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 성심당의 도시, 대전이 만들어진 이유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104
주혜진 지음 / 스리체어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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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 소도시로 이주하면서 서울에서 알고 지내던 대부분의 사람들과 멀어졌다. 처음에는 드물게나마 안부를 물었지만 몇 년이나 지난 지금은 SNS나 우연히 연락이 닿은 지인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전부다. 이렇게 얘기하면 '소도시의 쓸쓸'이나 '지방의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겠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소도시 생활에 적응하고 나니 서울에서 살며 누리거나 누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편안함과 낯선 도시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불편과 어려움에 두루 익숙해진 지난 겨울 이 책을 알게 됐다.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보고 '대전이 노잼도시'인 이유와 그럴 수밖에 없는 근거를 담은 책인걸까 생각하며 천천히 읽었다. 대전이 노잼도시로 불린다는 걸 이렇게 명확하게 인지한 건 처음이라 가벼운 충격과 궁금증이 생겼다.


 책은 크게 다섯으로 나누어 지방 도시, 노잼도시, 대전을 이야기한다. 처음은 현재 거의 모든 지역이 직면한 소멸이라는 이슈로 연다. 다음으로 검색과 SNS가 도시와 장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고, 세 번째로 노잼도시 대전을 분석한다. 네 번째로 분석의 결과물 중 '힙함'을 부각해 왜 힙하거나 힙하지 않은지 이야기 하고 마지막으로 '나만의 도시'라는 새로운 방향을 들여다 본다. 


 책은 검색어, 게시물, SNS 등의 콘텐츠 분석을 기반으로 작가의 경험과 생각을 이어간다. 기분이나 추측으로만 쓰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얻었고 덕분에 대전 옆 더 작은 도시에 사는 나의 경험과 생각을 자극하는 부분이 명확해졌다. 


 우선 충남의 소도시 출신이라는 지방도시 출신인 나를 돌아보게 됐다. 지방 출신인 걸 숨기거나 부끄러워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디나이얼 지방출신'이라는 개념은 생소하지만 처음 대도시에 살게 되었던 무렵 실제로 뭔가 지방보다는 대도시가 좋아보이고 서울은 더 우위에 있는 듯 느꼈던 경험을 되살려냈다. 지방 출신인 게 잘못은 아니지만 뭔가 덜 좋아보였던 경험이 이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강화되어서 지방에서 서울의 어느 지역, 어느 장소, 서울에 있는 어떤 카페나 식당 등을 모방하며 닮으려거나 따라가야 한다는 경향도 종종 체감한다.


 무엇을 해도, 어떤 것이 생겨도 서울에 비교 당하는 지방의 현실.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이 지금에 이르러 오히려 견고해져 있었다.


 대전뿐 아니라 거의 모든 지방 도시가 같은 처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서울이 아니면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소도시에서 살아가기를 택한 나로서는 서울을 동경하고 서울로 지향하는 주류의 분위기와 다른 비주류의 '나만의 도시'를 찾는 사람들의 챕터가 가장 흥미로웠다. 


 오래 전부터 도시는 생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예전과 지금은 그 생각의 결이 달라졌다. 예전의 생물이 다양한 모습을 지닌, 다름과 새로움이라는 관점이 컸다면 지금은 태어나서 기쁘고 죽어감에 슬퍼하는 도시의 감정 관점에서 생물 같다고 생각하게 된 거다. 노잼도시로 남아서는 안 된다거나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거나 살고 싶은 도시로 변모해야 한다거나 하는 슬로건에는 사는 사람이 없어지면, 재미가 없어지면, 매력을 잃어버리면 지도상에서 사라져 역사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될 거라는 불안이 읽힌다. 불안을 넘어 초조해 하고 두려워 하는 '감정'을 체감하게 되는 거다. 


 어떤 도시가 살아남을까.

노잼도시 이야기는 이런 질문으로 이어졌다.


 소도시에 살기로 하고 살아오며 더 확신하게 되는 게 있다. '나의 경험', '나의 기쁨'이 도시의 곳곳에서 살아있을 때 그 도시에 마음이 끌리고 더 살고 싶다고 느끼게 된다는 거다. 큰 쇼핑몰이 없다거나 백화점이 들어설 가능성이 없다거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부재 같은 건 부수적 차원의 문제다. 내게는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어울리면 즐거운 사람들이 도시의 물리적 요소보다 중요했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 떠날 때가 가장 소도시를 떠나고 싶어지는 때일 거라 생각한다. 


 내 관점에서 '재미'는 소비의 요소다. 그리고 지방 정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도시를 소비하러 오도록 꾸미고 홍보한다. 이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그 도시에 살고 싶어지게 했던 매력이 사라지기도 한다. 대도시와 닮은, 어느 지방 도시에도 비슷한 게 있을 것만 같은 아류가 주류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 지방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은 도시가 재미없어진다고 느낀다. 이야기가 사라진 탓이다. 무난하고 평범하게 새로운 도시는 재미있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오늘은 몰라도 내일은 아닐 것이다.


 질문을 떠올리게 하고 질문의 대답으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매력과 재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한다는 지점에서 이 책은 적당하다. 재미 없어서 떠나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 책에서 제시한 방법은 시도해 볼 만 하다. 무엇보다 어디에 살고 있든 도시의 일부가 아닌 도시가 내 삶의 일부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읽어 볼 만 하다. 서울 역시 세계로 시야를 넓혀 보면 지구의 어느 지방이라는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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