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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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신경숙 작가님의 모르는 여인 출간 기념 낭독공감에 다니러 갔을 때 싸인 받으며 구입한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11월 29일 그날 지하철에서 50쪽 정도를 읽고서는 그냥 미뤄뒀던 것.

 왠지 냉큼 손이 가질 않았다.

 작가를 너무 가까이서 만났던 것이 잘못이었다.

 정말 작가와 독자는 큰 강을 두고 마주서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가까운듯 멀리 있었어야 했을 것을.

 

나를 멀어지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작가를 가까이서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야기를 듣고보니 그 작품에 대한 어떤 고정된 견해가 생겨버린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선입견이랄까?

 책 속의 이야기를 음미하기 전에 내 미숙한 독서력은 작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들 예를 들면 "등장인물의 이름은 최대한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 무의미한 것으로 지으려 한다."는 얘기와 같은.

 모든 것이 아직 내가 올바른 독서라는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음이 원인이라 누굴 원망할 수도 없으니 그 이야기들이 조금 잊혀질 때까지 미뤄두는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로 들어가자.

 이야기는 '정윤'이라는 여자에게 걸려온 '이명서'의 전화 한통화로 시작된다.

 그들의 은사 '윤교수'가 위독하다는 내용의.

 

굳이 말해보자면 이 이야기는 '정윤'과 그녀의 대학 친구 '이명서', '정윤'의 소꿉친구 '단이', '이명서'의 소꿉친구 '윤미루', '윤교수'의 사랑과 좌절과 기억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참 많은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해왔는데 요즘들어 소설 읽기가 힘이 든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많이 본 것으로 기억되는 말이 아마 '언젠가'인 것 같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가장 의미를 두고 행하는 것이 '걷기'

 가장 의미심장한 말은 '크리스토프'

 이 이야기 속에서는 참 많은 죽음이 그려져있다.

 '정윤'의 엄마는 병으로, '정윤'의 소꿉친구 '단이'는 군에서 사고로, '윤미루'의 언니는 분신 후 투신 자살, '윤미루'는 굶어죽었고, '윤교수'도 병으로, '윤교수'의 과거 여자친구는 목을 매 자살했으며, '윤미루 언니의 '그사람'은 실종(죽은 것으로 추측) 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에 '죽음'은 이렇게 눈에 띄게 그려져 있음에도 젊은이들 사이에 흔할 것 같은 '사랑'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날 듯 드러날 듯 어떤 희망적이지만 분명하지 않은 공허한 약속 '언젠가'라는 말들로 그 열기를 희석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있지만 그것이 청춘남녀의 뜨겁게 타오르는 듯한 열기있는 사랑은 아닌 아련하고 공허한 그래서 허무하게까지 느껴지는 약속들만 두드러져버리는 그런 쓸쓸한 느낌 말이다.

 

이 이야기 속에 사랑은 분명 담겨있다는 것을 안다.

 여러가지 형태의 여러 사람의 사랑이 등장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사랑이야기를 하자니 알송달송하기만하고 아득하니 허허로운 기분이 되는 것 같아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

 

크리스토프.

 크리스토프라는 사람을 아시는가?

 '윤교수'의 질문이다.

 

그는 힘이 장사로 어린 예수를 업고 강을 건넜던 사람이라고 한다.

 처음엔 어린 아이라 가볍게 업고 강으로 들어간 크리스토프는 갑작스럽게 불어난 강물에 힘겨워한다.

 거기에 갈 수록 무거워지는 예수를 간신히 강 건너편에 내려놓았단다.

 

다시 '윤교수'의 질문이다.

 우리는 크리스토프일까 그 등에 업힌 아이일까?

 

'윤교수'는 답한다.

 우리는 크리스토프 일 수도 있고 그 등에 업힌 아이 일 수도 있다.

 

이것은 역설이라고하며 '차안과 피안'을 이야기 한다.

 

왠지 알송달송한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해답이 될 것 같은 부분이라 기억이 난다.

 

'윤교수'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모두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강은 물살이 거세고 깊기에 우리는 무엇에든 의지해야만 건너갈 수 있다고도 한다.

 

나의 곤란과 힘겨움을 지탱해주는 어떤 사람과, 그 어떤 사람의 곤란과 힘겨움을 지탱해주는 내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하면 사랑일까.

 

왠지 죽음이 그득한 이야기 속에 사랑, 사랑만 찾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죽음이 단순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것 같은 확신이 있다.

 사랑했다.

 

정리가 되지 않는 갑갑함에 그냥 생각나는 단편적 단어들을 늘어놓으며 이야기를 끝내련다.

 업어주기, 걷기, 언젠가, 우리 오늘을 잊지말자, 크리스토프, 소나무에 쌓인 눈털기, 귀머거리 고양이 에밀리, 에밀리 디킨슨.

 죽음 죽음 죽음,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만큼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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