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력 사전 - 사마천의 생각수첩
김원중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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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 10권짜리이다. 중.고등학교 방학때마다 1권부터 10권까지를 쫙 읽어내는 것이 마치 방학숙제인 것처럼, 스스로 정해놓은 원칙인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읽어댔다. 대략 6개월마다 한번씩 다시 읽는대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삼국지는 몇백년도 전에 지어진 책이 아닌가. 몇백년이 맞나? 몇천년인가? 아무튼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지금을 살고 있는 내가 그 옛날 중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재미있어 하고, 뭔가를 생각하기도 한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이래서 '고전'이라는 말이 생겨났지 싶다. 삼국지 말고도 중국의 고전은 지금까지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많이 읽히고 연구되고 있다. 나는 아직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사마천의 '사기'도 '삼국지'와 비슷한 유명한 고전이다. 그 사마천의 '사기'에서 엑기스를 뽑아내어 현대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야전교범처럼 만들어냈다는 <통찰력 사전>을 읽게 되었다. 나도 드디어 사마천을 만나보게 되었구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 표지에는 '하루에 한 편씩 3백편이면 통달!'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데, 실제로 소설처럼 글이 죽 이어진 것이 아니라 어디를 펼쳐서 읽어도 되게끔 한페이지, 혹은 두페이지에 짧은 명언과 그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실려있다. 그래서 나도 정말 아무렇게나 펼쳐서 잠깐 읽고는, 휘리릭 완전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서 또 읽기도 했고, 아니면 아예 한 페이지 읽고 덮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과연 이 책을 한 페이지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워낙 마구잡이로 읽어놔서. 하지만 한 페이지, 두 페이지를 읽고 나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서 혹여 빠뜨린 페이지가 있다 해도 이미 사마천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내가 다 습득하지 않았나 하는 오만이 들기도 한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 책은 쉬운 책은 아니었다. 우선 뜬 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가 많아서 한 번 읽고 '아~'하는 수긍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몇백(몇천?)년 전의 왕과 신하와 장수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2009년의 내가 한번에 이해하기에는 어렵지 않겠는가. 두번 세번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하고 수긍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명언 및에 달려 있는 저자의 상황 설명은 말 그대로 상황 설명인 것이 많았다. 그러니 생각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내 몫일 수 밖에. 

구성은 깔끔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내용은 만만치 않았던 이 책. 다 보고 난 지금 왠지 '삼국지'가 다시 생각이 난다. 중국의 왕과 신하와 장수들의 명언을 읽다 보니 그들의 문화와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을 조금은 알게 되었고, 이 기세를 몰아 삼국지를 다시 읽는다면 어릴 때 읽었던 그 느낌과 사뭇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학생 때는 단순히 재미로 삼국지를 읽었다면 이제는 인물들의 상황 판단 능력과 사람을 쓰는 법 등등을 배워서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도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든 다음에 다시 읽는다면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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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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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겁을 냈다. 소설책인 주제에 제목에 "수식"이라는 말이 들어있다니. 책 소개글에도 숫자와 수식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박사의 이야기라고 나와있으니 내가 이걸 이해할 수 있겠어? 라는 의구심이 들었고, 막연한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왜 일본에서 서점대상을 받은 소설이고, 많은 사람들이 좋은 책이라고 칭찬을 하는지 궁금증이 일었고, 결국 이 책은 내 손안에 들어오고 말았다. 책 표지는 의외로 작은 소년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박사'와 '수식'이라는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어떻게 보면 개구쟁이일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뭔가 많은 걸 알고 있는 듯한 신비한 분위기의 남자아이가 그려져 있다니.. 도대체 이 소설은 뭘 말하려는 거야? .. 드디어 나도 남들 다 읽었다는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아케보노 파출부 소개소에서 소개해준 집에 가서 파출부 일을 하는 나는 어느 날 한 노인의 집으로 일을 하러 가게 된다. 그는 어떤 사고로 인해 1975년에 기억이 멈추어버렸고, 현재의 기억은 단 80분만 지속되는 슬픈 병에 걸려 있었다. (사실 병이라고 하기 보다는, 뇌의 어느 부분에 손상이 간 것이지만,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 아닐까 생각한다.) 80분만 지속되는 자신이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 낡은 양복에 수많은 메모지를 끼워놓고 사는 그는 사실 아주 유능한 수학박사였다. 세상에서 수가 가장 아름다우며 그 중에서도 소수를 가장 사랑하고, 하루 종일 수의 세계에 빠져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파출부 일을 하러 온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기는 하지만, 그의 양복엔 '새 파출부'라며 내 얼굴을 엉터리로 그려놓은 메모지가 붙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10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박사는 기어코 아들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한다. 아이는 엄마를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해서 늙은 박사와 20대의 파출부와 그의 어린 아들, 이 3명의 기묘한 동거(한나절 정도 되는 동거이지만)가 시작된다.  


