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
니콜 크라우스 지음, 최준영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다 읽었다. 네모 반듯하게 각이 잡혀서 길쭉하니, 민트색깔이 뽀얀 이쁜 책이 겉모양과 다르게 엄청 무겁고 과학적이고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마치 사기당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다 읽고서 든 생각은, 언제 시간이 나면 천~천~히 다시 한번 읽어봐야지, 였다. 한 번 읽고서는 도저히 쉽게 이해되지 않을 소설이었다.
샘슨 그린이라는 명석한 서른 여섯의 영문학과 교수가 어느날 사막 한 가운데에서 발견되고, 그의 머릿속에 종양이 있어 수술을받게 된다. 수술 후 그는 열두살 이후의 기억, 즉 24년의 기억을 몽땅 잃어버리게 되고 바로 옆에 자고 있는 그의 아내, 애나도 알아보지 못한다. 갑자기 들이닥친 현실 앞에 방황하던 그는 레이라는 과학자의 제안으로 다시 사막의 한 연구소로 떠나게 되고 거기서 신기하지만 무서운 일을 겪게 된다.
책 뒷표지에 적혀 있는 요약 글이나, 책 소개글에는 '기억을 잃어버린 한 남자와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그의 아내, 그들의 사랑은 과연 어떻게 될까..' 라는 식으로 적혀 있다. 마치 사랑이야기가 잔뜩 있는 조금은 슬프고, 하지만 운명적인 사랑이므로 결국은 희망적인 그런 이야기가 전개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친절하지 않은 문체에, 시간과 공간을 금방 뛰어넘어 여기저기 통통 튀어다니는 전개에, 과학적일 때도 있고 때론 철학적일 때도 있는 내용은 절반을 넘게 읽고 있을 때에도 적응을 하지 못하게 했다.
다만 소재 면에서는 생각할 거리가 잔뜩 있었다. 책 소개글 속 내용처럼, 과연 기억을 잃어버리고 습관이 없어진다 해도 사랑하는(했던)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 흠.. 과연... 어떨까? 상대방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고,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대방을 안았을 때 내 몸에 딱 들어맞게 안기는 것을 느낄 때, 그 느낌은 어떨까? 결국 사랑을 지속시키는 것은 오래도록 같이 있었던 시간들과 함께 한 추억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들이 몽땅 사라져버린 시점에서는 상대방은 그저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결국 소설 속 주인공인 샘슨 역시 아내인 애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을 했듯이 말이다. 물론 끝에 가서는 애나에 대한 감정이 변하는 듯했지만 소설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내 이해력으로는 그것도 맞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것, 습관이라는 것.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S다이어리>에 마지막 부분에 보면 여자주인공 김선아가 독백하는 부분이 나온다.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하면서 하나의 일들을 겪었지만 결국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고, 추억은 각자에게 다르게 남는다고.. 맞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아주 좋은 일이 상대방에게는 그저 그런 일로 남을 수 있는 것이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넘긴 일이 상대방에겐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수도 있는 거니까. 이소라의 노래 중 이런 가사도 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맞다. 그렇다.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는 내가 아주 집중해서 읽지 않은 탓도 있고, 나의 이해력이 모자라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소설이 마냥 쉽게 읽히는 쉬운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 작가의 문학적 역량인지는 나같은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적어도 친절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시간이 되고, 여유가 되어 이 책을 다시 손에 들게 되면 그 땐 지금보다 더 이해하고 더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