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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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유명한 작품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작가에 대한 호감이 생겨 그의 작품들을 찬찬히 읽어볼까 생각했다. 다작 작가의 어떤 작품을 선택하여 읽을까 고민하는 중에 <백야행>을 그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는 사람들의 몇몇 평을 보고는 과감히 세권의 책을 구입하였다. 요즘 나오는 아담하고 세련된 책들과 달리 희끄무리한 집들을 노랗게 찍어놓은 책표지에 한 10년 전은 되는 것 같은 오래된 책 판본 모양에 책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실망부터 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내용과 겉모양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을.. 다 읽은 후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딘지 어두운 구석이 있는 것 같은 료지라는 소년, 그리고 어딘지 묘한 구석이 있는 유키호라는 소녀. 소설은 료지의 아버지 기리하라가 살해당한 시점부터 시작한다. 장을 달리하면서 약간의 시간 공백이 생기고 그들이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시점까지 달려나간다. 그 둘은 연결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겉으로 보기엔 접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접점은 어릴 적 도서관에서 몇 번 만나서 책을 함께 읽었다는 정도. 팜므파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키호라는 여성은. 그녀가 소녀일 때부터, 그리고 또다른 소녀의 새엄마가 되는 순간까지 그녀는 주위의 사람을 끌어들이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은 조금 위험했다. 커다란 장미꽃같은 존재인 유키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 유키호가 그들을 다독거려주고, 그들은 유키호에게 점점 더 복종할 수 밖에 없다. 
 

중간 중간 시간적 공백과 뜬금없이 시작되는 또다른 나날의 묘사가 흐름을 파악하는데 조금 힘겨움을 느꼈고,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에 어디에 집중을 하고 누구는 적당히 흘려보내도 되는지도 눈치채는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 작가의 글에 눈이 익고 익숙해지면 소설 속에 깊숙이 몰입할 수 있었다.

료지는 그녀를 사랑한 걸까. 그래서 그녀를 위하여 모든 걸 포기하고 음지에서 그녀의 앞길을 깨끗이 닦아주었던 걸까. 그럼 그 도움 혹은 사랑을 받던 유키호는 자기 앞의 깨끗한 길이 료지의 수고와 다른 사람의 고통이 길 밑에 묻혀 있음을 알고 있었을까. 그들은 모든 것을 같이 상의하고 계획했던 것일까..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뒤끝이 깨끗하지 않았다. 그래서 몇일을 소설 속 인물인 그들을 생각했다. 본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은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는 그들은 정말로 행복했을까. 료지나 유키호나 둘다 각각 다른 시기에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말을 한다. '단한번도 태양 아래에서 걸은 적이 없다'고. 왠지 이 말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내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이 책은 근래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서평을 쓰기가 힘들었다. 의무감에 서평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책 읽고 난 뒤에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쓰는데 유독 이 책은 정말 힘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왜 그럴까. 분명 재밌게 읽었다. 긴박감을 느끼기도 하고,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잘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책을 붙잡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도 쉽게 글이 나오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건가 싶다. 아무리 아무리 무슨 이유가 있다 해도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내는 짓은 해서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건가 싶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아마도, 단 한번도 태양 아래 걸어본 적이 없지만 자기를 비춰주는 따뜻한 빛같은 사람이 있어서 괜찮았다는 유키호의 말 때문이지 않을까. 자기를 희생해서 유키호를 위해준 료지의 존재와 료지의 마음을 유키호는 알고 있었던 거구나. 둘 다 외롭지는 않았겠다. 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한 사람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 외롭지 않은, 든든한 마음이 부러워서 가슴이 조금 먹먹했던가보다. 추리소설을 읽고 가슴이 먹먹하다니. 별 일도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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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1-13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데요ㅋ
나혼자만 그런줄알았는데 ㅋ
이글을 읽으면 누구나 그런가보네요~ 먹먹하다..^^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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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초등학교 3학년 때 학생 수가 많아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들었었다. 오전반 수업을 들었던 날.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다. 우산을 챙겨온 친구들이 반, 나처럼 우산이 없는 아이들이 반. 몇몇은 엄마가 우산을 들고 올 거라고 책상에 앉아 있었고, 몇몇은 우산을 쓰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나는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다가 우산을 갖고 온 친구에게 우산을 씌워달라고 얘기를 했고, 아예 친구집에 놀러가기로 했다. 친구집에서 잠시 노는 중에 비가 그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엄마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여쭤보니, 우산을 안 들고 간 딸래미 우산 씌워주려고 학교에 마중갔다고 하셨다. 이런... 한참 기다렸을 엄마에게 미안해서 얼른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서 우산 두개를 손에 쥐고 걸어오시는 엄마를 만났다. 비오는 중에 교문에서 나를 기다리셨을 엄마는 그것보다, 내가 비도 오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걱정했다며 오히려 나를 안아주셨다. 엄마는 바빠서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릴 보통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었다.

