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 그들에겐 미래, 우리에겐 희망
미국히말라야재단_리처드 C. 블럼,에리카 스톤,브로튼 코번 엮음, 김영범 옮김 / 풀로엮은집(숨비소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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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튼튼하게 보이지만 워낙에 운동을 안 해서 기초체력이 약한 나는 가끔 한번씩 등산을 하게 되면 어찌나 힘이 드는지 펄펄 날며 앞서나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징징거리는 소리로, "다시 내려올 걸 왜 이렇게 기를 쓰고 올라가느냐"며 투덜거리곤 했다. 막상 힘들게 정상에 올라서면 발 밑으로 펼쳐지는 전경에 넋을 잃고는 "아~ 이래서 산에 올라오는구나."라는 소리가 부끄럽게도 스스럼없이 새어나와버린다. 산에 왜 올라가는가? 산이 거기 있으므로. 이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하고, 영 뜬구름 잡는 소리같기도 하고 그렇다. 하물며 동네 뒷산에 올라도 그런 심오한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에 오르는 전문 산악인들은 오죽할까. 

눈덮인 히말라야 산맥의 멋진 사진을 책 표지로 삼고 있는 <히말라야>는 단순히 히말라야라는 높고 거대한 자연만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었다. 미국히말라야재단이라는 단체에서 히말라야의 자연과 히말라야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돕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랑이 넘치는 책이었다.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자연 장벽 안에서 교육과 의료 등 기본적인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학교를 만들어주고, 병원을 설립해주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체계적인 방법들을 배울 수 있었다. 작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들이 커다란 사업이 되고 단체가 되어 한 세대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그들을 돕는 것. 히말라야의 아이들은 학교를 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즐거워 하고 고마워 하고 본인도 그 도움의 손길을 다시 내밀 줄 알게 되었다. 

세계의 여러 곳들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듣고 읽고 보다보면 내가 아는 '세계'라는 곳은 참으로 좁고 얕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아는 세계는 미국,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러시아 정도이며, 이 정도의 나라가 아니면 통째로 제3세계가 되어버렸다. 히말라야 부근의 티베트, 부탄, 네팔 등도 역시 제3세계에 몽땅 들어가는 나라였다. 하지만 그 나라들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으며, 종교가 있고, 학교가 있고, 병원이 있고, 삶이 있었다. 나는 당장 내 눈앞의 현실만 쫒느라 이 넓은 세상에 이 많은 일들을 모른 척하기도 하고 실제로 모르기도 했다. 나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아마 남은 날들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해도 끝내 모르는 것들이 수두룩하리라. 히말라야 산맥의 입구에서 그 거대한 산을 바라보는 막막한 심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발한발 내딛다 보면 결국엔 정상에 오르듯이 겸손한 태도로 하나씩 하나씩 배우고자 노력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루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서 약간 엉뚱할지라도 매일매일을 열심히 꾸준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사진들과 겸손하면서 위대한 사람들의 고운 마음과 고운 일들을 읽으면서 내가 부처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많은 사람들의 글들을 모아 놓았는데, 글 첫머리에 저자가 누구인지 밝혔다면 이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하고 이해가 잘 안 되어 몇페이지를 얼른 넘겨 저자를 확인하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었을텐데..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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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여우의 사랑해도 될까요?
임영란 지음 / 한솜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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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연상의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인의 사랑일기'라는 작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만난 건 순전히 저 자극적인 '21살연상'이라는 단어때문이었다. 20대여자와 40대남자의 사랑인데,, 여자가 대충 25살이라고 해도 남자는 46살.. 어쨌든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연인관계는 아니다. 나이차이나 생활수준, 직업.. 이런 것들로 사람을 재단하고 단정지으면 안 되지만서도, 사회통념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구성원이니까.. 어떻게 21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사랑을 이뤘을까 궁금해하면서 책을 펼쳐들었다. 

헌데,,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넋두리처럼 적어놓은 글들을 보니,, 이 책, 소설이 아니라 실화인 거다. 실제로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열망을 가진 스물일곱의 저자는 21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대한민국의 아줌마가 되었고 여전히 작가를 꿈꾸는 젊은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었다. '실화란 말이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프롤로그를 넘어 본문으로 들어가려는데 역시나 예상과 달리 큰 줄거리를 가진 소설의 형식이 아니라 에피소드들을 짤막짤막하게 나열해놓은 듯했다. 게다가 산문도 있고 시도 있고(시라고 말해도 될려나..) 형식이 들쑥날쑥한 것이 처음에는 잘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장 한장 넘겨가며 읽고 있는데 내 나이와 비슷하다보니 어느 정도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술술 읽혀졌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사랑일기'는 너무나 사적이고 개인적인 일들의 기록이라 읽는 동안 그다지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영화 속, 소설 속 사랑이 아름다워 보이고 멋있어 보이고 슬퍼 보이는 것은 그것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꾸며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현실 속에서 연인과 치고 박고 싸우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멋진 남자주인공과 갸날프고 아리따운 여자주인공이 눈물 뚝뚝 흘리면서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하는 그런 장면과는 다르지 않은가. 조금의 꾸밈 없이, 솔직하게 사랑의 진행과정을 적어내려간 이 책은(특별히 꾸며낸 부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너무나 사실적이라서 아름답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사랑은 가장 아름답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당사자인 나와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이건만 제3자의 눈으로 보는 그들의 문제는 정말 별 것 아닌 것이 되고, 이해 불가능인 상황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어느 연인의 그런 치부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나이차이 같은 거 힘들지만 사랑으로 극복해내고 눈물겹고 마음 따뜻해지는 사랑이야기로 지친 내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다. 

