지 못한 것을 먼저 걱정하고 당황할 만큼 자신보다 자신의 일과 가족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짐승이나 다름 없는 흉측한 벌레가 되어버리면서 가족들과 겪는 갈등과 그 갈등에서 느끼는 그레고르의 절망과 슬픔을 지나치게 매정한 가족들의 태도를 통해 극대화 하고있는 작품이다.

 그렇게 자신을 의지하고 위해주던 가족들이 자신의 '변신'을 마주하는 모습은 너무 상반되어 있어 서글프기까지 하다.


처음엔 변해버린 그를 걱정하고 위해주던 가족들도(비록 막상 마주하면 놀라고 흥분해서 그에게 더 깊은 상심을 안겨주었지만) 점차 그에게 무관심해져 간다.
 그나마 그와 가족 간의 마지막 연결 고리 역할을 하던 여동생 그레테마저 그를 외면하고 거부하게 되었던 운명의 날, 그는 홀로 서글픈 최후를 맞는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 또한 그레고르에겐 무척이나 사납고 권위적이며 거인과도 같이 느껴지는 존재다.
 그레고르를 극도록 쇠약하게 만들었던 치명적 상처(등에 박힌 사과) 또한 아버지가 낸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존재이며 변해버린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랑보다 두려움과 절망을 더 크게 느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와 소통하려했던 여동생 또한 운명의 날에 더 이상 그가 오빠나 아들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선언해 버린다.
 그렇게 모두에게 외면당하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그레고르는 죽고 완벽하게 처리된다.

 없던 것처럼.

 

그의 죽음 후 남은 가족은 빠르게 본래의 상태로 회복해가고 싱싱한 팔 다리를 가진 딸의 성장을 목격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뭔가 카프카의 삶을 빗대어 놓은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소설이었다.
 
이 책에 덧붙여 몇 편의 단편들이 있었다.
 첫 번째로 유형지에서.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난해한 소설이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탐험가가 어떤 나라의 형 집행을 입회해달라는 어느 지역 사령관의 초대를 받고 유형지를 찾는다.
 그곳에는 특이한 모양의 형 집행기가 있다.
 그 형 집행기는 죄수의 몸에 자동으로 죄명을 새기는 장치로, 순식간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12시간 이상 걸려서 자동으로 서서히 사람을 죽인다.
 특징적인 것은 형 집행기가 작동한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형을 당하는 죄수는 온순해지고 그 눈빛에 지성을 품게 되고 그것이 전신으로 퍼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살아서는 괴롭고 추한 인간의 모습을 죽어서는 남기지 않는 신기한 사형기구인 셈이다.


그 장치는 전 사령관의 발명품으로 한 때는 인기가 있었지만 현재에 이르러는 '장교'만이 이 장치를 사용한 형의 집행에 찬성하고 있을 뿐인 구시대의 유물이다.

 

현재의 사령관이 탐험가를 형 집행의 입회를 부탁한 이유가 그 장치의 폐기를 위한 것임을 예상한 '장교'는 탐험가에게 이 장치를 통한 형 집행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탐험가는 그것을 거절하고 '장교'는 본래 형을 집행할 예정이던 죄수를 석방하고 스스로 형틀에 눕는다.
 그런데 최후의 옹호자가 자신의 위에 누웠기 때문일까?
작동을 시작한 형틀은 곧 스스로 해체되어가면서 최후의 옹호자인 '장교'도 순식간에 함께 해체해 버린다.


그 결과 형틀을 통해 죽음에 이른 사람 중 유일하게 살아 생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죽게 된다.
 그가 이 형틀을 통한 죽음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지성어린 눈빛도 구원의 그림자도 없는 깊은 확신만을 간직한 시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탐험가가 형틀의 발명자인 노 사령관의 무덤을 찾는 장면과 마지막 형 집행을 면한 죄수와 함께 있던 사명이 떠나는 그를 향해 달려오는 장면까지를 적고 있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두 번째로 관찰.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단락적이고 접점을 찾기 힘들고 이야기간의 거리감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마치 어느날 어떤 상태, 혹은 기분을 되는대로 메모지에 휘갈겨 둔 것을 옮겨놓은 것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카프카 자신의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그의 외로움과, 절망, 소심함과 안심 따위의 감정이 담긴 기억의 한 페이지일 것이다.

 

세 번째로 선고.
 게오르크 페테르부르크의 친구 약혼녀 아버지 등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다.
 자신의 결혼 소식을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친구에게 알려야 한다는 약혼녀의 말에 그는 친구에게 보낼 편지를 적어서 아버지의 방을 찾는다.

 그리고 거기서 아버지에게서 익사형을 선고 받는다.
 익사형을 선고하고 아버지는 침대로 쓰러지고 그는 강의 다리 난간을 뛰어넘어 물 속으로 뛰어든다.

 짧은 이야기이고 이제 생각하기도 조금 지쳐서 왜 그랬는지는 생각하지 않으련다. 그저 이해해주시길.

결국 이 이야기도 아버지와 카프카의 이야기에 다름 아닌 형태를 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갈등을 표현함으로써 그는 아버지에게 어느정도 통쾌한 복수를 했다고 느꼈을까?
 그렇지도 못했을 것 같다.

그들은 결국 누구도 치유받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가 상처 주고 받을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를 인정하고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못했으리라.


 그것이 프란츠 카프카가 말하곤 하는 카프카적 기질이나 뢰비적 기질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미워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 묘한 관계 속에서 태어난 오묘하고 난해한 카프카의 글을 이렇게 읽고 감상을 적어가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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