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흥미로운 책이었다. 새파란 표지에 슬리퍼를 신고서 트렁크를 끌고 가는 노인의 그림 또한 이 책이 재미있을 거라고 힌트를 주었다. 그렇게 예상을 하고서 첫 장을 펼쳤는데 왠걸..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어려웠다. 그렇다. 이 책은 스웨덴 소설이었으며, 내가 의식하고 읽은 첫 스웨덴 소설이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이 소설에서 거의 95퍼센트 이상의 지분율을 자랑하는 주인공인 자신의 100회 생일 잔치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이름은 '알란 칼손'으로 쉬웠다는 것이다. 낯선 이름들의 등장 말고는 이 책을 술술 읽어가는 데에 방해되는 것은 전혀 없었다.2005년 현재 알란의 100세 생일에 양로원을 도망쳐 나와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가 태어나서 2005년이 되기까지 그의 일대기가 교차하면서 소설은 전개된다. 처음에는 현재 알란이 양로원에서 나와 버스터미널에서 의문의 트렁크를 습득(?)한 후 여차저차 진행되는 일이 재미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젊은 날 그의 행보가 점점 흥미진진해졌다. 슬리퍼를 찍찍 끌고 다니는 현재의 이 노인네가 폭탄 전문가였었다니.. 그가 미국과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에 크나큰 공을 세웠었던 엄청난 인물이었다니..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생각했다.말그대로 전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크건 작건 한 몫을 해내며 세계의 지도자들과 친분을 쌓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정말이지 유쾌한 일이었다. 정치적, 종교적 입장을 갖지 않는 것이 그가 끈질기게 살아남은 데에 한 몫한 것 같다. 만사 일어나는 일은 그 자체일 뿐이라는 다소 힘빠지는 긍정주의 역시 중요하게 작용하였다.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이 이야기에서 억울하게(?) 죽은 볼트와 양동이, 살인사건 해결의 꿈에 부풀었다 보기좋게 망신당한 검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오래오래 서로서로 더불어 행복하게 살았더랬다. 화려한 성경책의 마지막 구절처럼 말이다.작가의 다음 책이 아주 기대가 된다.책을 읽으면서 내내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오랜만에 박민규 작가의 책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