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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나
이종산 지음 / 래빗홀 / 2025년 3월
평점 :
고양이와 나/ 이종산/ 래빗홀/ 2025년 3월/ 252쪽
거리를 걷다 동성커플, 여장 남자 또는 코스프레 복장을 한 사람을 마주치는 경우, 나도 모르게 흠씬 놀라게 된다. 그쪽 방향으로는 의식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게 된다. 간혹 내 시선에 불편한 기운이 담겨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퀴어 소설을 좋아하고 즐겨 읽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현실에서 그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굳어버린다. 언제쯤 자연스러워질까?
이종산 작가의 신간, <고양이와 나>는 한 해의 마지막 날, 고양이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과 그들 주변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거대한 고양이가 나타나 한 장의 종이를 내민다. 거기에는 이런 질문이 적혀 있다.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사시겠습니까?”
새해 아침, 세계 인구의 약 오 퍼센트가 인간의 삶을 버리고 고양이의 삶을 선택했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고양이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했는가? 그리고 고양이가 된 지금, 그들은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인간으로 살던 과거, 고양이로 사는 현재. 아직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고양이가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
이번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생물학적, 통계학적으로만 같은 종일 뿐, 인간이 가진 사고, 가치관 그리고 성정체성 등으로 분류하면 우리는 서로 다른 종이라 해도 무방한 게 아닐까?
다름은 차별이 되고, 차별은 왜곡된 사고로 연결되고 그 사고는 폭력이 되고, 인간에게서 자유를 빼앗아간다. 삶에서 달아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 고양이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고민될 수밖에.
또한 이 책은 ‘관계’라는 단어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 살아가는데, 이 관계가 참 문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굉장히 평화로운 지구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모든 문제들이 시작된 것이다.
관계에는 다른 형태가 있을 뿐 그 이상이나 그 이하는 없다.(p.180)
이 문장을 기억하려 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 갈등, 부부 사이 갈등, 동료•선후배간 갈등 등 관계에서 오는 문제는 바로 그 관계를 규정하는 순간, 서로에게 역할과 책임이 부여되기 때문일 테지. 결국은 의무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면 관계는 깨지고 만다. 그런데, 180페이지의 문장은 나의 생각을 깨끗하게 소멸시켜 주었다. 신박한데~
책방 주인이던 사람이 고양이로 사는 삶을 선택했다. 그는 그 삶에 만족했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부러웠다. 놀랍도록 신선한 그의 사랑에 관한 개념이 나는 또 마음에 들었다. 시간과 일정을 공유해야만 사랑이 유지되고 증명될 수 있는 게 사랑인가? 그러면 자신의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라는 의문. 나는 그의 의문에 동일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에게 사랑은 내면에 있는 어떤 것. 진실한 마음.
p.127 사무실에 있다가 외출하는 것을 나는 외근이라 부른다. ‘외출’이라고 하면 하는 일이 없어서 한가하게 땡땡이나 치는 것 같지만, ‘외근’이라는 말을 붙이면 일을 하는 기분이 든다. 세상의 일은 결국 단어를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
p.180 우리는 친구 사이였고, 나는 그 이상을 바라자 않았다. ‘그 이상’이라는 것도 이상한 말이다. 관계에는 다른 형태가 있을 뿐 그 이상이나 그 이하는 없다.
작가는 고양이가 된 인간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고양이는 온통 귀여움 그 자체이므로. 뿐만 아니라 그는 보편적 정상인이 아닌 화자들을 등장시키며 그들이 가진 관계와 사랑에 대한 생각을 서술했으며, 나는 그가 날린 훅에 제대로 한 방을 맞고 넉다운되었다. 성공이다, 성공!
특히나, #이름없는출판사 속 대표가 참 마음에 들었는데, 이건 아마도 작가님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자신이 하는 일을 상대에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데, 그 이유인즉슨 책과 관련된 일이 너무너무 멋지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자의식, 그 우쭐함을 없앨 수 없기 때문이란다. 너무 마음에 드네, 이 사람! 책에 미친 사람과 이야기할 때 대화가 가장 잘 통한다는 말에도 공감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