저자는 작가가 되어 드라마든, 라디오든, 뉴스든 뭐든지간에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나도 그런 꿈을 갖고 있지만 막상 실현을 하지도 못하고 그 첫발을 내딛지도 못하는데 큰 용기를 내어 첫 책을 손에 쥐었으니, 그 꿈과 용기가 부럽다. 하지만 아직 영글지 않은 글을 조금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짤막짤막하게 쓴 사랑에 관한 시(?)는 라디오작가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어쩌면 사람들 감성을 건드릴 수도 있겠다 싶은 글들도 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쓴 소리를 한다는 것이 위선같이 느껴져 스스로 속이 편하진 않지만.. 다음 번엔 더 멋진 작품을 들고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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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 - 패션 컨설턴트가 30년 동안 들여다본 이탈리아의 속살
장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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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유럽풍의 어떤 그 무엇이 떠오른다. 그 무엇은 고풍스런 성당이 될 수도 있고, 스테이크와 빵과 와인이 곁들여진 근사한 식탁이 될 수도 있고, 키크고 얼굴 하얗고 푸른 서양인이 될 수도 있다. 수도원과 교회와 성당과 교황과 신부와 수녀 등의 종교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떠오르는 나라와 도시들.. 프랑스하면 파리, 영국하면 런던, 독일하면 베를린, 뮌헨, 이탈리아하면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나폴리, 피렌체, 시칠리아 섬.. 의외로 이탈리아의 도시나 지명 이름이 생각이 많이 난다. 프랑스와 영국은 파리나 런던이 수도로서 너무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걸까?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들이 제각각 개성을 가지고 그 특성을 세계적인 이미지로 잘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내가 하나하나 기억하는 걸까.. 

패션컨설턴트인 장명숙이 이탈리아, 특히 밀라노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이탈리아인들과 부대끼며 지낸 시간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패션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며, 더욱이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도시 이름 말고는 아는 것이 없지만 하얀 책 표지에 도도하게 서 있는 모델 포즈의 여성 그림과 긴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라... 패션강국인 이탈리아 이야기를 하다보니 명품 이름을 책 제목에 그럴듯하게 넣었나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그런 단순한 제목이 아니었다. 패션과 이탈리아의 특성을 그대로 한 줄의 제목에 잘 녹아낸 것이었다. 왜 그런고 하니..  이탈리아는 긴 장화 모양의 반도인데 남부와 북부의 지방특성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한다. 따뜻한 기후에 바다와 가까이 있는 남부지방 사람들은 아프리카 쪽 피가 섞여 있고, 성격이 화끈하고 열정적이며 밝은 터라 베르사체의 화려한 무늬의 옷을 입고, 북부지방의 사람들은 차가운 기후에 게르만족의 피가 섞여 있고, 깍쟁이에 차갑고 이성적인 편이며 무채색에 은근한 실루엣을 드러내는 아르마니를 입는다는 것이다. 표지에 '베르사체' 글자에는 원색이 뒤섞여 있고, '아르마니' 글자에는 회색과 검정색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식사를 할 때 반드시 하얀 식탁보를 깔고 제대로 갖춰서 식사를 한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이 깊었고, 또 '이탈리아의 결혼풍속도'에서도 마음에 남는 글귀가 있었다. '배우자를 이탈리아 말로 '콘소르테consorte'라고 한다. 여기서 'con'은 '함께'라는 말이고 'sorte'는 운명을 뜻한다. 곧 운명을 함께하는 존재가 배우자라는 뜻이다. 이런 정의를 되새기면 결혼의 의미가 묵직하게 다가온다.'(216쪽) 참 아름다운 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결혼을 신성하게 여긴다면 이혼이란 건 없을텐데.. 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탈리아에는 이렇게 결혼과 배우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중요하고 무거운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만 하거나, 연인관계만 유지하는 커플도 허다하게 많다고 한다. 

