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 - 아이와 함께 가는 옛건축 기행
최경숙 지음 / 맛있는책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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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나 '꽃보다 누나' 프로그램을 즐겨봤었다. 방영시간의 대부분을 채우는 인물간의 에피소드는 대충 흘려보았지만 여행지의 관광명소나 자연경관, 도심지 모습을 카메라가 천천히 훑어줄 땐 꽤 집중해서 보았다. 해외여행이라곤 동남아 신혼여행이 전부인 내게 유럽의 거리와 건축물은 더할 나위없이 근사하고 성스럽고 멋졌다. 우리나라와는 아예 건축 양식이 완전 다르니까 절대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왠지 우리 것보다 더 좋아보였다. 우리는 왜 기와집 같은 걸 만들었을까? 유럽처럼 근사한 성을 만들지..라는 유치한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을 크게 고쳐준 책 <건축가 엄마의 느림 여행>.

어디 여행을 가게 되면 꼭 그 지역의 유명한 사찰을 들리는 편이다. 이 책의 관점처럼 건축물의 구조나 배열을 보는 게 아니라 그저 절이 좋아서였지만, 절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한편으로 경건해지는 것이 단순히 절이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오랜 세월 잘 버티고 있는 조상들의 지혜와 옛사람들의 생활 습관이 묻어 있는 건축물이 주는 마음의 울림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박물관의 유리진열장 속 유물들과 달리 내가 직접 그 안을 걷고,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여러 사찰과 고택, 전통마을 등 다양한 곳을 소개해놓은 이 책에는 내가 가본 곳도 있고 전혀 모르던 곳도 있었다. 순천만, 안강마을, 송소고택, 주산지, 부석사 등 내가 가봤지만 그 속사정은 잘 몰랐던 곳은 더 잘 알게 되었고, 소쇄원, 미황사, 익산 미륵사지, 마이산 등 가본 적 없는 곳에 대해선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영주 부석사에서 누각 아래 어둡고 불편한 통로로 무량수전으로 올라갔을 때 왜 이렇게 입구를 힘들고 특이하게 만들어놓았을까 생각했었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도 있어서 반가웠다.

아직 내 아이는 너무 어려 저자처럼 여행지에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설명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 아주 쓸모가 있을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정말 맞는 말인 걸 실감한다.

그러나 책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나 활자가 너무 작아서 눈이 아프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았던 게 참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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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 스카이
호머 히컴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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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탄광마을 콜우드에 평범한 고등학생 서니. 훗날 NASA에서 우주비행사를 훈련시키고 로켓 설계를 담당하게 된다. 월등하게 공부를 잘 했냐면 그건 아니다. 뒤에서 석차를 세는 게 더 빨랐다고 한다. 그렇다고 여학생에게 인기라도 많았냐면 그것도 아니다. 빅 크리크 고등학교 미식축구선수인 형에 비해 소심하고 숫기없어 좋아하는 여자에게 제대로 고백조차 못했다. 뭐 이건 그가 NASA에서 일하는 엔지니어가 된 것이랑은 상관없겠지만 어쨌든 그는 보통 고등학생 남자애였었다. 1957년 10월 5일 러시아가 우주를 향해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기 전까지. 그 날 이후 소년은 로켓을 직접 만들어 쏘아올려 존경하는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와 함께 일하는 꿈을 꾸게 된다.

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같이 읽히는데 사실 호머 히컴이라는 실제 인물의 회고록이다. 소년이 친구들과 힘을 합쳐 실제로 로켓을 만들어 수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한 단계씩 배우고 발전하는 이야기와 콜우드라는 탄광촌에서 살아가는 작업반장 아버지와 여러 광부와 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룬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한 소년이 로켓 발사라는 꿈을 꾸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대학에 가서 또 죽어라 공부해서 NASA에 들어가 미국 우주항공발전에 기여하는, 흔한 이야기 전개를 기대했다. 그런 것에 쉽게 자극을 받는 성격이라 이런 성공스토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뭔가 이상하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콜우드 탄광촌 이야기가 세세하게 묘사되어 나의 기대와 어긋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처음엔 그런 부분이 별로 재밌지 않아 대충 읽었는데.. 이거 왠걸? 점점 콜우드 마을에 애정이 생긴다.

