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턴가 내 영혼이 책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된 것 같다.

 계획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그저 '그냥' 고른 책에서 최근에 읽었던 다른 책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이 느낌은 참 신기해서 마치 '지난 밤 꿈 속에서 그 책을 고르고는 보이지 않는 실을 이어둔 것 같은',  물고기를 낚은 강태공을 멀리서 보면 투명한 낚시줄은 보이지 않아서 끌려오는 물고기가 마치 허공을 날아 강태공을 향해 헤엄쳐가는듯 보이는 마법을 보는 것 같다.

 

어제 읽었던 책에서 이야기 하기를 양서를 골라서 읽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양서를 고르기란 쉽지 않고, 타인이 추천해준 책이라해도 내게 꼭 맞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기에 무조건 많이 읽는 사람에게 더 많은 양서가 찾아간다고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난 행운아다.

 소 뒷걸음질에 쥐잡듯 골라잡는 책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쏙 드는 것 뿐이니 말이다.

 

사실 이 책은 인터넷 서점의 특가 코너에서 무더기로 샀던 책 중의 한 권이다.

 사두고 2개월은 족히 지나버린 지금에야 읽게 된 것이 참 미안하지만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시기가 지금이었기에 지금서야 내 손에 닿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이 책의 저자인 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고 한다.

 원제가 '할아버지와 나'였다고 하는데 그 제목도 어울리긴 하지만 지금의 제목이 더 어울리는 이야기였다고 생각된다.

 

이야기는 '작은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 체로키 인디언이 부모님을 여의고 난 후 음, 5년? 정도의 기간에 걸쳐 체로키 인디언으로 숲에서 자연과 함께 공생하는 삶을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윌로 존, 파인 빌리 그리고 유대인 보따리상 와인씨를 통해 배우고 경험한 소소한 일상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왜 제목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인지 알 수 밖에 없게 된다.

 

'인디언', 백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오기 전에 그 땅에서 낭비도 사치도 부의 축적도 없이 숲과 동물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문자 그대로 평화롭게 살던 무던한 종적을 이르는 이름이다.

 백인들의 무자비함을 적나라하게 적어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 책 속에는 그들을 적나라하게 원망하는 이야기는 없다.

 되려 자신들을 그토록 괴롭히고 차별하고 멸시하는 백인들을 인디언들은 가엾게 여겼던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백인들에 대항해 칼과 활로 저항하고 전쟁에 참여했던 부족도 있었지만 많은 인디언들은 '순응'하고 그 원수같은 백인마져 용서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 '순응'이 무력과 강압이라는 폭력에의 무력한 '순응'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통해 이어져 내려온 천성적인 '순응'이라는 것은 기억해야겠지만 말이다.

 

'체로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다.

 '체로키'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고, 그 영혼을 감지했고, 그 영혼과 소통을 통해 풍족하지는 않지만 모자라지도 않는 자신들에게 있어 필요한 만큼에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살았다.

 그것은 한 순간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자연을 존중하고 생명을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고 가르쳐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물질문명에 물들어버린 우리들은 그들을 볼 때 미개하고 가엾고 미련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배운 것, 교육의 관점 자연과 사람 세상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인디언' 그들만이 가진 신비한 영적 능력들(나무, 바람, 물,  산짐승, 들짐승 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밤 하늘의 별을 통해 수백리 거리를 뛰어넘어 약속된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은 본래는 우리도 지녔던 것이었으나 물질 문명에 물들어 완전히 잊혀져 버린, 잃어버린 능력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었다.

 

'인디언'들은 특별히 정규적인 교육체계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무엇을 강요하거나 하지 않지만 그들의 삶 자체를 통해 배우고, 어울려간다.

 

그들의 배움의 과정만큼 신기했던 것은 고난을 대하는 태도였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을 때 정말 죽을만큼 괴롭고 힘들어하게 되는 이유는 그 일을 나라는 존재와 동일시 해버리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돈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난 슬프다.

