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타이어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소설에서 추리나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하면 대게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을 떠올린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연히 발견한 <하늘을 나는 타이어>의 작가 이케이도 준은 일본에서 '금융미스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도 숨겨져 있던 보물같은 작가가 되었다. 

아카마쓰운송의 사장 아카마쓰는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자기 회사의 한 트럭이 운행 중 타이어가 빠져나가 길을 걷던 모자를 덮쳐 어머니가 즉사했다는 것이다. 이 타이어는 무게가 140kg에 달한다. 트럭의 제조사인 호프자동차에서 트럭을 회수해서 조사를 하고 결론은 '정비불량'으로 나왔다. 하지만 정비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보통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정비를 해왔으므로 아카마쓰는 그 결론을 납득할 수 없다. 진상을 밝히기 위해 호프자동차를 상대로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지만 대기업에서 동네 운송업체를 상대해줄리 만무하다. 그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데 피해자 가족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화가 나서 아카마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아들의 학교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들에게 도둑 누명을 씌우기까지 하는데...............

여기까지가 기본적인 줄거리이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카마쓰의 시점에서 풀어쓴 이야기이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주 많은 등장인물들 각각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해본다면 한가지 사실을 두고 여러가지 줄거리가 나올 수 있다. 그만큼 이 사건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하긴, 무슨 일이든 내가 보는 것이 다르고, 옆 사람이 보는 것이 다르니까. 

단순히 '정비불량'이라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다는 걸 알아챈 호프자동차 고객전략과 과장 사와다는 마음이 맞는 동료와 내부적으로 사건을 조사하다가 회사의 '리콜 은폐'를 알아차린다. 호프자동차는 이미 3년 전에도 리콜을 은폐하려다 발각되어 소비자의 신용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대기업 계열사이기에 아직 버티고 있지만 사실 그 때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 없었다. 사와다는 다시 한번 '리콜 은폐'가 만천하에 공개되면 다시는 회사가 일어설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내부고발을 하려 하지만 그것도 마음 먹은 대로 잘 되지 않는다. -- 사와다는 처음 아카마쓰 사장을 상대할 때 거만한 대기업 과장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회사를 살리겠다는 용기를 가지고 내부고발을 단행한 점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것이 억울한 중소기업과 피해자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조직의 권력구도를 바꿔보고자 한 욕심에 기인한 것이었으므로 뒤로 갈수록 그의 행동은 '정의'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호프자동차의 융자를 담당하고 있는 도쿄호프은행의 이자키 조사관. 실적은 점점 떨어지고 신용할 수도 없기에 호프자동차에 거액의 융자를 해 줄 수 없다고 판단하지만 같은 계열의 대기업이기에 온갖 압박을 받고 있다. 현장의 담당조사관의 판단이 융자심사의 큰 역할을 해야 하지만 사실 융자심사는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도의 정치적인 전략과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자키는 훌륭하게도 끝까지 신념을 버리지 않고 융자보류를 주장한다. -- 소신있는 은행원이다. 하지만 실제로 은행이든 어디든 직장에서 윗선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부릴 수 있는 직장인이 있을까? 결과적으로 잘 한 일이지만 과정적으로 그는 과연 조직에서 이쁨을 받을 수 있는 직원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런지 씁쓸한 감상이 생긴다. 그리고 이자키와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은행에서 계속 주장하는 '컴플라이언스'라는 것. 도덕성의 저하를 우려해 범죄에 연루된(단순히 수사를 받은 것도 포함된다.) 기업에는 융자를 해 줄 수 없다며 아카마쓰운송을 무시한 은행이 마찬가지로 가택수색을 받은 호프자동차에 대해서는 컴플라이언스의 '컴'자도 들먹이지 않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기업의 리콜 은폐를 알아차리고 이를 보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간지 기자도 있다. 아카마쓰운송 뿐 아니라 여태까지 호프자동차의 트럭이 일으킨 사고를 두발로 뛰면서 조사해온 에노모토는 드디어 주간지에 기사를 실으려 하지만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호프계열의 회사들이 광고를 실어주지 않겠다며 압박이 들어오자 주간지의 윗선에서 기사 게재를 보류했기 때문이다. 에노모토는 주저앉고 만다. -- 과연 언론의 역할은 무엇일까? 요즘 현대 사회에서 언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될 일도 언론에서 떠들어버리면 물거품이 되고, 되서는 안 될 일도 언론 플레이를 잘 하면 얼렁뚱땅 해결된다. 하지만 그 언론마저도 돈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 밝고 맑고 명랑한 사회는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호프자동차의 조사 결과 '정비불량'으로 결론이 나자 이를 바탕으로 아카마쓰운송을 가택수색를 하고 사장과 정비담당을 체포하기 위해 노력하던 경찰은 벽에 부닥치고 만다. 사실 아카마쓰운송은 '의외로' 정비도 상당히 잘 하고 있었고, 깨끗했기 때문이다. 피해자 가족에게는 진범을 잡아 그 억울함과 슬픔을 조금이나마 줄여드리겠다고 약속했으나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정비 불량이 아니라고 계속 주장하는 아카마쓰 사장의 외침은 파렴치하게 들릴 뿐이다. 그러다가 아카마쓰가 제시한 결정적인 자료를 보고는 수사의 관점을 아카마쓰운송이 아니라 호프자동차로 돌려 진지하게 수사하게 된다. -- 경찰의 역할은 무엇인가? 최근 영화 <아저씨>를 보았다. 주인공의 시점으로 그려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억울하고 진실된 주인공의 말은 듣지도 않고 무조건 주인공을 잡아 '쳐넣으려는' 경찰이 무식하게 보인다. 주인공이 못된 무리들을 혼내주고 범죄의 온상을 발견해서 경찰에 알려주면 경찰이 뒤늦게 달려와 현장을 정리하는 식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주인공의 시점이 아닌 객관적인 시점으로 이야기를 바라보면 분명 '나쁜 놈'은 주인공이다. 모든 증거와 상황이 주인공을 범인으로 지목하니 경찰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처럼 이 소설에서도 대부분의 "증거"가 아카마쓰운송을 사건의 원인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니 경찰도 처음에는 아카마쓰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이 바로 그 "증거"가 호프자동차에서 조작해낸 조사결과보고서였던 것이다. 대기업의 연구실에서 제출한 보고서이니 그 진위를 확인할 조금의 생각도 없이 당연히 믿어버린 것이다. 물론 뒤에는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수사를 하긴 하지만. 