로켓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들은 로켓을 만들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파고드는 게 아니라 실제로 부딪혀 로켓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러다 어머니가 아끼는 울타리를 부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곳에 로켓이 떨어져 불호령을 맞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위험하고 쓸데없는 로켓을 만든다고 야단을 치거나 코웃음을 쳤지만, 한없이 진지한 소년들에게 박수와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전국과학경진대회에서 추진체부문 우승을 차지한 이야기에서 조금은 두꺼운 책은 마무리된다. 호머 히컴이 혼자 대표로 나가서 대회에서 우승하지만 '실제로 로켓을 만든 건 그와 친구들이었다'라고 하지만 내 생각엔 로켓을 만들어 쏘아올린 건 콜우드 마을 전체였다. 모두들 한마음이 되어 로켓보이들을 지지해주었고 몇몇분들은 실제 큰 도움을 주었다.

책을 덮은 다음 마음에 남은 건 콜우드 탄광촌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꿈과 열정으로 로켓을 만들어 쏘아올린 소년과 친구들의 우정도, 탄광의 작업반장으로 탄광 자체를 사랑한 아버지도, 자폭만 하지 마라며 소년의 꿈을 지켜준 어머니도 다 멋있었지만 콜우드 마을 자체가 가장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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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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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흥미로운 책이었다. 새파란 표지에 슬리퍼를 신고서 트렁크를 끌고 가는 노인의 그림 또한 이 책이 재미있을 거라고 힌트를 주었다. 그렇게 예상을 하고서 첫 장을 펼쳤는데 왠걸..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어려웠다. 그렇다. 이 책은 스웨덴 소설이었으며, 내가 의식하고 읽은 첫 스웨덴 소설이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이 소설에서 거의 95퍼센트 이상의 지분율을 자랑하는 주인공인 자신의 100회 생일 잔치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이름은 '알란 칼손'으로 쉬웠다는 것이다. 낯선 이름들의 등장 말고는 이 책을 술술 읽어가는 데에 방해되는 것은 전혀 없었다.

2005년 현재 알란의 100세 생일에 양로원을 도망쳐 나와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가 태어나서 2005년이 되기까지 그의 일대기가 교차하면서 소설은 전개된다. 처음에는 현재 알란이 양로원에서 나와 버스터미널에서 의문의 트렁크를 습득(?)한 후 여차저차 진행되는 일이 재미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젊은 날 그의 행보가 점점 흥미진진해졌다. 슬리퍼를 찍찍 끌고 다니는 현재의 이 노인네가 폭탄 전문가였었다니.. 그가 미국과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에 크나큰 공을 세웠었던 엄청난 인물이었다니..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생각했다.

말그대로 전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크건 작건 한 몫을 해내며 세계의 지도자들과 친분을 쌓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정말이지 유쾌한 일이었다. 정치적, 종교적 입장을 갖지 않는 것이 그가 끈질기게 살아남은 데에 한 몫한 것 같다. 만사 일어나는 일은 그 자체일 뿐이라는 다소 힘빠지는 긍정주의 역시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이 이야기에서 억울하게(?) 죽은 볼트와 양동이, 살인사건 해결의 꿈에 부풀었다 보기좋게 망신당한 검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오래오래 서로서로 더불어 행복하게 살았더랬다. 화려한 성경책의 마지막 구절처럼 말이다.

작가의 다음 책이 아주 기대가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오랜만에 박민규 작가의 책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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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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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만큼 작품이 끊임없이 출간되는 작가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다작인 만큼 모든 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개인적으로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이 좋았고, 최근에 읽었던 <매스커레이드 호텔>,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이 좋았는데 그 외 소설들은 그게 그거인 듯,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그랬었다. 그래도 작가의 네임밸류 덕분에 신간이 나오면 또 기대를 하면서 책을 찾게 된다.

