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면 하나.
초등학교 3학년 때 학생 수가 많아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들었었다. 오전반 수업을 들었던 날.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다. 우산을 챙겨온 친구들이 반, 나처럼 우산이 없는 아이들이 반. 몇몇은 엄마가 우산을 들고 올 거라고 책상에 앉아 있었고, 몇몇은 우산을 쓰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나는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다가 우산을 갖고 온 친구에게 우산을 씌워달라고 얘기를 했고, 아예 친구집에 놀러가기로 했다. 친구집에서 잠시 노는 중에 비가 그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엄마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여쭤보니, 우산을 안 들고 간 딸래미 우산 씌워주려고 학교에 마중갔다고 하셨다. 이런... 한참 기다렸을 엄마에게 미안해서 얼른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서 우산 두개를 손에 쥐고 걸어오시는 엄마를 만났다. 비오는 중에 교문에서 나를 기다리셨을 엄마는 그것보다, 내가 비도 오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걱정했다며 오히려 나를 안아주셨다. 엄마는 바빠서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릴 보통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었다.
장면 둘.
엄마의 자궁에 혹이 몇 개나 있다고 했다. 그 중에 한 두개는 크기가 꽤 커서 그냥 놔두면 나중에 위험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혹만 제거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므로 자궁 전체를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20살도 더 넘은 자식들이 둘이나 있으니 이제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일도 없고, 위험해질 거라면 그냥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수술을 하셨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엄마가 맹장 수술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고, 그 때 엄마 병실에 가서 엄마를 보고 마냥 좋아서 엄마에게 '엄마~~~'하며 달려들었다가 엄마가 배가 아파했던 일이 있긴 하지만, 너무 어릴 적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제 다 커서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회복되어 다시 나오는 4시간동안, 아버지랑 둘이서 얼마나 가슴 졸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혹시 엄마 못 나오면 어떻게 할래..'라고 하셨던 말씀, 평소랑 달리 안절부절 못 하는 것이 딸에게도 확연히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 수술환자 가족 대기실, 수술현황이 나오는 티비화면 등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다행히 엄마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나오셨고, 그 날 밤은 엄마 옆에서 자기로 했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가시라고 해도 기어이 로비에 의자 붙여놓고 주무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낮에 긴장한 탓인지 낯선 병실에서도 잠을 푹 자고 일어났더니, 새벽에 내내 엄마가 구토를 하고 아파하셨고, 그걸 아버지가 다 챙겨주셨다고 한다. 나는 간이침대에서 잘 자고 있는 중에.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런데다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나니 엄마도 점점 나아지고 병실에 다른 환자분들과도 친해지시고 하니, 병원에 있기 싫었다. 약품냄새가 진동하고, 아픈 사람들이 잔뜩 있는 병원은 건강한 나까지도 아플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사귀기 시작한지 이제 한달 가량 되는 남자친구와 놀고 싶었다. 엄마에게는 공부한다고 핑계를 대고 남자친구와 만나서 데이트도 하고, 하필 대학 축제기간이라 주막에서 술도 많이 마셨다. 고향이 강원도인 엄마에게는 문병오는 지인들도 거의 없었는데, 가게를 닫을 수 없는 아버지는 어쩔 수 없고, 내가 옆에서 챙겨드리고 말동무를 해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참 외로웠다고 한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이렇게 엄마에게 미안한 아픈 추억들을 꺼내게 해주었다. 박소녀라는 이쁜 이름을 가진 만69세의 엄마를 잃어버렸다. 복잡한 지하철 서울역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하철을 탔어야 했는데, 손을 놓치고 말았고, 그렇게 엄마는 서울역에 혼자 놓여 있게 되었다. 자식들은 엄마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붙이고,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엄마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엄마 비슷한 사람을 본 것 같다고 제보하는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엄마를 본 곳은 큰 아들이 젊을 때 처음 서울에 와서 머물렀던 직장이나, 집이 있는 동네였다.