 

사실 생각해보면 '돈'을 잃어버렸다고 내가 기분 상할 이유는 없다. 뭐, 그 돈이 정말 중요한 수술비라든가 급히 갚아야하는 빚을 갚기위한 돈이었다면 안타깝고 슬플 수 있겠지만 그것은 돈을 잃어버려서 슬픈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수술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인디언의 영혼을 분리하는 방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몸의 마음이 있고, 영혼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의 고통과 영혼의 고통을 분리할 수 있었고, 몸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심지어 죽음에 이를지라도 영혼은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이번 생이 끝나더라도 다음 생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열살도 되자 않은 어린 '작은나무'가 백인 목사에게 모진 매를 맞게 되는 일화가 나오는데, 우리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엉엉 울다 기절해버렸을 것이다. 등에서 피가 흘러 신발에 고일 만큼 맞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작은나무'는 울지도 기절하지도 않는다. 몸에서 영혼을 떼어 놓는 비법을 썼기 때문이다.

 

이것은 극단적 예일 것이고, 우리는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재주는 익히기 힘들 것이다.

 

다만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 슬픔, 고난, 곤란, 시련을 본래의 나와 겹쳐놓고 생각해서 괴로움에 빠지는 일은 하지 말도록 하자.

 우리 영혼의 짐을 굳이 무겁게 만들지 말자.

 

인디언들은 '교육'에 대해서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기술, 다른 하나는 가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는 가치라고하면 돈의 가치를 중시할 뿐 진정한 가치는 외면해버리고 그런 자세로 기술을 배우다보니 문제가 자꾸 불거지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가치를 무시한 채 현대적이 되면 사람들은 그 현대적인 것을 오용하게 된다."고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발전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빠른 성장에 치중하다보니 균형을 잃고 올바른 가치를 견지하지 못한 상태로 기술을 운용하다보니 사회는 패륜으로 물들고 정치는 부패의 연속선 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부는 편중되고 집중되어 빈부의 격차가 날로 커지는 가지면 가질 수록 불행해지는 삶을 향해 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무시무시한 열차에 올라버린 모양새가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자연과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 세상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작은나무'와 체로키 인디언 그리고 '작은나무'를 사랑한 모든 존재들의 이야기에 담긴 영혼을 따스히 해주는 온기가 추운 겨울 우리들의 영혼도 따뜻이 안아주길 바래본다.

 

"그게 이치란 거야.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 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너도 꼭 알아두어야 하고." 26쪽

 

반면에 링거는 예전에는 뛰어난 사냥개였지만 지금은 너무 나이를 먹었다. 이제는 꼬리를 질질 끌고 다녀 볼꼴 사나운데다 옛날만큼 잘 보거나 듣지도 못했다. 할아버지가 링거를 모드와 짝지어준 것은, 링거가 모드를 도울 수 있게 하여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이 일은 링거에게 뿌듯한 자신감을 갖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옥수수밭에서 일하는 계절이 되면 링거는 목을 한껏 치켜세운 채 네 다리를 씩씩하게 내딛으면서 주위를 돌아다니곤 했다. 43쪽

 

나는 자연에서, 어머니인 모노라에게서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산에 온 첫날 밤에 할머니가 노래하신 것처럼 자연 속의 모든 것을 형제자매로 가질 수 있었다. 230쪽

 

선물을 받는 쪽은 자신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받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선물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하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었다.  238쪽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주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하면 받는 사람보다 자신이 잘났다는 허세와 우월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로 해야 할 일은 받는 사람의 자립심을 일깨울 수 있는 작은 뭔가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252쪽

 

만일 이런 가치들을 배우지 않으면 기술면에서 아무리 최신의 것들을 익혔다 하더라도 결국 아무 쓸모도 없다, 사실 이런 가치들을 무시한 채 현대적이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그 현대적인 것들을 잘못된 일, 부수고 파괴하는 일에 더 많이 쓴다고 하셨다. 261쪽~262쪽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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