글이 많이 길어지고 있다. 사실 할 말은 엄청나게 더 많다. 한 명 한 명 꼬집어서 비판하고 칭찬할 등장인물이 훨씬 많은 것이다.
한가지 사실을 두고 여러 사람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흡입력이 대단하다. 책이 꽤 두꺼운 편이지만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쉽게 놓지 못한다. 다만 진실을 대략 알고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당하고 치이는 아카마쓰 사장의 입장에서 읽고 있기 때문에 감정이입을 해서 억울하고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신나게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과연 언제 아카마쓰가 호프자동차에 한방 먹일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아카마쓰는 부도를 면하고 웃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읽을 수 밖에 없다. 그 억울함을 이겨내고 경제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다양한 집단의 내면이 궁금하다면 읽어보면 상당히 재밌을 거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오랜만에 누구의 강요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고른 책을 즐겁게 읽고 스스럼없이 리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한동안 독서와 리뷰가 의무감으로 겨우겨우 해냈던 시간이 꽤 길게 있었는데 아주 좋은 변화이다. 백만년만에 가본 듯한 시립도서관에서 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온몸이 들썩들썩 거렸다. 일본소설 그 중에서도 추리소설을 특히 좋아하는데, 솔직히 한 번 재밌게 읽고는 다시 손이 잘 가지 않아서 돈 주고 구입해서 읽기는 좀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찌나 작품이 많은지, 그걸 다 소장하기에는 벅차서 아예 손을 놓아버렸던 거였다. 그랬는데 도서관에 그 작가들의 책이 구석구석 숨어서 '나 여기 있지롱~'하며 깜짝 깜짝 놀래키는데,, 아휴, 그 기분이란.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낙원>. <모방범> 이후 9년의 시간이 지나서 일어나는 또 다른 사건 이야기. 진작부터 읽고 싶었는데 이번 여름 휴가에 다 읽어야지~ 하며 두 권을 동시에 빌렸는데, 글쎄 하루만에 두 권을 다 읽어버렸다. 역시 가독성 하나는 최고다. 누구도 그녀를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리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역시나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쉽게 술술 읽히면서도 다 읽고 나면 그 여운이 진하게 남아서 이렇게 글로 남겨놓지 않으면 마음에 계속 남아서 내가 불편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낙원> 속 등장인물인 어린 히토시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광경을 그림으로 그려내지 않으면 머릿속을 빙빙 도는 그 영상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처럼.