이 소설에서는 실제로 오일러의 공식이라든지, 우애수, 삼각수 등 진짜 수학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나처럼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박사의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마치 할아버지가 차근 차근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또 만약 이해가 되지 않는다해도 큰 무리는 없다. 이 책은 수학책이 아니라, 소설책이니까. 소설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수의 완벽함과 아름다움에 빠져있는 한 박사가 파출부와 그 아들 루트에게 우정과 애정을 느끼며 그것을 수로 표현했다는 것이니까. 아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는 박사도 마음 따뜻해지게 놀랍지만, 무엇보다도 겨우 10살짜리 아이의 속깊은 배려와 어른스러움이 무엇보다도 감동스러웠다. 파출부 일을 하는 엄마때문에 늘 혼자서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기다리던 루트는 엄마가 일을 하는 할아버지(박사)의 집에 놀러가게 되면서, 그 할아버지가 겪는 병을 알고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하면서도 아이 특유의 재기발랄함으로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참으로 귀여운 소년이었다. 친할아버지가 아님에도 그의 사랑을 듬뿍 받을 줄 아는 루트의 순수함은 책을 읽고 있는 내 가슴까지 정화시켜 주는 듯했다.  


박사와 파출부와 그 아들. 세 명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눈물이 한 방울 또로록 흘러내릴 것 같은 짠한 그리움을 가져다 주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어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박사의 수식으로 표현한 애정이 부러웠다. 책 띠지에 적혀있는 문구 "한동안 다른 책은 읽고 싶지 않다."가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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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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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많은 일본 소설답지 않게 하드커버가 아니어서 맘에 들었다. 한 권의 소설 치고는 짧은 듯한 대부분의 일본 소설들은 내용의 가벼움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쉽게 읽히기도 하지만, 쉽게 잊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두번째로 만나게 되는 '온다 리쿠'의 작품은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일본 소설들과는 달라서 좋았다. 짧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고. 솔직히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네 편의 이야기 중 마지막 편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그의 이야기 방식이 한편으로는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에둘러 이야기하는 것이 답답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의 이름과 작품들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호평이 나를 두번째 작품으로 이끌었다. 바로 이 책 <밤의 피크닉>으로. 
 

스물 네시간, 꼬박 하루동안 한 고등학교의 전교생이 하얀 체육복을 입고 무작정 걷기만 하는 행사, 보행제. 다른 특별한 행사가 끼어 있지도 않고, 그저 걷기만 한다. 학교에서 출발하여 정해진 코스를 돌아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매년 열리는 행사. 마라톤도 아니고 어떻게 하루종일 걷기만 시킬 수 있지? 라는 의아함도 잠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고다 다카코의 시선을 따라가며 독자인 나도 그 보행제에 참가하고 보니 이 행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고, 이 행사를 매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학교의 뚝심에 경외감을 느낄 정도였다. 

고다 다카코는 고등학교 3학년. 올해가 마지막 보행제이다. 친한 친구인 치아키와 리카와 함께 걸어간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그렇듯이, 일본의 고등학생들도 친구들의 연애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면서 단체보행을 하고 있다. 같이 학교를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버린 안나의 부재를 느끼면서 열심히 걷고 있는 다카코는 마음 속으로 한 가지 내기를 한다. 같은 반이 되어버린 이복남매인 도오루에게 말 한 번 걸어보기.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지만 악연이라고 할 수 있는 끈으로 이어진 도오루와 다카코는 서로를 철저히 무시하면서(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주인공은 다카코와 도오루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구석구석 어루만져 있다. 도오루를 좋아하는 치아키의 성숙한 마음가짐, 멋진 커플이었지만 진짜 사랑이 아니라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매력만점 미와코, 낮에는 좀비처럼 축 처져 있다가 밤이 되면 살아나서 "행복하십니까아~"를 연발하는 다카미, 믿음직하고 어른스러운 도다 등등. 다카코와 도오루가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들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를 궁금해하면서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어느새 나도 그들 친구가 된 마냥 그 속에 녹아 들어갈 수 있었다. 