장면 둘.
엄마의 자궁에 혹이 몇 개나 있다고 했다. 그 중에 한 두개는 크기가 꽤 커서 그냥 놔두면 나중에 위험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혹만 제거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므로 자궁 전체를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20살도 더 넘은 자식들이 둘이나 있으니 이제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일도 없고, 위험해질 거라면 그냥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수술을 하셨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엄마가 맹장 수술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고, 그 때 엄마 병실에 가서 엄마를 보고 마냥 좋아서 엄마에게 '엄마~~~'하며 달려들었다가 엄마가 배가 아파했던 일이 있긴 하지만, 너무 어릴 적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제 다 커서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회복되어 다시 나오는 4시간동안, 아버지랑 둘이서 얼마나 가슴 졸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혹시 엄마 못 나오면 어떻게 할래..'라고 하셨던 말씀, 평소랑 달리 안절부절 못 하는 것이 딸에게도 확연히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 수술환자 가족 대기실, 수술현황이 나오는 티비화면 등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다행히 엄마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나오셨고, 그 날 밤은 엄마 옆에서 자기로 했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가시라고 해도 기어이 로비에 의자 붙여놓고 주무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낮에 긴장한 탓인지 낯선 병실에서도 잠을 푹 자고 일어났더니, 새벽에 내내 엄마가 구토를 하고 아파하셨고, 그걸 아버지가 다 챙겨주셨다고 한다. 나는 간이침대에서 잘 자고 있는 중에.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런데다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나니 엄마도 점점 나아지고 병실에 다른 환자분들과도 친해지시고 하니, 병원에 있기 싫었다. 약품냄새가 진동하고, 아픈 사람들이 잔뜩 있는 병원은 건강한 나까지도 아플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사귀기 시작한지 이제 한달 가량 되는 남자친구와 놀고 싶었다. 엄마에게는 공부한다고 핑계를 대고 남자친구와 만나서 데이트도 하고, 하필 대학 축제기간이라 주막에서 술도 많이 마셨다. 고향이 강원도인 엄마에게는 문병오는 지인들도 거의 없었는데, 가게를 닫을 수 없는 아버지는 어쩔 수 없고, 내가 옆에서 챙겨드리고 말동무를 해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참 외로웠다고 한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이렇게 엄마에게 미안한 아픈 추억들을 꺼내게 해주었다. 박소녀라는 이쁜 이름을 가진 만69세의 엄마를 잃어버렸다. 복잡한 지하철 서울역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하철을 탔어야 했는데, 손을 놓치고 말았고, 그렇게 엄마는 서울역에 혼자 놓여 있게 되었다. 자식들은 엄마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붙이고,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엄마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엄마 비슷한 사람을 본 것 같다고 제보하는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엄마를 본 곳은 큰 아들이 젊을 때 처음 서울에 와서 머물렀던 직장이나, 집이 있는 동네였다.