'이탈리아 할머니에게 배우는 멋있게 늙어가는 방법'에서 저자가 소개한 마팔다 팔로라는 90세 할머니의 이야기도 내게 한동안 가슴에 좋은 울림을 선사해주었다. 전쟁에 끌려가 포로수용소에서 2년간 고생하다 돌아온 애인과 결혼하여 살다가, 남편이 그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주말이면 늘 밀라노 외곽의 공동묘지로 남편을 만나러 간다고 한다. 30년동안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그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름다워서 가슴이 찡해졌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 마팔다 할머니는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의 식사를 하고 90세의 나이임에도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고 의관을 정제하며 꾸미고, 새로운 책을 읽으며 늘 정갈하게 사신다고 한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도 이렇게 깨끗하게, 정갈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을 꿔본다. 또다른 할머니들인 안나리사와 그분의 동갑내기 올케는 두분이서 85세의 나이에 정정하게 봉사활동을 하러 다니며 늘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분주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노인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쓸쓸하게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에 비하면 아주 활동적이고 보람되게 인생을 살고 계신 것이다. 나도 꼭 그렇게 되리라 다짐해본다. 

이탈리아하면 패션, 디자인만 떠올랐는데 장명숙이 만난 이탈리아인들의 따뜻한 품성과 사람냄새나는 그들의 생활을 엿보고 나니 그들도 똑같은 사람들이고,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이 본인들의 나라로 돌아가 혹시나 한국사람들, 한국 생활에 대해 책을 쓴다면 이렇게 따뜻하게 써줄 수 있을까.. 이탈리아의 고즈넉한 성당 뒷골목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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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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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책이 얇았다. 요즘 일본 소설들의 분량은 극과 극인 것 같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처럼 두꺼운 세권짜리 소설도 있고 금방 다 읽은 요시다 슈이치의 <사랑을 말해줘>같이 얇고 가벼운 작은 소설도 있고. 두께와 분량이 소설을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가볍게 후딱 읽고 말 것 같다는 약간의 실망을 안고서 책을 펼치게 되었다. 기분좋게도, 보기 좋게 그 예상이 빗나가 버렸다. 

어느 날, 어느 공원에서 그저 스쳐지나는 인연인 듯 마주친 슌페이와 교코는 한번 두번 만남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연애지만, 교코가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로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연애가 되어 버린다. 슌페이는 소리가 들리냐, 들리지 않느냐는 것을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보통의 평범한 남성이고. 하지만 둘은 그런 것에는 상관하지 않고 둘만의 소중한 연애를 아름답게 시작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거나, 눈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거나 하는 몸의 불편함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쉽게 문장을 쓰고 있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나 당연히. 그들의 입장이 되지 않는 이상 모르는 일. 그래서 나는 교코가 얼마나 답답하고 적막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얼핏 상상은 할 수 있겠지만 결코 내 상상과 같은 수준이 아닐 것이다. 나와 슌페이의 입장은 똑같았다. 이 소설은 슌페이의 입장에서 쓰여있는데 슌페이의 답답함이나 막막함이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절절히 공감할 수 있었다. 

슌페이가 없는 집에서 교코 혼자서 영화를 보고 있는 고요한 장면, 거기서 슌페이는 '너무도 고요한 광기'를 느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원에서 바로 옆에서 건장한 사내 둘이 뒤엉켜 싸움을 하고 있어도 교코는 너무나 해맑고 평온하게 등돌리고 앉아 슌페이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거기서 슌페이는 '너무나 무서운 고요함'을 느꼈다. 

슌페이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파키스탄이나 이라크, 탈레반 등등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테러조직과 관련된 일(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사실 어렴풋이 알면서 더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모른다고 여기려고 한다는 식으로 슌페이의 입을 빌려 얘기한다. 바로 나조차도 그렇다. 중동지역, 테러조직, 이슬람 등등을 그저 뭉뚱그려서 '그'와 관련된 일 이라고 얘기해버리며 의식적으로 더이상 알려 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려고 한다. 더 깊이 알게 되면 머리아프고 복잡해질테니까. 소설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끔했지만, 그렇다고 그런 성향을 고치려 들지 않는 나를 보면서 나도 참 고집이 세구나, 생각을 하면서 또한, 인간이란 얼마나 고집과 아집과 위선으로 똘똘 뭉쳐 있는 존재인가..를 생각을 했다면,, 너무 비약이 심할까.)을 하면서 여기저기로 출장을 다니면서 일을 하는데, 워낙에 상황이 긴박하고 분초를 다투는 일이라 교코에게 소홀해지게 되고 본의아니게 상처를 주게 되기도 한다.
그런 장면에서는 갑자기 같은 여자인 교코의 입장이 되어 슌페이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다시 소설 속 슌페이의 시점에서 얘기가 전개되면 엄청나게 피곤하고 일에 대한 중압감으로 지친 슌페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어쩌면 이해될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마치 남자와 여자의 심리 차이를 설명하는 책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전화를 걸 시간도 없을 수 있다는 슌페이의 주장이 그렇게 뜨악하지 않게 느껴졌다. 정말로 몇일동안 그렇게 바쁠 수도 있는거지, 뭐. 이러면서...