계속해서 묘사되는 지친 몸의 피로는, 언뜻 반복되어 지루하기도 했지만, 하루종일 걷는 동안 몸이 피곤한 건 사실인데, 뭘. 그걸 읽는 동안 지루하다고 느꼈던 것은 어쩌면 나도 같이 몸이 나른해지고 피곤해진 건 아닐까, 작가는 그걸 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특별한 하루, 그 보행제가 내 고등학교 시절에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한뼘은 더 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인상깊은 구절:

"모두 눈이 번들번들하거든. 우리는 내심 오들오들 떨면서도 번들번들거리고 있어. 지금부터 세상의 것을 소에 넣지 않으면 안 되는 한편,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아. 그래서 겁을 내면서도 영악해져 있는 거야. 그런데 다카코는, 번들거리지도 않고 오들오들 떨지도 않아." (219쪽)

"좋아한다는 감정에는 답이 없다. 무엇이 해결책인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으며, 스스로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훗날의 행복을 위해 가슴속에 간직하고 허둥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23쪽)

"어제부터 걸어온 길의 대부분도 앞으로 두 번 다시 걸을 일 없는 길, 걸을 일 없는 곳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 앞으로 얼마만큼 '평생에 한 번'을 되풀이해 갈까. 대체 얼마만큼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을 만나는 걸까. 어쩐지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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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눈물 - 사라지는 얼음왕국의 비밀
조준묵 프로듀서 외 지음, 박은영 글, 노경희 스토리 / MBC C&I(MBC프로덕션)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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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책 제목인 <북극의 눈물>의 의미에 대해서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책 제목은 책의 첫 인상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소설 같은 경우에는 제목이 왜 그럴까.. 라는 고민을 항상 했는데, 이 책은 소설이 아니어서 그리고 표지에 있는 북극곰의 모습이 너무나 푸근하여 책 제목을 고민할 틈이 없었나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이 책 제목에 왜 '눈물'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는지, 그 단어가 귀여운 북극곰의 이미지와 얼마나 안 어울리는지, 하지만 그게 현실이란 것을 알고 얼마나 슬퍼지는지.. 복잡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MBC에서 제작된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꾸민 이 책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얼음이 녹아버려 북극의 환경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 환경이 달라지면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과 동물들 모두 그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법. 그 변화를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지구 온난화'라는 말은 몇년전부터 뉴스나 교과서에서 많이 들어봤던 말이다. 하지만 또 최근에는 그다지 들은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내가 특별히 관심이 없어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지구 온난화'를 흘려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처음 이 현상을 사람들이 알아챘을 때보다는 확실히 충격이나 자극을 덜 받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에 익숙해진 것 아닐까. 익숙해진다고 그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닐진대. 이 책은 그렇게 무뎌진 우리들을 확실히 깨워준다. 