 

<모방범> 속 사건인 연쇄유괴살인사건을 취재했던 프리라이터 마에하타 시게코는 그 사건의 충격으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야 몸을 추스리고 작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지내고 있는데 그녀에게 어떤 사람 좋아보이는 부인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자신의 아들이 그린 그림이 이상하다고. 그림솜씨가 아주 뛰어난 아들이 공책에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들은 마치 유치원생이 그린 것처럼 삐뚤빼뚤 엉망이긴 하지만, 아들의 머릿속을 빙빙 도는 영상을 그림으로 그려낸 거라고 한다. 그 중에는 마치 예지몽처럼 미리 예언이라도 하듯 나중에 밝혀지는 사건을 암시하는 그림들도 몇 장 있다. 그 중 아들이 죽기 전 그린 그림 한 장. 거기에는 박쥐모양풍향계가 달린 집에 회색빛깔의 한 소녀가 누워있다. 히토시는 그 소녀는 이 집을 벗어날 수 없어서 슬퍼한다고까지 얘기했다. 그 후 히토시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뉴스에 떠들석하게 나오는 사건이 있었다. 목조건물에 화재가 났는데 그 집 부부가 경찰에 자진출두하여 16년전에 자신들이 딸을 죽여서 마루 밑에 시체를 숨겨놓았다고 자백한 것이다. 실제로 마루 밑에는 시랍화된 소녀의 시신이 나왔다. 하지만 살인사건 공소시효 15년을 넘긴 터라 그 부부의 죄는 처벌받지 않았다. 과연 히토시는 이 사건을 어떻게 알고서 그림을 그린 걸까. 

시게코는 히토시가 어떤 능력이 있어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일들을 알고 있었던 건지 조사하기 시작한다. 거기에는 히토시가 그린 '산장'그림의 영향이 컸다. 이렇게 <낙원>에는 <모방범>속 사건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시게코가 9년 전 그 때 그 프리라이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9년이나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그 사실이 시게코의 조사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한다. <모방범>을 읽은 지 시간이 쫌 지나서인지 왜 이렇게 시게코가 죄인처럼 행동하는지 가물가물해서 조금 의아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크게 방해되는 것은 아니어서 쭉 읽었다. (이 글을 다 쓰고 <모방범>을 발췌독해봐야겠다.)

전형적인 불량소녀였던 아카네. 결국 부모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자기 집 마루 밑에 16년동안이나 숨겨지게 된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는 진행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카네가 품행이 방정하지 못했고 그 부모는 그걸 참다참다 못해 우발적으로 저질러진 사고였다' 는 식의 주위 사람들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아카네의 동생 세이코는 바깥으로부터 파괴당한 인생을 살고 있는 '밝고 아름다운' 아가씨(모순이다.)로서 불쌍하게만 보이고, 딸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점잖고 담담한' 신사 도이자키 겐의 심정에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이 사건의 뒤에 누가 있는지, 도대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쉬지 않고 책 페이지를 넘기며 끝까지 달려가며 읽었던 나는 책장을 덮을 때까지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카네의 마음을.
아카네가 불량배들과 어울리며 나쁜 짓을 일삼은 것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하지만 아무도 아카네가 왜 그러는지 그 마음을 제대로 들어보고 어루만져 준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비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모님 손에 죽임을 당한 그 소녀도 어떤 면에서는 세이코 못지 않게 불쌍했다. 책장을 덮고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운이 계속해서 남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정말 잘 읽어진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담담하고 조용해서 더 궁금해 미칠 것 같다. '궁금하지? 궁금하지?'라며 놀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계속 이야기하련다. 계속 따라올래?'라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하루만에 조금 두꺼운 책 두권을 읽어버린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작가의 작풍이라고 해야 하나... 이 작가의 작품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 사람들 모두 자기만의 문제와 비밀을 갖고 있다. 그걸 일일이 다 설명하듯 이야기해주니 한번씩 지루해질 뻔할 때가 있다. 사건을 풀어가는 실마리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읽었는데 사실은 사건과는 별 쓸모없는 이야기였다거나 하면 힘이 쭉 빠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소설에도 유부남과 바람피는 젊은 여선생 이야기나 히토시의 엄마 도시코네 집안 이야기는 굳이 그렇게까지 길게 풀어써야 했는지 잘 모르겠다. 좋게 말하면, 작가는 주인공과 주된 사건 뿐만 아니라 그 관련 인물들의 소소한(그러나 그 인물에는 중대한) 이야기들 모두 고루고루 품어주는 것이겠지. 사실 내 눈에 하찮아 보이는 다른 사람의 문제도 그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는 걸 이런 식으로 깨달음을 주는 모양이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 <화차>는 신용카드의 폐해를 이야기에 녹였는데, 여기에는 '공소시효'가 하나의 소재가 된다. 과연 끔찍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15년으로 정해져 있는 게 올바른 일일까? 15년에서 하루만 지나면 그 살인사건은 없었던 일이 되는 걸까. 아직도 공소시효가 그렇게 정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이것도 하나의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주말을 보내는 즐거움에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는 일은 당분간 빠지지 않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 am 아이 엠 - 모르고 살아온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셀프 인터뷰
미카엘 크로게루스.로만 채펠러 지음, 김세나 옮김 / 시공사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20대가 다 가기 전에 자신을 한 번 돌아봐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인생 선배이신 분들에게는 20대가 다 가는 것을 걱정하는 내 말이 투정으로 밖에 안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곧 서른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못내 두렵고 무섭다. 내가 여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는가를 정리하기 위해 골라든 이 책, <i am>. 제목 그대로 '나는.......' 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만들면 된다. 왜냐면 이 책에는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가득한데 거기에 대한 대답은 항상 '나는...... ~다.'로 나오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그 소박한 아름다움이 정겨운 연필 한자루와 함께 나에게 온 이 책은, 어떨 때는 신이 나서 대답을 줄줄 하다가도, 어떨 때는 얼굴이 벌개지면서 말문이 막히기도 했고, 어떨 때는 나와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아 별 생각없이 뒷장으로 넘어가게도 했다. 연필이 딸려왔지만 솔직히 나는 그 연필로 책에 쓰지 못했다. 내가 다 보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가치관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나요? 라고 물어보며... 

