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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통 역사 - 고속도로, 고속전철, 서울시 교통정책을 통해 본 교통의 과거와 미래 제언
차동득 지음 / nobook(노북) / 2024년 10월
평점 :
한국 신도시 도시계획의 산증인이셨던 안건혁 교수님의 책에 이어서 이번엔 교통계 원로의 회고록을 골라봤습니다. 저자 차동득 박사님은 몇 년 전에 제가 학회의 민간투자사업 최고경영자과정을 들으면서 과정을 주관 하셨던 교장으로 뵈었던 분입니다.
한국도로공사-국토연구원-교통연구원을 거쳐 서울특별시 교통관리실장으로 1980~2002년까지 계셨고 그 이후로 협회와 산업계쪽에서 활동해오셨더군요.
저자께서 공공쪽에서 일하셨던 시기가 한국의 교통 인프라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모두 한 단계 도약하던 시기라서 돌이켜 보면 당시 의구심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사명감으로 정책을 추진해간 고위관료와 정무직, 정치인들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지금와서 보면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 같지만, 일본과 비교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나라의 광역환승교통체계처럼 해야할 시점에 일을 하지 못한 대가는 계속 후손들이 치르고 있지요.
어제 타결된 관세협상에 따라 미국에 수출할 때 내는 편무관세 15%가 선방이라고 위안삼을 수 있겠지만, 이런 시기엔 우리들 스스로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7년 한미FTA 타결 때 겪었던 국내의 극심한 반대를 복기해보고 지난 근 20년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망 구축, 고속전철 도입 사업,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정비한 서울시 교통정책 등을 20년 전에 추진했던 분의 회고를 듣는 것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도로공사가 경부고속도로를 한창 건설 중인 1969년에 설립되었고, 대왕판교IC가 예전 한국도로공사의 후문으로 바로 연결하기 위해 생긴 IC였다는 점, 국내 최초의 종합교통정책 수립 사업의 시초가 <경기지역 종합 교통망 체계 조사>(1984)라는 점, 전두환 정권시기 교통SOC 건설을 경시했다가 1980년대 중후반 교통물류 혼잡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크게 치른 덕분에, 제가 일하고 있는 한국교통연구원(당시 명칭 교통개발연구원)이 생겼다죠.
교통연구원이 출범하면서 혼잡으로 인한 부의 편익을 보여주기 위한 교통혼잡비용 추계가 시작되었고, 이런 논리와 시민들의 불만에 힘입어 목적세인 교통세가 신설되고, 수요관리정책으로 버스전용차로제가 도입되고, 1994년 민자유치촉진법이 제정되기도 전에 도로분야에서 민간투자사업이 시행되었구나 싶었습니다. 건설부와 교통부가 별도 부처로 존재하던 시절의 힘겨루기도 같은 조직이 된 이후밖에 모르는 입장에서는 신기하고요.
1990년 즈음 우리나라에 철도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전문가가 정말 없었고, 엔지니어링계의 역량도 낮았다는 상황을 이해하고 나니 지난 7월 16일에 내려진 대법원 용인경전철 주민소송 재상고심 판결이 더 아쉽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책에서 편집자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소속도 여러 차례 옮기셨고 워낙 오래 전 일들을 정리해서 2024년에 펴내다보니 불충분한 기록들 때문에 정제해서 쓰기는 어려웠겠지만,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목차의 체계가 맞지 않는 등 책의 완성도에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좋은 편집자의 손을 거쳤더라면 훨씬 훌륭한 책이 되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교통비전공자인 교통연구원 연구자로서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이 넘쳐나서 발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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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1968년에 시작된 경인고속도로는 일본 설계회사인 공영토건에서 설계하였지만, 미국의 도로 설계 이론이 토대가 되었고, 1969년에 설계한 경부고속도로는 우리 손으로 주로 미국의 블루북 설계지침을 활용하여 설계되었다.
93쪽
이 때 확정된 수도권 종합 교통망에서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의 효과를 요약하면, 서울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을 간다고 가정할 때, 시내를 가로지르는 것보다 순환고속도로를 따라 둘러 가면 30% 이상 시간이 절약 가능하도록 적당한 반경의 크기가 만들어진 것이고, 이렇게 결정된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외곽 순환 고속도로(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이다.
102쪽
1985년에 110만대에 불과하던 차량이 1990년이 되면서 339만 대로 매년 25%씩 성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기간에 고속도로 연장은 1,415km에서 1,550km로 135km가 늘었을 뿐이다. 1985년 이전 10년간 늘어난 전체 차량대수가 이때부터는 매년 늘어날 정도로 차량증가속도가 기하급수적인데도 재정당국의 대처는 과거의 안일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15쪽
1991년초 노태우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당면한 교통혼잡 상황의 조속한 해결의지를 피력했다. 그리고 1991년 3월, 대통령 직속기구인 <사회간접자본 투자기획단>이 한시적으로 설립되었다.
(중략)
SOC 투자기획단은 교통 투자의 활성화를 위해서 사상 처음으로 민자유치를 통한 고속도로 등 교통 투자의 길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도 집중하였다.
151쪽
예타의 특성상 비용과 시간을 줄여 가능한 한 간단히 검토하는 것이 본래의 취지이다. 따라서 예타를 거친 것이라고 해서 노선이나 기타 도로 제원을 변경하지 못한다면 이는 더 큰 문제의 소지가 될 수도 있다. 이후 본 타당성 조사까지의 과정에서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정밀한 분석을 실시하여 보다 나은 노선, 교차로, 공법 등 보다 정교한 검토가 이루어지므로 변경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판단의 기준은 도로 건설 목적, 교통량 분산, 교통처리 비용, 운영상 안정성, 환경피해, 주민 피해 등 제반 요소를 합리적으로 종합하여 평가한 결과인 것이며,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면 되는 것이다.
175쪽
1945년에 우리가 보유했던 철도망은 2,725km였다.
(중략)
그러나 1990년이 되어도 우리나라의 철도 연장은 별로 증가한 것이 없어서 3,091km에 머무르고 있었다. 45년 동안 철도 연장의 순증가분이 360여km에 불과하여 평균 일년에 8km씩 거북이걸음으로 증가했다. 따라서 철도를 설계하는 철도기술사도 최소한으로 양성되고 있어서 철도 전문 설계회사가 1990년까지 <유신설계공단>, <철도협력회> 등 두어 곳밖에 없었고, 실제 업무에 종사하는 전문가 숫자도 각 사에서 5~6명에 불과한 아주 열악한 환경이었다.
269쪽
복합환승센터 정책이 2009년에 제도화되었지만, 실천이 이루어진 것은 2024년 현재까지 동대구역이 유일하다는 것은 반성해야 할 일이다.
282쪽
삼성역 광역복합환승센터는 각계의 계속된 KTX역 별도 설치 건의에도 불구하고, 고속열차가 GTX-C와 역을 겸용하는 어설픈 방식으로 2021년 6우러에 2028년 완공 목표로 착공하게 된다.
297쪽
마침내 1999년 10월에 토큰과 함께 회수권 제도를 폐기하기로 결정하여 20년 넘게 사용되던 서울시 시내버스의 요금 체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전자카드와 현금만으로 지불되게 단순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