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명한 작품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작가에 대한 호감이 생겨 그의 작품들을 찬찬히 읽어볼까 생각했다. 다작 작가의 어떤 작품을 선택하여 읽을까 고민하는 중에 <백야행>을 그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는 사람들의 몇몇 평을 보고는 과감히 세권의 책을 구입하였다. 요즘 나오는 아담하고 세련된 책들과 달리 희끄무리한 집들을 노랗게 찍어놓은 책표지에 한 10년 전은 되는 것 같은 오래된 책 판본 모양에 책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실망부터 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내용과 겉모양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을.. 다 읽은 후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딘지 어두운 구석이 있는 것 같은 료지라는 소년, 그리고 어딘지 묘한 구석이 있는 유키호라는 소녀. 소설은 료지의 아버지 기리하라가 살해당한 시점부터 시작한다. 장을 달리하면서 약간의 시간 공백이 생기고 그들이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시점까지 달려나간다. 그 둘은 연결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겉으로 보기엔 접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접점은 어릴 적 도서관에서 몇 번 만나서 책을 함께 읽었다는 정도. 팜므파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키호라는 여성은. 그녀가 소녀일 때부터, 그리고 또다른 소녀의 새엄마가 되는 순간까지 그녀는 주위의 사람을 끌어들이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은 조금 위험했다. 커다란 장미꽃같은 존재인 유키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 유키호가 그들을 다독거려주고, 그들은 유키호에게 점점 더 복종할 수 밖에 없다. 
 

중간 중간 시간적 공백과 뜬금없이 시작되는 또다른 나날의 묘사가 흐름을 파악하는데 조금 힘겨움을 느꼈고,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에 어디에 집중을 하고 누구는 적당히 흘려보내도 되는지도 눈치채는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 작가의 글에 눈이 익고 익숙해지면 소설 속에 깊숙이 몰입할 수 있었다.

료지는 그녀를 사랑한 걸까. 그래서 그녀를 위하여 모든 걸 포기하고 음지에서 그녀의 앞길을 깨끗이 닦아주었던 걸까. 그럼 그 도움 혹은 사랑을 받던 유키호는 자기 앞의 깨끗한 길이 료지의 수고와 다른 사람의 고통이 길 밑에 묻혀 있음을 알고 있었을까. 그들은 모든 것을 같이 상의하고 계획했던 것일까..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뒤끝이 깨끗하지 않았다. 그래서 몇일을 소설 속 인물인 그들을 생각했다. 본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은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는 그들은 정말로 행복했을까. 료지나 유키호나 둘다 각각 다른 시기에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말을 한다. '단한번도 태양 아래에서 걸은 적이 없다'고. 왠지 이 말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내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이 책은 근래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서평을 쓰기가 힘들었다. 의무감에 서평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책 읽고 난 뒤에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쓰는데 유독 이 책은 정말 힘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왜 그럴까. 분명 재밌게 읽었다. 긴박감을 느끼기도 하고,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잘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책을 붙잡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도 쉽게 글이 나오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건가 싶다. 아무리 아무리 무슨 이유가 있다 해도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내는 짓은 해서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건가 싶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아마도, 단 한번도 태양 아래 걸어본 적이 없지만 자기를 비춰주는 따뜻한 빛같은 사람이 있어서 괜찮았다는 유키호의 말 때문이지 않을까. 자기를 희생해서 유키호를 위해준 료지의 존재와 료지의 마음을 유키호는 알고 있었던 거구나. 둘 다 외롭지는 않았겠다. 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한 사람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 외롭지 않은, 든든한 마음이 부러워서 가슴이 조금 먹먹했던가보다. 추리소설을 읽고 가슴이 먹먹하다니. 별 일도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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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천...재? 2009-01-13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데요ㅋ
나혼자만 그런줄알았는데 ㅋ
이글을 읽으면 누구나 그런가보네요~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