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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평점 :
세상의 모든 인간은 가슴 한가운데 '죽고 싶음'으로 흐르는 황토색 강물이 압정 박혀 있는것 아니냐고,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먹을 버들 잎을 스스로 찾아가는 버들잎벌레가 아닌 이상, 양육자의 보살핌과 관심에 기대어 사는 유년기를 보낸 두발이엄지라면, 그 두 발로 서기 위해 끊임 없이 넘어지고 쓰러진 기억이 불안의 빗물과 슬 픔의 탄산에 섞여 동굴 속 종유석처럼 늑골 사이 사이에 굳어 있지 않으냐고, 비록 하나하나의 사건과 인과는 망각의 수레바퀴로 굴러갔지만, 그런데도 얼어붙은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뜬금없는 표정을 그리는, 그리지 않는, 흙탕물의 인간이라면, 그게 너라면, 나는 주저 없이 너의 죽고 싶음에 동참해주겠다고, 버들은 생각했어.
p.049
호랑은 버들의 대답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어. 같이 죽을 수 있으니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p.051
여기서 잠시, 무척추동물 독자들은 시원하게 트림하길 권한다.
모필자가 말한다.
인간이 뿜어내는 감정의 박막층에 중독되지 않으려면 차분한 해독 과정이 필요하다. 같이 죽을 수 있다는 약속이 어떻게 같이 살고 싶다는 의지로 바뀌는 것인가, 그들은 죽음을 뭐라고 여기는 걸까? 대체 왜 그렇게 죽음을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는 내내 불안에 떠는 것인가.
p.052
필자로선 버들의 그 심해 탐험이 어째서 병으로 취급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필자의 톱날침을 걸고 맹세하건대, 잠처럼 우리를 숨겨주고, 잠처럼 우리를 도약하게 만드는 시간의 순간 이동 단추는 없다. 잠이야말로 우리가 발명해낸 고치 들기의 비법이자 우리가 우리 안으로 신비를 불러 모으는 탈피의 방식이다.
p.065
언제나 두발이엄지들은 이건 넘치고, 저건 부족하다며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잖아. 세상을 온통 거울과 렌즈로 뒤덮고서 끊임없이 자신이 어떻게 보이나 비춰보잖아?
p.075
자연으로 돌아가!
두발이엄지? 이게 뭐람~~처음에는 갈피를 못잡았었는데 읽다보니 어느새 나도 그들의 입장에서 버들과 호랑 두 여성 두발이엄지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이 책은 세 명(?)의 곤충들이 두발이엄지들을 연구한 기록지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번식을 하는데..레즈비언인 버들과 호랑을 연구하는 모기.톡토기.거미 곤충들의 시선을 통해 인간종에 대해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또한 번식을 하지 않는 일이 과연 생태계에 위배되는 행동인지에 관한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시선에서 보는 버들은 일반적이지 않을것이다. 양극성장애를 겪고 있고 불면증으로 항상 잠이 부족하고 그러다 하루종일 자기도 하고..자연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하지만 버들을 관찰하는 곤충들의 입장에서는 버들의 행동들이 전혀~~이상할것없는 현상들이다.
곤충들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같은 종인 인간만이 인간을 차별하고 혐오하고..에휴..
곤충의 시선이기에 빵터져 웃기기도 하고 독특한 시선으로 재미있게 읽어나가다 보면..사랑이라는 감정..그리고 남성의 강제적인 성폭행. 자연의 순환까지 다양한 주제를 품고 있는 소설이라는걸 알수 있다.
너무도 독특하면서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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