남자친구와 함께 이 책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같이 해나가려고 했으나, 그걸 막은 질문이 있었다. "다시 한번 침대로 갔으면 하는 상대는?" 이런 식의 질문이었던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도 생각이 많이 개방된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의 정서에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는 것은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책을 만든 사람이 외국인이라서 질문의 내용이나 방식이 쫌 낯설고 불편한 것도 조금 있었다. 

약 7,8년 전에 이 책과 비슷한 책이 있었다. 별다른 제목도 없었던 것 같고, 특별히 '책'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그냥 다이어리처럼 생겼는데 페이지 아래쪽에 한줄의 질문이 적혀 있었다. '가장 감명깊게 봤던 영화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당신의 실수는?' '하루에 몇 번 하늘을 보나요?''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는?' 등등... 사랑과 우정 등 소녀적 감성에 어울리는 질문만 가득했지만 그래도 그 책은 우리나라 사람이 만들었는지 질문마다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 책 <i am>은 나의 은행 잔고가 얼마인지를 물어보는 책이다. 또 나의 정치적 입장을 물어보고 있었다. 정말 객관적(?)으로 나의 현재 상황과 나의 생각과 나의 주변을 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펴고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을 한 번 해봐도 좋을 것 같다. 대신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은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주에서 행복해졌다 - 차로, 두 발로, 자유로움으로 세 가지 스타일 30개의 해피 루트
전은정.장세이.이혜필 지음 / 컬처그라퍼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아직 비행기 한 번 못 타 본 아가씨이다. 아니, 공항 근처에도 못 가봤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것을 굳이 즐기지도 않는다. 뭔가 바리바리 싸들고 먼 길을 간다는 것이 귀찮고 그냥 싫다. 누군가 모든 여행 계획을 다 짜놓고, 모든 준비물을 다 갖춘 후에 나에게 같이 가자고 권한다면, 이동하는 수단이 편하다면(승용차에 편히 앉아가는 것) 그럼 한 번 생각은 해 볼 수 있겠다. 그 정도로 여행을 귀찮아하는 나에게 제주도는 너무나 먼 곳이다. 나중에 결혼하면 신혼여행으로 제주도에 가야지 라고 생각하는 어쩌면 구시대적인 사람이다, 나는. 외국에 나가면 언어나 문화가 달라서 분명 고생할 게 뻔하니까, 우리나라 안에 있으면서 우리나라 안에 없는 듯 이국적이면서 포근한 제주도는 나에게 최적의 신혼여행지이다. 게다가 올레길이 생기면서 걸어다닐 수도 있으니... 