큰딸, 장남, 남편의 입장에서 엄마의 실종에 관해서,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엄마에 대한 감정들을 풀어내고 있다. 처음에는 '너'라고 지칭되는 독특한 인칭대명사에 익숙하지 않아 이야기를 읽는데 집중이 잘 안 되었다. 하지만 '엄마'라는 대상에 대해 누구나 품고 있을 감정들을 톡톡 건드려주는 글들을 읽으면서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히나 '아버지'가 시골집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찾을 때는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비하게도 느껴지는 엄마의 시선으로 그려진 4장을 읽을 땐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이름, '박소녀'에서 알 수 있듯이, 엄마는 날 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도 나처럼 외할머니의 이쁜 딸일 때가 있었고, 나처럼 꿈많고 수줍어하는 아가씨 시절이 있었고, 아버지와 갓 결혼했을 땐 새댁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다 오빠를 낳고, 나를 낳고 '누구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내가 날 때부터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엄마는 엄마다워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자식들에게는 이런 삶을 대물림하지 말아야지, 악착같이 고생하며 일하고 더운 밥 먹이고, 공부시키고, 모든 엄마가 다 그런다. 소설 속 엄마처럼, 나의 엄마도 까막눈이다. 소설 속 엄마는 한글에 까막눈이지만, 우리 엄마는 영어에 까막눈이다. 요즘 티비를 틀고 잠시만 보고 있으면 어디 영어가 안 나오는 곳이 어디 있는가. 오락프로그램을 보면서 같이 즐겁게 웃다가도 화면에 나오는 'perfect'라거나 'sexy' 라거나 하는 짧은 영어 단어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엄마는 모르잖아. 엄마한테는 저 글자들이 어떻게 보일까. 왜 우리나라 방송은 한글을 안 쓰고 쓸데없이 영어를 쓰고 있는거야!!
큰아들이 검사가 되기를 그토록 바랐던 엄마는 검사가 되지 못한 아들에게 동생들을 떠맡기고는 그 때부터 자식에게 고개를 들지 못한다.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빨리 성공해서 엄마를 편하게 모시고 싶은데, 아직 동사무소 숙직실의 차가운 바닥에 엄마를 눕게 해서 너무나 미안해한다. 엄마와 자식은, 그렇게 서로에게 함부로 대하기도 하고, 또 미안해하기도 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보다. 엄마의 뱃속에서 엄마의 피와 양분을 뺏어먹고, 세상에 나와서는 엄마의 젖을 나오지 않을 때까지도 끝까지 깨물어 뜯는 아이와, 내 피와 살을 나눠가진 내 새끼를 바라보는 엄마. 아,, 엄마는, 엄마라는 존재는 아무리 말하고 말해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소설 속 엄마와 우리 엄마가 번갈아 가며 나를 괴롭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 속 자식들이 엄마에게 가한 상처들과 내가 엄마한테 멋모르고 주었을 상처들이 나를 괴롭혔다. 책을 읽을 때도 그 엄마와 이 엄마가 헷갈리더니, 서평을 쓸 때도 끝까지 헷갈린다. 우리 엄마에게 이 책을 드리면, 엄마는 외할머니를 생각하시겠지.
엄마가 나이가 들고,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친구처럼 편해지고 더 아끼게 되지만, 그만큼 조금씩 약해지는 엄마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우리 엄마는, 비가 와도 우산 안 챙겨간 딸을 걱정할 게 아니라, 이정도 오는 비라면 뛰어오면 된다 라고 생각했다고 비에 젖은 딸에게 수건 한 장 건네는 그런 강한 엄마이길 바란다. 어릴 적 비오는 날, 내가 엄마를 기다리지 않고 친구집에 놀러갔던 것은 우리 엄마는 그런 엄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약해지지 말고, 내가 기댈 수 있는 엄마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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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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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화차>를 읽고 세번째로 읽은 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까지 포함해서 추리소설을 대여섯권 읽고 나자, 추리 소설에 약간의 회의가 들기도 했다. 나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추리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다, 살인(추리소설에 나오는 사건은 대부분 살인이다.)사건을 둘러싼 범인과 피해자, 매스컴, 군중의 내면 속을 파고 들어간 추악한 인간 본성과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따뜻한 마음 등을 보기 위해 추리소설을 읽는다 라고 스스로 위안하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추리소설의 전개방식이 살짝 물리려고 한 것이다. '추리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사건이 일어나고 누가 범인일까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부부터 찬찬히 짚어가는 것이 정석일진대, 그 방식이 뻔하게 보이고 일부러 뺑뺑이를 돌리는 것 같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던 차에 그래도 미야베 미유키 라면서 이 두꺼운 <이유>를 펼쳐들었다. 

반다루 센주 뉴시티라는 초호화 고층 아파트 2025호에서 일가족 4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일가족은 당연히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지만 아니었다. 주민 명부에는 고이토 노부야스의 가족들 이름이 그대로 있지만, 왠일인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어느 날 감쪽같이 바뀌었고, 게다가 그들이 살해되어버렸다. 책은 이 사건에 발을 걸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음성으로 사건을 재조명하고 있다. 살해당한 그들은 누구인가, 왜 주민이 바뀌었는가,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 그에 관련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관련되었는가.. 