이번에 읽은 <질풍론도>는 일단 3시간반 정도에 다 읽어냈다. 가독성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답다. 스키장 어느 너도밤나무 아래 묻어놓은 생물병기를 찾기 위해 설산을 누비고 다니는 스키어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다보니 긴박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헌데 긴박하다고 손에 땀이 쥐어지는 것 같았는데 뭔가 허전하다. 뭔가 빠졌다. 애초에 그 약통을 훔쳐나와 설산에 묻어놓고 대학측을 협박하던 범인이 어이없게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그 시점부터 이 소설은 갈 곳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몇장의 사진으로 설산이 어느 스키장인지 알아내고, 스키도 제대로 못 타는 연구원이 코스 밖에 있는 그 약통을 찾겠다고 무리하다가 만난 구조요원이 일도 팽개치고 사력을 다해 대신 약통을 찾으러 다니고.. 너무 억지설정에 중요한 뭔가가 빠져서 그냥 이야기만 둥둥 떠다니면서 술술 흘러가는 느낌이다.

책 두께가 좀 있는 편이지만 종이가 두껍고, 활자가 큰 편인지 실제로 소설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스키 관련 용어 설명은 대충 훑고 넘어가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어서 더 빨리 읽혀진다. 다 읽고 나면 허무해지는 설산의 추격전이 후반부까지 이어지다가 끝은 너무 성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삶의 교훈을 몇마디 대사에서 친절하게 줄줄 설명해줄 땐 손발이 오그러들 정도.

그래도 한동안 미야베 미유키와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는데 이젠 다른 작가로 대체해야할 것 같다. 누쿠이 도쿠로나 다카노 가즈아키, 우타노 쇼고 등 멋진 작가들이 많은데 굳이 히가시노 게이고를 이름값만으로 앞세우기에는 실망이 가득해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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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
현진 지음 / 담앤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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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무소유>는 책 두께가 얇아 책장에 꽂아놓으면 덩치 큰 다른 책에 묻혀 한동안 까먹고 지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눈에 띄거나, 생각이 나서 찾아 읽으면 어느 꼭지를 읽어도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특히 좋아하는 도반과의 이야기는 책 한구석을 접어놓아 읽고 또 읽었다.

스님들이 쓰신 에세이는 마음이 거울처럼 맨들맨들해지게 만들어 주어 잘 찾아 읽는 편인데 이번엔 현진 스님의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 제목으로 미루어 보아 자연과 벗삼아 사는 스님의 소소한 이야기일 것 같다. 읽어보니 역시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매일 허겁지겁 출근해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네모난 컴퓨터 모니터만 주구장창 쳐다보며 일하다가 때되면 점심먹고 다시 일하다가 퇴근해서는 저녁먹기 바쁘게 늘어져서 티비만 보다가 하루가 끝나는 일상. 그 속에서 밖에 꽃이 피는지 지는지, 산들바람이 살랑 불었는지, 새파란 잎이 쏙 올라왔는지 어쨌는지 볼 틈이 없다. 태풍이 치거나 폭설이 내리지 않는 한 우리는 자연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런 중에 현진 스님의 책 속에서는 봄에 벚꽃과 매화, 개나리, 진달래가 어떻게 피었고, 농사일에 풀 뽑기를 게을리하면 밭이 어떻게 되는지 담담하게 이야기해준다.

정월대보름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밤하늘의 달을 쳐다볼 일이 없는데 달빛 아래 동네 한바퀴를 거니는 스님의 이야기를 읽고는 베란다 너머로 달도 한번 쳐다봤다. 가끔 정전이 되면 달빛이 얼마나 밝은지 그 밝기에 감탄하곤 한다. 너무 강렬해서 찌푸리지 않고는 쳐다볼 수 없는 해와 달리 은은한 달빛은 사람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달빛에 비치는 모든 것들이 다 사랑스러워진다.

현진 스님의 책은 마치 법정 스님의 <무소유>처럼 마음이 맑아지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다만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정치적인 이슈 등에 스님의 코멘트를 달아놓은 꼭지는 개인적으로 불편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희망으로 스님들이 지저분한 속세에 신경쓰지 않고 깨끗한 산 속 조용한 절에서 사람들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욕심일 뿐.

산같고 물같고 꽃같은 스님의 달빛같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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