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어쩐지 바나나의 소설들은 어딘가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그저 평범하게 적어내려간 쉽게 읽히는 평이한 문장들이 왜 그런 느낌을 자아내는지 어디서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지는 역시 알 수가 없다.

 

다만 늘 뭔가 더 들어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더 이상 그 이야기를  계속 들려줄 이가 떠나버린 것처럼 막연하고 막막한 아쉬움과 모호함, 거기서 오는 어떤 갈망 같은 것이 오래 남는 이야기로 기억될 뿐이다.

 

이번 이야기에도 등장하는 일본풍의 그림들이 이제 더는 낯설지 않게 된 것은 참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스스로 평가해본다.

 낯설지 않음은 그녀가 그리는 세계의 어떤 배경이 내 안에서 조금은 자리를 잡게 되었음일테니까.

 낯설음으로 말하자면 철학책을 읽는 기분과 닮아있는 것도 같다.

 철학은 언제나 색다른 얼굴로 등장한다.

 같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해석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런 모습이 엿보인다고하면 난 너무 과장되게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일까.

 

후훗.

 더해서 이야기의 끝에 나름의 결론이랄지, 설명이랄지 뭔가 이해를 돕는 결정적인 단서를 적어놓는 것도 특징적인 것 같다.

 앞의 이야기에서 계속 헤메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마지막 장을 읽었을 즈음엔 "아~ 그런 이야기였던걸까?" 하는 생각정도는 할 수 있게 인도해 준다.

 그리고 조금은 해피엔딩.

 아직 내가 배드엔딩인 이야기를 못 읽어서인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세 권의 책은 비교적 조금은 해피엔딩이었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이 책은 90페이지가 채 되지않는 짧은 소설이다.

 담고 있는 이야기를 간단히 줄여보면.

 엄마가 죽었다. 난 열여덟살이었고, 외동딸이었고, 엄마가 죽던 때 아빠는 자리에 없었고, 엄마가 죽고 얼마 후 마을의 유명인(놀리는 듯한 뉘앙스인) 아르헨티나 할머니라 불리는 여성의 집에 아빠가 눌러앉게 되고, 아빠가 만다라를 만들고, 엄마의 비석으로 돌고래 모양의 비석을 세우고,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쉰인 것을 알았고, 그럼에도 임신을 하고 제왕절개로 사내아이를 낳았고, 나에게 이복동생이 생겼고,

그 동생이 여섯살 때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죽었고, 아빠와 그 이복동생은 아르헨티나로 떠날 준비를 한다. 난 여행을. 그리고 아르헨티나 할머니와의 대화를 회상하며 이야기가 끝이난다.

 

너무 담담하게 적고 있고 주인공 '나' 역시 어딘가 의연하고 침착해서 되려 나 혼자 호들갑 떨게되는 뭔가 이상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런 당황, 당혹, 분노, 좌절이 없는 묘한 분위기가 어색하지는 않다.

 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환경'이 사람들과 배경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었으리라.

 

정말 낯설지만 당황하지는 않게되는 그래서 되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리는 마력적 분위기가 돋보였던 것 같다.

 주인공 '미쓰코'는 "이 인생에서 나를 위한 유적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미쓰코'의 아빠는 석공으로 아내가 죽은 후 '돌고래 비석'과 '만다라'를 만드는 것을 통해 자신의 유적을 만들어 간 셈이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이름은 '유리'는 자신의 집 '아르헨티나 빌딩'을 비슷한 의미로 여기고 있던 것 같고, 아빠와 만나 '미쓰코'의 이복동생을 남김으로써 유적을 완성해 낸 것 같다.

 이 '유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확신하는 것도 없으면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완성했다고 말하는 것이 어딘가 모순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이렇게 적을 수 있는 이유는 "그냥 그렇게 느껴지니까."다.

 

음, 조금 생각해보면 '유적'이라는 것은 이어지고 전해지는 '살아있음의 증거'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죽고 없어져도 남는 것.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부모님이 아르헨티나 할머니에게 남겨준 빌딩, 아빠가 만든 돌고래 비석, 만다라, 이복동생 같은) 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엄마가 죽던 날 '미쓰코'가 받았다고 느끼는 어떤 특별한 선물, 사랑, 기억 같은)일 수도 있겠다.

 다만 "세상에 어떤 의미를 남긴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항상 짧은 이야기는 짧기에 부담없이 읽기 시작하게 되는데 뭔가 짧은 이야기일 수록 더 생각해볼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 짧은 이야기에 어떤 사실 혹은 이야기 감정들을 담아내려니 얼마나 밀도가 높겠나?

 

바나나의 짧고 간결한 메세지 안에 두루뭉술하게 적어나간 그래서 모호하고 아리송하면서 어딘가 일본 특유의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분위기까지가 요술을 부리는 것 같은 이야기였다는 말로 조금 무리하게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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