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본래 내가 읽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공지영님의 딸 위녕양이 읽어야 할 편지들이라 꼭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소소한 이야기들 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발췌되어온 책들의 제목을 적는 것에 더 열심이었던 책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딸에게 보낸 응원의 편지들이 책이 되어 우리들까지 응원하는 메세지가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만의 '엄마'이길 바라고 나만을 응원해주는 '엄마의 편지'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욕심을 우리 독자들에게 양보해준 딸 '위녕'양의 호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어야지 싶었다.

 더하여 에필로그에 적어둔 엄마에게의 편지를 읽으며 두 모녀가 참 닮았구나 싶은 생각을 한 것은 나만의 이야기일까?

 

사실 이야기 내내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래서, 언제 수영장에 가실건가요?!"하는 것이었는데 마지막의 마지막인 작가 후기에 결국 수영장에 갔다만 슈퍼가 되어있더라 그래서 못갔다는 얘기로 끝나고 있었다.

 

이런이런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고 딸을 생각하는 엄마의 애틋한 마음들이 눈에 보이는 듯 했지만, 그러면서도 오늘은 이런 이유로 수영장에 못가고 저런 까닭에 못갈 것 같고 이러다보니 가면 안될 것 같고 하는 이야기에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덧붙여 "오늘도 좋은 하루!"라는 반복되는 끝맺는 말이 마치 주문이나 기도처럼 들려 애틋함을 더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살아가는 것과 살아지는 것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

 오늘까지 30년을 살았다. 나는 30년을 산 것일까 아니면 똑같은 1년을 30번 산 걸까하는 물음.

 지금을 살아가라는 말.

 

요즘 수없이 읽고 듣고 보는 그래서 이젠 진리처럼 마음에 새겨져가는 그 말들이 책속의 이야기에 멋대로 끌려가기 시작하게 만들었다.

 

메모해둔 책 제목을 열거해보면 <얀 이야기 - 얀과 카와카마스>, <새들은 페루에가서 죽다>, <소박한 기적>, <열정>,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 시민의 고백>, <팡세>, <어떻게 당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정도다.

 

가만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책도 몇 권 눈에 띈다.

 떠넘겨받듯 받은 책들에 한권, 한참전에 사둔 책 한권, 오래전에 읽었던 책 한권.

 아마 곧 혹은 머지않아 다른 제목의 책들과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은 필연적 예감을 해본다.

 

이 책의 제목인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말은 맥팔레인이라는 노교수가 손녀 릴리에게 전하는 편지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속의 이야기에 나오는 말이었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테니 너는 두려워 말라며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이다."라고 말하는 든든한 할아버지와 같은 말을 인용해 딸에게 응원의 편지를 띄우는 엄마, 시대와 세대 인종을 넘어선 어떤 깊고 끈끈한 사랑이 느껴졌던 것 같다.

 

들을 때는 그 말이 옳든 그르든 관계없이 '잔소리'가 되어버리는 부모님의 말씀들이 왜 이렇게 한 다리를 건너서 대면하게 되면 쉽사리 납득하고 마음에 새겨지는 조언이 되는지 알 수 없음을 떠올리며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살아가는 것과 살아지는 것의 경계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현재에 안주하느냐 앞으로 나아가느냐의 선택에서 주저앉는가 아닌가가 될 것 같다.

 어떤 편지 속에 담긴 이야기에 '설사 여기 괴로움이 있다해도 그것이 내가 아는 것이라면 더 나았다.'는 말이 있었다.

 그 이유가 참.

 "고통보다 더 두려운 것은 미지이다."라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의 미지에 뛰어드는 것이 두려워 익숙한 현재의 고통을 계속 겪는 것.

 

현재 고통스러워도 그 고통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에 그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고 해도 그 미지의 방법에 도전하는 것보다 이미 알고 있는 고통을 계속 겪는 것을 선택하고 멈춰서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거기서 멈춰서는 순간 우리는 살아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야한다. 그리고 살아가는 인생을 그들은 응원할 것이라고 한다.

 살아지는 인생은 응원해도 소용없는 그저그런 널리고 널린 인생으로 가는 이미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처럼 시시할 것이다.

 

이 이야기를 편지에 적었던 작가의 마음이란,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게 바라는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포기하게 되는 다양성있는 인생과 창조적인 삶에대한 아쉬움이 아니었을까.

 있는대로 스펙을 올리기위해 모두가 달리길 원하는 출세가도에 합세하기 위해 전력질주하지만 그 끝이 꼭 행복으로 이어져있는 것은 아닌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젊음에대한 안타까움은 아니었을까.

 

너무 작가가 수영장에 가게되는 날에만 집중했나보다.

 제대로 읽어낸 기분이 들지 않는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 미지를 두려워하기보다 현재에 안주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 올바른 '표상'을 지녀야 한다는 것.

 오늘은 이정도만 마음에 새긴 것으로 만족하기로 해야겠다.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고 욕심을 내면 하나도 건지지 못하게 되고 만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오늘부터 내 오랜 상처들을 치유해 나가야겠다. 상처가 대물림 되는 이유가 그것이 치유되지 않았았기 때문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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