<이유>는 참 신선했다. 물론 사건의 중심부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세세한 주변 인물들 모두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담아놓아서 수박의 겉만 핥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초반부에는 집중하기 곤란한 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것이 장점이었다. 흔한 1인칭 화자나 전지적작가시점이 아니다. 이 전체 이야기를 해나가는 사람은 있는데 이 사람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이 사건에 대해 기사 형식으로 글을 쓰려는 사람(기자라고 하기는 그렇고, 마치 <모방범> 속의 시게코처럼 르포작가인 듯하다.)이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인터뷰형식 그대로 옮겨놓거나, 약간의 재구성을 해놓거나 하는 방식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반다루 센주 뉴시티 2025호 일가족 살인사건이라는 거대한 숲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된다. 너무 세세한 것까지 다 기록했다 싶지만 숲을 이루기 위해선 나무 하나하나가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기록은 필요한 것이었다.

또한 사건이 이미 해결된 시점에서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 차근차근 설명하기 때문에 읽어나가면서 살짝 추리도 해가며, 용의자임이 분명한 듯한데 왜 이렇게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하는 궁금증도 일으키며 진도를 쑥쑥나가게 해준다. 이 사람이 범인이야! 내 말이 맞지? 라는 확고하고 단정적인 시선이 아니라, 이 사람이 왜 범인이 아닐까, 이 사람에게는 무슨 사정이 있을까? 라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다. 

법원 경매, 매수인, 버티기꾼 등 사회 제도 속의 긍정적 작용과 부작용을 변호사의 입을 통해 친절하고도 자세히 설명해주어서 관련된 어려운 경제신문 속 기사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사회제도에만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당연한 울타리에도 시선을 보낸다. 가장 친밀한 부모자식, 형제자매가 든든한 울타리일 수도 있지만 목을 옭아매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것이 축복인 것을 깨달았다. 한 사건에 얽혀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각각의 입장에서 그 사건은 기억된다. 누군가에게는 옆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되는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한동네에 삐까뻔쩍한 아파트에 돈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생긴 살인사건이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경제 붐이 일었다가 버블경제가 무너진 것이 상당히 큰 일이었나보다. 우리나라의 IMF 위기처럼. 남의 나라 일이다 보니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한번씩 나오는 버블경제 이야기는 일본 소설을 읽을 때 배경지식으로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책을 읽고 역사와 경제를 생각하게 되다니. 역시 책이라는 것은 파고들면 들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물건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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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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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에 우승한 대가로 체포된 람 모하마드 토마스. 겨우 열여덟이건만 그의 인생여정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흔 노파도 그렇게 복잡다단하게 살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런 인생 속의 다양한 사건 덕에 변변히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별다른 지식도 없는 그가 퀴즈쇼의 어려운 상식 수준의 문제들을 거뜬히 다 맞추고 결국 우승하게 된다. 퀴즈쇼를 만드는 TV 제작국 입장에서는 실제로 엄청난 액수의 상금을 지불할 능력도, 그럴 생각도 없었기에 분명히 무슨 음모나 속임수가 있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체포되어 있던 람 모하마드 토마스는 그를 도와주려는 여자 변호사에게 본인의 인생 이야기와 그로 인해 답을 알 수 있었던 퀴즈 문제를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꽤 두꺼운 인도소설이었다. 일본소설이나 영미소설이 아니면 모두 제3세계 소설이라고 인식해버리는 내 머리 속에 발음하기도 힘들고 눈으로 따라 읽기도 어색한 인도사람들의 이름만큼이나 그 배경들이 낯설었다.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나의 선입견, 편견들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방해를 하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했다. 가난하고 지저분한 나라 라는 생각은 실제로 람이 자란 인도의 뒷골목들을 상상하기 쉽게 해주었다. 한편 그런 생각들은 인도에도 TV가 있고,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를 즐기는 소년들이 있고, 닌텐도가 뭔지 아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 영화보는 것을 좋아하고 영화배우를 동경하며 실제로 영화배우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그 당연한 사실을 놀라웁게 만들기도 했다. 내 생각의 편협함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거리의 아이들을 불러다가 보살펴주는 척하면서 아이들을 불구로 만들어 앵벌이를 시키는 조직폭력배 사람들, 딸에게 나쁜 짓을 하려는 아버지, 기차칸에서 돈을 뺏다가 어린 소녀를 수치심에 벌벌 떨게 만드는 강도들.. 어느 사회나 이런 몰염치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소설 속보다 현실이 더 무서운 세상이다. 이런 사람들 틈에서, 이런 무서운 세상 속에서 맨몸으로 부딪히고 헤쳐나온 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줄 아는 멋진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가 퀴즈쇼에서 우승한 것,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 모두 충분히 받을 만한 것들이었다. 