실제로 북극에 잘 살고만 있을 것 같은 북극곰들은 지금 생존이냐 멸종이냐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북극이 꽁꽁 얼어 있어야만 먹을 것도 풍부할텐데 점점 녹아내리는 북극은 북극곰들이 먹을 것을 거의 빼앗아버렸다. 새끼곰들을 먹이기 위해 주린 배로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딛는 어미곰의 심정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곰이라고 모성이 다를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새끼곰은 어미가 겨우 찾아낸 먹이를 조금 먹고는 어미 옆에서 스르르 잠이 들어버린다. 북극곰 같은 북극의 동물들만 힘든 것이 아니다. 꽁꽁 언 북극을 무대로 사냥을 하고 생활을 하는 이누이트들 역시 삶이 송두리채 바뀌어버렸다. 대대로 사냥을 하던 이들은 어부를 변해 있었고, 그 삶에 어느 덧 적응도 해가고 있었다. 분명 하얀 얼음이 가득한 곳이었는데 기후가 바뀌어서 푸릇푸릇 풀이 돋고 집이 여러 채 더 생겨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바뀐 곳도 있었다. '지구 온난화'는 말로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생활에 침투하여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북극에 살고 있지 않은 우리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지구는 변해가고 있다. 언제 바로 우리도 이런 변화를 강요당할지 모른다. 책 제목인 <북극의 눈물>에서 '눈물'은 얼음이 녹아내린 물이라는 뜻도 있고, 변해버린 환경에 슬픈 어미곰의 눈물일 수도 있었다. 말그대로 북극의 눈물은 지구의 눈물이 될 것이다. 이미 많이 진행된 '지구 온난화'이지만 더 악화되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분명히 있다. 현실을 자각시켜준 이 책에서 단 하나 아쉬운 점은 우리의 실천방법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좀 더 확실히 얘기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위험한 일이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다니,, 라며 마음이 급해져 발을 동동 구르게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차근차근히 가르쳐주지 않으니 급하 마음이 더 급해지기만 했다. 결국 이러다 잠시 후에 또 잊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내 스스로 다시 마음을 다잡아본다. 북극이 '북극' 그대로, 제발 꽁꽁 얼어 있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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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장으로 - 제13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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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그 가슴 저림을 잊지 못하는 당신의 이야기'라는 혹하는 문구를 띠지에 싣고, '탄탄한 구성, 프로의 문체, 어른의 소설'이라는 극찬이 책 뒷표지에 당당히 실린 이 책. 여성스런 일러스트도 아름답고,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의외인  <채굴장으로>라는 제목의 이 책. 이노우에 아레노라는 일본 작가 한명을 더 알게 되겠구나, 라며 기대를 갖고 시작한 이 책. 다 읽고 난 지금은 속된 말로 '낚였다.'정도? 내 감성이 무딘 건가, 나는 그동안 자극적인 것에 너무 길들여진 건가.

세이는 아버지가 진료소를 하던 섬에서 학교 양호교사를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본토에서 지내다가 아버지가 실종되면서 섬으로 들어왔는데, 섬처녀 아니 섬아줌마가 되어버렸다. 그래봤자 31살. 아직 젊고 아름답다. 섬이라는 좁고 한정되어 있는 공간에서 가까운 이웃들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이의 입장에서.
이사와라는 젊은 남자가 학교 음악선생님으로 새로 오면서 세이는 조금씩 흔들린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 이사와가 있고, 왠지 이사와 앞에서는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를 쓰게 되고, 자주 부딪히게 되고. 학교 동료교사인 쓰키에가 불륜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본토씨와의 일들, 몸과 정신이 쇠약해진 시즈카 할머니를 간호하면서 생긴 일들과 더불어 이사와와의 관계가 시종 담담하게 그려진다. 

쓰키에와 본토씨, 본토씨의 아내, 이사와. 이렇게 네명의 관계가 오히려 생동감 넘치고, '사건'이라고 명명할 만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활달하고 자기 주장 강한 쓰키에가 본토씨의 아내와 싸워서 이겼을까, 졌을까. 본토씨와 이사와가 싸워서 누가 이겼을까. 이렇게 궁금해하는 중에 혹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불륜도 사랑일까, 본토씨의 아내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까, 등등.

세이와 남편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어준다.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된다. 세이는 그 관계 속에서 새로 온 선생님 이사와를 조금씩 조금씩 신경쓴다. 책을 읽는 내 입장에서는 그건 정말로 '신경쓴다'는 정도이지, 세이가 이사와를 정말 좋아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나에게 '사랑' 혹은 '좋아하는' 감정은 그 사람이 아니면 아무것도 안 되고,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감정이 뜨거워서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되는 그 정도인데, 세이가 이사와를 신경쓰는 건 전혀 그 정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인정하지 못하겠다. 물론 남편이 있는 여자인 세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더라도 쓰키에처럼 완전 불륜관계가 되지 않는 이상 그걸 표현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긴 하겠지만, 일상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을 간접적으로 겪어보고, 상상해보기 위해 책이나 영화를 접하는 거니까, 그냥 그냥 그냥 그냥 이런 심심한 이야기에 나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고개를 드는 궁금증 하나. 세이가 이사와를 신경쓰는 건 알겠는데, 이사와는 세이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세이의 앞에 불쑥 불쑥 나타나서는 갑자기 휙 사라져버리고.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인 세이를 마음에 품었던 것 아닐까. 그런데 왜 쓰키에와 잤을까.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고, 아무것도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마음이 찝찝하다. 제목처럼 채굴장으로 빠져버린 어둠 속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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