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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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그 무엇보다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어떤 광인의 인간 실격기" 

 

이야기는 내가 본 한 남자의 세장의 사진, 그 사진 속의 인상에대한 이미지 혹은 느낌을 적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사진의 주인공은 표정도, 인상도, 감정도 없을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마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이야기는 그 사진의 주인공의 수기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적은 듯, 담담한 관찰자의 어조는 그의 비극적 삶을 떠올려 볼 때 무척 어색하고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39세의 나이로 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이 수기의 주인공인 '요조'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살아남았다.

 하지만 자살 시도 이후의 삶은 그를 인간에서 실격하게 만드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그에겐.

 

어쩐지 다자이 오사무와 '요조'를 동일시하게 되는 요소다.

 읽으면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적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니다, '요조'의 이야기를 하자.

 '요조'의 집은 이른바 대가족이다.

 무엇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그는 어릴 때부터 '인간'을 무척이나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불식시키기 위해 항상 '익살'이라는 쑈를 통해 '인간'을 대하게 됩니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 가장 바라는 것은 '무(無)'가 되는 것.

 텅 빈 존재가 되어 사람들에게 거슬리지 않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일찌감치 하인과 하녀들을 통해 '어른들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자신의 '익살'이 모두를 보기 좋게 속여넘겼다고 생각할 때 백치라고 여겨 전혀 주의하지 않던 다케이치라는 중학교 동창에게 자신의 쑈를 간파당하고, 그 후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어떻게든 환심을 사 다케이치와 친해진 '요조'에게 다케이치는 예언하듯 "너한테는 여자들이 홀딱 반할꺼야."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던 어느날 다케이치는 요조에게 도깨비 그림이라며 하나의 그림을 건넵니다.

 요조는 그것이 도깨비 그림이 아니라 고흐의 자화상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본 것을 익살로 얼버무리지 않은 보이는 그대로를 그린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얼마 후 만족스러운 자신을 그린 그림이 완성되자 다케이치에게만 자신에게서 익살을 뺀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케이치는 "너는 위대한 화가가 될 거야."라는 또 다른 예언같은 말을 합니다.

 

이후에도 '요조'의 인간 공포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축복이 아닌 저주처럼 다케이치의 첫 번째 예언이 이루어져 갑니다.

 그리고 첫번째 자살기도. 동반 자살을 시도했던 여자는 죽고 그는 살아남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더 깊은 나락이 그를 찾아옵니다.

 

언제나 인간으로부터 도망치던 그에게도 때로 빛이 비추는 것 같을 때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빛은 곧 사라지고 더 깊은 어둠이 그를 찾아옵니다.

 망가지고 망가졌을 때 희망이 그를 찾아옵니다.

 바로 '요시코' 의심할 줄 모르는 진실한 여자.

모든 인간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그와 정반대편에 서있는 '요시코'와의 만남은 그를 갱생시켜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순수했던 '요시코'의 의심할 줄 모르는 신뢰심은 능욕당하고 '요조'는 절망의 끝에서 결국 인간 실격에 이르고 맙니다.

 

 

오랜만에 비극을 읽은 것 같다.

 주인공의 삶과 작가의 삶이 너무 닮아있어서 더 비극적인 이야기.

 

무엇이 그에게 인간을 그토록 두렵고 경계해야만 하는 존재로 만든 것일까.

 그러고 보니 그의 엄마 이야기도 보지 못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것일까?

 

인상이 없는 인간, 무(無), 공허한 존재가 되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 긍정적인 단어들과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불신을 짝지어 놓아야 했던 그의 삶.

 

그런 뒤틀림이 무척 자극적이었던 소설이다.

 

이렇게 읽어봐야 결국 겉핥기에 그칠 것 같다.

 다자이 오사무를 알고 그 시대를 알아야 작품을 바로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섯번이나 자살을 시도해 결국 다섯번째 성공해 죽음에 이를 수 있었다는 다자이 오사무.

 이 이야기가 그의 절망과 절규가 담긴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더해본다.

  

극도로 인간을 두려워했던 '요조'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가족에게서 세상에게서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사람들 속에서만 극복하고 떨쳐낼 수 있는 두려움 이었음을 겨우 깨달았을 뿐이다.

 인간은 두려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인간은 따뜻한 존재임에도 틀림이 없다.

 인간만이 인간을 절망에 빠뜨릴 수 있다. 그리고 인간만이 그 절망에서 구원할 수 있다.

 

두렵다고 가면으로 자신의 진면목을 가리고 거짓된 나를 연기하는 치명적 실수를 범하지 말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그토록 동경해왔던 우리를 향한 신뢰심, 그 사랑을 잡을 수 있으리라.

 

쉽게 읽히더니 감상을 적어내기가 이리 어려울 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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