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메리 파이퍼 지음, 안진희 옮김 / 위고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서 가장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 '나'였던 날이 있다.

어디 가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고,

'나'가 누구인지, 어떤 모습으로,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를 먹이고 나를 키우고 나를 살찌우며 나 스스로 생각하며 나로 호흡하면서도 그 모호한 정체를 밝히지 못한.


세상 속 사람들을 오래 살피고 관찰해봐도 그 안에 나는 없었다. 

때때로 닮은 사람을 보거나 만난 날은 있다. 

 '어쩌면'.

불행한 과거, 잘된 미래, 다행스러운 오늘의 '나'가 아닐까 싶은 추측을 늘어놓게 되는.

결론은 항상 '저건 내가 아니다'였다. 

닮은 줄 알았던 건 언제나 섣부른 기분의 문제.

자꾸만 속으로 침잠하면서 '나'를 찾고, '나'와 마주할 방법은 멀어지는 듯했다.


이제는 습관이 가져온 우연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읽던 책에서 어린 나, 조금 더 자란 나, 어쩌면 내일의 '나'일 것만 같은 이야기와 만난.


 오늘을 사는 사람들 이야기보다 옛날이라고 뭉뚱그리는 과거 사람들 이야기에서 더 많은 '나'를 찾았다.

평론가나 교수, 전문가가 쓴 글보다 어느 이름 없는 독자가 쓰다만 감상이 더 마음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렇게 오늘에서 먼 과거에서, 유명보다 무명에서 '나'를 만나는 길을 찾아다니다 닿은 자리가 지금 여기인 셈이다.


 여전히 이름난 누군가가 남긴 추천사 보다 작은 책방을 지키는 이의 한 마디가 더 강하게 책과 나를 이어주고 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마포구청 역 근처의 작은 책방 '그렇게 책이 된다'에서 만난 책들처럼.


 오늘은 그중 하나,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우선순위 문제겠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경제적 안정이 심리적 안정에 우선하는 듯 보인다. 

물론 경제적 안정은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둘 사이에 명확한 선후관계, 특히 경제적 안정이 우선될 때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가 존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을 때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아닐까.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 스스로가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 주위 사람이나 주변 환경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들은 흔히 나약하다고 여겨졌다. 나약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믿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결국 자기 자신도 타인도 쓸모없다고 믿어버리기 쉬웠다. 

 강하고, 당당하고, 뚜렷한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 

섬세함이나 신중함, 모호함은 때때로, 어느 영역에서만 '재능'으로 인정받거나 '쓸모'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쌓은 시간의 결과가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이다.

'불안'으로 함축되는 아픈 세계.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를 읽으며 '심리치료'를 생각했다.

나는 심리치료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우리 사회는 또 어떤지 궁금해졌다.

내게는 심리치료라는 말보다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상담'이 더 익숙하다.

섣부른 결론이겠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이나 심리 역시 의학이라는 전문 영역에서 전문가가 환자를 '치료해 주는' 진단과 처방 개념에 치우쳐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더 강해진 건 저자의 생각, 이야기에서 여러 번, 거듭, 반복해서 언급되는 말이 이런 맥락이기 때문이다.

우리 심리치료사들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특별하다거나 내담자보다 우월해서 치료사의 자리에 있는 게 아님을 자신에게나, 자신에게 조언을 듣는 사람에게나 거듭 일깨우고 있는 거다.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는 심리치료사인 메리 파이퍼가 심리치료사 과정을 준비하는 대학원생 로라에게 쓴 편지 형식의 글을 묶은 책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 전하고자 하는 마음과 의지를 다양한 사례와 인간 심리를 꿰뚫는 작가들의 문장을 통해 전한다. 


 주목할 부분은 자신을 치료자라거나 전문가라며 권위를 세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실수할 수 있는 여지와 불완전한 판단의 위험, 내담자와의 공감과 소통에 무게를 두고 있는 거다. 

 또한 저자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네럴리스트를 자청하고 더 많은 내담자를 상대함으로써 더 많은 돈을 벌기보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쓰라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심리치료사가 마법사가 아니며 내담자 자신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그렇게 이제 막 심리치료사의 길에 들어서는 이에게 염려와 자부심, 사랑을 담은 편지는 한 해, 네 계절을 돌아 끝을 맺는다.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를 읽으며 만난 나는 과거의 나이기도 하고, 지금 혹은 내일의 나일 수도 있는 '나'다.

우울함을 호소하는 이에게 가장 자주 권하는 방법인 '적당한 운동'이나, 글쓰기에서 실제로 큰 도움을 받은 경험도 되살아났다. 


'자기'와 '나', '우리'를 둘러싼 일상에 고민하는 이라면 누구든 읽어봐도 좋겠다.

 

책을 만나는 과정, 책과 만난 장소, 책을 선택한 이유가 중요하지 않던 때가 있다.

거의 모든 책과의 만남이 취향과 경험이라는 관성의 레일 위에서 이루어졌으므로.

관성은 편안하고 안전한 선택을 보장할 수 있지만 의도치 않게 의외의 '나'와 만나는 기회를 빼앗을 수도 있음을 안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의외의 선택을 하기엔 지나치게 신중한 편이라 그럴 수도 없다.

그렇기에 책방을 지키는 책방지기의 선택과 추천이 큰 의미가 될 수 있다.


자기 안에서 '나'를 찾기는 몹시 힘이 든다.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찾을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책은 '나'와 만나는 방법 중에 가장 수월하고 믿을만한 수단이다. 

자신에게 태만하지 않는 한 노력에 배신당하는 경우도 적다. 


시시때때로 손에 닿는 책을 펼치길,

손에 닿지 않은 책도 발길 닿는 곳에서 집어 들길.

이야기 안에서 종종, 때로, 반드시 만날 '나'와 이야기 나누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