큰딸, 장남, 남편의 입장에서 엄마의 실종에 관해서,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엄마에 대한 감정들을 풀어내고 있다. 처음에는 '너'라고 지칭되는 독특한 인칭대명사에 익숙하지 않아 이야기를 읽는데 집중이 잘 안 되었다. 하지만 '엄마'라는 대상에 대해 누구나 품고 있을 감정들을 톡톡 건드려주는 글들을 읽으면서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히나 '아버지'가 시골집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찾을 때는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비하게도 느껴지는 엄마의 시선으로 그려진 4장을 읽을 땐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이름, '박소녀'에서 알 수 있듯이, 엄마는 날 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도 나처럼 외할머니의 이쁜 딸일 때가 있었고, 나처럼 꿈많고 수줍어하는 아가씨 시절이 있었고, 아버지와 갓 결혼했을 땐 새댁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다 오빠를 낳고, 나를 낳고 '누구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내가 날 때부터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엄마는 엄마다워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자식들에게는 이런 삶을 대물림하지 말아야지, 악착같이 고생하며 일하고 더운 밥 먹이고, 공부시키고, 모든 엄마가 다 그런다. 소설 속 엄마처럼, 나의 엄마도 까막눈이다. 소설 속 엄마는 한글에 까막눈이지만, 우리 엄마는 영어에 까막눈이다. 요즘 티비를 틀고 잠시만 보고 있으면 어디 영어가 안 나오는 곳이 어디 있는가. 오락프로그램을 보면서 같이 즐겁게 웃다가도 화면에 나오는 'perfect'라거나 'sexy' 라거나 하는 짧은 영어 단어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엄마는 모르잖아. 엄마한테는 저 글자들이 어떻게 보일까. 왜 우리나라 방송은 한글을 안 쓰고 쓸데없이 영어를 쓰고 있는거야!!
큰아들이 검사가 되기를 그토록 바랐던 엄마는 검사가 되지 못한 아들에게 동생들을 떠맡기고는 그 때부터 자식에게 고개를 들지 못한다.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빨리 성공해서 엄마를 편하게 모시고 싶은데, 아직 동사무소 숙직실의 차가운 바닥에 엄마를 눕게 해서 너무나 미안해한다. 엄마와 자식은, 그렇게 서로에게 함부로 대하기도 하고, 또 미안해하기도 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보다. 엄마의 뱃속에서 엄마의 피와 양분을 뺏어먹고, 세상에 나와서는 엄마의 젖을 나오지 않을 때까지도 끝까지 깨물어 뜯는 아이와, 내 피와 살을 나눠가진 내 새끼를 바라보는 엄마. 아,, 엄마는, 엄마라는 존재는 아무리 말하고 말해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소설 속 엄마와 우리 엄마가 번갈아 가며 나를 괴롭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 속 자식들이 엄마에게 가한 상처들과 내가 엄마한테 멋모르고 주었을 상처들이 나를 괴롭혔다. 책을 읽을 때도 그 엄마와 이 엄마가 헷갈리더니, 서평을 쓸 때도 끝까지 헷갈린다. 우리 엄마에게 이 책을 드리면, 엄마는 외할머니를 생각하시겠지.
엄마가 나이가 들고,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친구처럼 편해지고 더 아끼게 되지만, 그만큼 조금씩 약해지는 엄마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우리 엄마는, 비가 와도 우산 안 챙겨간 딸을 걱정할 게 아니라, 이정도 오는 비라면 뛰어오면 된다 라고 생각했다고 비에 젖은 딸에게 수건 한 장 건네는 그런 강한 엄마이길 바란다. 어릴 적 비오는 날, 내가 엄마를 기다리지 않고 친구집에 놀러갔던 것은 우리 엄마는 그런 엄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약해지지 말고, 내가 기댈 수 있는 엄마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