퀴즈쇼의 문제를 풀 수 있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방식이라서 퀴즈쇼의 문제 순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사건들의 순서는 뒤죽박죽이다. 그래서 금방 했던 이야기의 뒤가 나올 줄 알았는데, 한참 건너 뛴 이야기가 나오거나 해서 헷갈리기도 하고, 한참 뒤에 아까 궁금했던 이야기들이 다시 나와서 궁금증이 풀리기도 하는 등, 소설의 전개 방식이 독특했다. 처음에는 약간 지루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다 읽었을 때 예상치 못했던 반전까지, 통쾌하고 느낌 좋은 소설이었다. 저자가 실제 외교관이며 이 소설이 겨우 두달만에 집필되었다는 점에서 놀랍고, 그 능력이 한층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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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드는 소년 - 바람개비가 전하는 치유의 메시지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폴 플라이쉬만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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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호리호리하고 미남형인 브렌트는 초대받지 못한 파티에 용기를 내어 갔다가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말을 걸어보려다 많은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만다. 홧김에 파티장에서 돌아나와 차를 몰고 가다가 문득 이것저것 다 필요없다는 식으로 생각이 들고 자살을 하려는 생각으로 핸들에서 손을 놓는다. 사고가 났지만, 브렌트는 살았다. 하지만 브렌트의 차에 치여 18살의 리 라는 우수한 여학생이 죽어버렸다. 리의 어머니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미국의 네 귀퉁이에 바람개비를 만들어달라고 주문을 하는데... 

'바람개비가 전하는 치유의 메시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소설에서 바람개비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바람개비가 아니다. 빨대나 나무젓가락에다가 색종이를 둥글게 말아서 네개의 팔을 만들어 중앙에 압정을 꽂아 입으로 바람을 후후 불거나 손에 쥐고 뛰어가면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을 보던 그런 장난감이 아니다. 목재와 연장들로 몇일을 걸려 만드는 커다란 설치물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풍차'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 넓은 미국의 네 귀퉁이를 버스로 횡단하면서 손에 익지 않은 목재공구들을 쓰면서 손을 베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마치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처럼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키기도 하면서 브렌트는 조금씩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부모님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오히려 자신은 더 가혹한 벌을 받았어야 했다면서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지만 피해자의 어머니의 부탁이 그에게도 평안을 가져다준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만든 네개의 바람개비는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가져다 주는데 4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첫번째 나온 여자아이들의 이야기였다. 모든 일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원하는 것을 마치 꿈을 꾸듯이 세세하게 상상을 하면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친구를 설득하는 여자아이의 말은 요즘 유행하는 <시크릿>류의 자기암시방법이었다. 최근에도 비슷한 자기계발서를 읽었었는데 딱딱한 문구의 책보다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것이 더 와닿았다. 물론, 너무 드러내놓고 홍보하려는 듯해서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국인입양아 이야기도 나왔는데, 1952년 미국에서 태어난 작가 폴 플라이쉬만이 한국인입양아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도 주변에 입양아가 있고, 그 입양아가 한국에서 온 아이겠거니 생각했다. 

책은 좋았다. 바람개비라는 독특한 소재로 책을 읽는 동안 따뜻하면서 상쾌한 바람이 내 주위를 감도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야기를 읽게 되어 좋았다. 하지만 나는 '성장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책들은 별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주인공이 되어 험난한 일을 겪고 그 일을 통해 마음도 한뼘, 몸도 한뼘 자란다는 이야기는 분명 따뜻하고 좋은 이야기일 것이나, 이미 다 커버린 나에게는 조금은 유치하고 끝이 보일 뿐이었다. 

흠,, 브렌트가 만든 바람개비들은 아직도 미국의 네 귀퉁이에서 바람에 휙휙 돌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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