요시다 슈이치의 <사랑을 말해줘>는 하늘색 배경색에 빨간 하트가 인상적인 표지를 입고 있는데, 요시다 슈이치의 연애소설이라며 홍보하고 있는 띠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그 속에는 깊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솔직히 단순한 연애소설이라면 술술 읽히고 읽는 순간에 행복한 기분, 슬픈 기분을 느끼고 책을 덮으면 아~ 부러워라.. 정도로 끝을 맺으면 될텐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았다. 확실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고(뒷부분에 나오는 스타디움의 꽉찬 관중들의 수많은 얼굴들의 이미지가 무엇인지는 한 번 읽고 난 지금,, 잘 모르겠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 언어영역 공부를 할 때 어느 작품의 주제를 말할 때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와 고독'... 이런 식으로 무겁게만 얘기하던 것이 사실 이 작품에도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순수한 사랑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준 이 작품에 마음깊이 고마움을 느끼면서 두어시간만에 읽어버린 이 소설을 다시 한번 정독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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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방으로 들어간다
니콜 크라우스 지음, 최준영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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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다. 네모 반듯하게 각이 잡혀서 길쭉하니, 민트색깔이 뽀얀 이쁜 책이 겉모양과 다르게 엄청 무겁고 과학적이고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마치 사기당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다 읽고서 든 생각은, 언제 시간이 나면 천~천~히 다시 한번 읽어봐야지, 였다. 한 번 읽고서는 도저히 쉽게 이해되지 않을 소설이었다. 

샘슨 그린이라는 명석한 서른 여섯의 영문학과 교수가 어느날 사막 한 가운데에서 발견되고, 그의 머릿속에 종양이 있어 수술을받게 된다. 수술 후 그는 열두살 이후의 기억, 즉 24년의 기억을 몽땅 잃어버리게 되고 바로 옆에 자고 있는 그의 아내, 애나도 알아보지 못한다. 갑자기 들이닥친 현실 앞에 방황하던 그는 레이라는 과학자의 제안으로 다시 사막의 한 연구소로 떠나게 되고 거기서 신기하지만 무서운 일을 겪게 된다. 

책 뒷표지에 적혀 있는 요약 글이나, 책 소개글에는 '기억을 잃어버린 한 남자와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그의 아내, 그들의 사랑은 과연 어떻게 될까..' 라는 식으로 적혀 있다. 마치 사랑이야기가 잔뜩 있는 조금은 슬프고, 하지만 운명적인 사랑이므로 결국은 희망적인 그런 이야기가 전개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친절하지 않은 문체에, 시간과 공간을 금방 뛰어넘어 여기저기 통통 튀어다니는 전개에, 과학적일 때도 있고 때론 철학적일 때도 있는 내용은 절반을 넘게 읽고 있을 때에도 적응을 하지 못하게 했다. 

다만 소재 면에서는 생각할 거리가 잔뜩 있었다. 책 소개글 속 내용처럼, 과연 기억을 잃어버리고 습관이 없어진다 해도 사랑하는(했던)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 흠.. 과연... 어떨까? 상대방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고,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대방을 안았을 때 내 몸에 딱 들어맞게 안기는 것을 느낄 때, 그 느낌은 어떨까? 결국 사랑을 지속시키는 것은 오래도록 같이 있었던 시간들과 함께 한 추억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들이 몽땅 사라져버린 시점에서는 상대방은 그저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결국 소설 속 주인공인 샘슨 역시 아내인 애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을 했듯이 말이다. 물론 끝에 가서는 애나에 대한 감정이 변하는 듯했지만 소설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내 이해력으로는 그것도 맞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것, 습관이라는 것.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S다이어리>에 마지막 부분에 보면 여자주인공 김선아가 독백하는 부분이 나온다.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하면서 하나의 일들을 겪었지만 결국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고, 추억은 각자에게 다르게 남는다고.. 맞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아주 좋은 일이 상대방에게는 그저 그런 일로 남을 수 있는 것이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넘긴 일이 상대방에겐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수도 있는 거니까. 이소라의 노래 중 이런 가사도 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맞다. 그렇다.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는 내가 아주 집중해서 읽지 않은 탓도 있고, 나의 이해력이 모자라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소설이 마냥 쉽게 읽히는 쉬운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 작가의 문학적 역량인지는 나같은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적어도 친절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시간이 되고, 여유가 되어 이 책을 다시 손에 들게 되면 그 땐 지금보다 더 이해하고 더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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