지금 당장 제주도에 갈 일이 없으니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그래도 제주도는 어떤 곳인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어느 정도의 정보를 얻어야지, 싶어서 이 책을 골랐다. 그리고 '조이락'이라는 글쓴이들의 모임이 궁금하기도 했다.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차로 어디든 휙 움직일 수 있는 여행을 선호하는 '조 전은정'과 터벅터벅 지구 끝까지라도 걸어갈 기세인 '이 장세이'와 뭐든 쉬엄쉬엄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지요 '락 이혜필'까지 세명의 조합. 책 날개에 적힌 그들의 소개글이 신선했다. 그들이 자기만의 개성으로 바라본 제주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는 차를 타고 멋진 곳에 가서 주차를 해놓고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천천히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면 글쓴이 세명의 모든 기질을 다 가지고 있는 건가? 그래도 일단 차를 타고 움직이는 여행에 초점을 더 맞추어서 나는 '조'의 글을 좀더 유심히 읽어보았다. 역시 제주는 갈 곳 많고 볼 곳 많은 멋진 곳이었다. 그녀가 소개하는 516도로나 1100도로는 꼭 한 번 나도 달려보고 싶었다. 물론 전속력으로 달리면 안 되는 길이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멋진 풍광과 바람과 운전해주는 사랑하는 사람과. 또한 서귀포의 폭포를 소개하는 장에 실린 폭포사진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해진다. 

그녀들이 보고 듣고 만져보고 느낀 제주는 손에 잡힐 듯이 그려지고 맘속에 들어온다. 책이 조금 두껍고 글자가 조금 작아서 한 눈에 쏙 들어오진 않지만 세심하게 찍은 사진들과 조곤조곤 들려주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제주에 한 발 더 다가서고, 얼른 달려가고픈 맘이 든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신혼여행 전에 다시 한 번 정독하고, 가방에 넣어두고 제주로 떠나야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 전쟁처럼 - 패배를 굴복시킨 처칠의 오만한 비전
앨런 액슬로드 지음, 구세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제목 참 멋있다. <인생, 전쟁처럼>. 하나뿐인 인생, 전쟁처럼 휘몰아쳐서 시원하게 한방에 확 끝내버려라? 이런 뜻인가? 책 표지에 흑백사진으로 실려있는 불독같이 생긴 인물도 제목의 이미지와 똑같았다. 거만하고, 오만하고, 독불장군처럼 우직하게 자기 앞길만 보고 갈 것 같은,,, 그러나 가족에게는 어쩌면 한없이 인자하고 따스한 할아버지나 아버지일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러나 또 한편으로 부인이나 자식에게도 이런 표정을 지으며 가부장처럼 집안에서 군림할 것 같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많은 이미지를 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이름하여 바로 윈스턴 처칠!! 나는 처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패배를 굴복시킨 처칠의 오만한 비전"이라는 책 표지 속 문구와 멋들어지게 폼잡고 있는 인물사진만 보고 이 책을 덜컥 골랐다. 처칠은 어떻게 성공하였나, 궁금해서. 하지만 처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나의 생각은 아주 커다란 착각이었다. 철의 여인 대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사실 나는 처칠을 하나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단지 이름은 줄기차게 듣고 자랐다는 것. 그거 하나 뿐이었다. 그런 무지를 깨달으면서 이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영국의 장관, 기자, 역사학자, 장군, 작가 등등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재능을 보이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처칠은 사진에서와 마찬가지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 책은 처칠의 인생을, 저자가 생각하는 성공을 위해 필요한 요건들에 맞추어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연대별로 사건을 설명하고 있지 않다. 1차 세계대전 중의 사건들을 거의 알지 못하는 나에게(많은 사람들에게) 분명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너무 많았다. 미국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임진왜란 중의 이순신장군의 리더십을 설명하면서 노량진해전 중에, 명랑해전 중에... 이런 말을 써서 얘기하면 과연 그들이 한번에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래서 솔직히 책이 쉽게 읽히진 않았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인생을 전쟁처럼 살다간 처칠이다 보니 그의 성공요인들이 가슴에 팍 와닿으면서 아하! 하며 무릎을 치게 만들지 못하는 것들도 꽤 많았다. 현실적이고 정에 이끌리지 않고 사리분별을 가려 판단하는 이성적인 모습들이 옳다고는 생각하면서 단번에 따라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책은 나중에, 내가 처칠에 대해서 좀더 공부하고 난 다음에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세계 역사,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각국의 현실들을 자세히 알고 나면 긴박한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처칠의 사고와 심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내 수준을 넘어서는 책을 만나면 물론 조금 답답해지기도 하고, 진도가 안 나가기도 하지만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가고 싶은 지식욕을 자극시켜 줘서 참 신선하고 좋다. 그나저나, 나도 이렇게 멋들어진 사진 한 장 후세에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