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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투 커버 - 책 읽는 여자
로버트 크레이그 지음, 나선숙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애교 대신 지성, 남자 대신 책을 품은 스물아홉 살 타냐의 두 번째 사춘기'라는 문구를 내걸고 나를 유혹한 이 소설 <커버 투 커버- 책 읽는 여자>는 솔직히 기대 이하였다. 나도 책을 좋아하고, 나도 현재 남자친구가 없으며, 나도 이제 곧 스물아홉이 멀지 않았으니까, 도대체 영국에 사는 이 아가씨는 어떻게 쿨하게 서른을 맞이할까? 라는 궁금증으로 책을 펼쳤으나, 도대체 공감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일삼는 이 아가씨에게 어떤 정도 붙일 수 없었다.
읽을 책이 떨어질까봐 서점에서 책 쇼핑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타냐는 비호감사에서 카드 디자인을 하며, 카펫 수리공인 잘생기고 꽤 괜찮은 남자친구 리처드가 있다. 마냥 순하고 착한 캐릭터는 아닌 모양으로 속으로나 겉으로 꽤 시니컬하고 독하며 오만하기까지 하다. 그러던 어느 날 헌책방에서 <가짜 종이꽃가루>라는 책을 구했는데, 글쎄 저자의 이름이 타냐의 이름과 똑같고 마치 자서전인 양 타냐의 과거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과거는 물론 미래까지..
<가짜 종이꽃가루>로 인해 미래를 읽게 된 타냐가 복권에 당첨되거나 아주아주 멋진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오히려 황당하긴 하지만, 그런 기분 좋은 상상에 동참할 수 있으니까 그걸로 만족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타냐는 자신의 과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책을 겁을 내고 읽기 두려워했으며 얼핏 본 미래의 모습에서 약간의 도움을 받아 용기있는 결정을 내리는 정도(사표를 내거나, 앨리슨에게 절교 편지를 보내거나..)만 한다. 또한 엄마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그로 인해(?) 엄마가 죽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의 장례식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아,,,,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을 거라고, 이 아가씨의 현명하고 속깊은 마음 씀씀이와 삶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우고자 했던 나는 오히려 표독하고 야멸차고 정나미 없는 이 아가씨 덕분에 마음의 정화는 커녕 마음이 어수선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타냐를 기다려주고 보듬어주며 사랑하는 칼이라는 남자 덕분에 이상형은 더더욱 높아지고 말았다. 다만 한가지 배운 점이 있다면, 타냐가 9년동안 오매불망 마음으로 그리고 그리던 마틴이라는 완벽한 남자가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저 그런 보통 남자가 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세상의 모든 남자는 다 똑같다. 혹은 세상의 모든 여자는 다 똑같다. 아니,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똑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약간 놀라운 것은, 나도 최근에 마음으로 완벽한 남자라고 믿고 있던 어떤 남자가 오랜만에 만났더니 그 모습이 아니더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걸 책으로 비슷한 상황을 읽게 되었다는 것.
나의 과거가 고스란히 적혀 있는 책을 만나게 된다면, 과연 그 책은 재미있을까? 다시 말하면, 얼마 안 되는 내 인생은 책으로 적어 낼만큼 재미가 있었던가? 그저 무심히, 그저 보통으로, 그저 평범하게 흘러흘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남은 삶은 익사이팅하고 서프라이징한 인생으로 살아내야 되지 않을까? 지금 이대로라면 나조차도 지겨워서 그 책을 덮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만약 그 책에 내 미래가 예언이 되어 있다면, 나는 과연 그 부분을 펼쳐 볼 용기가 있을까? 내 미래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막상 물어보려니 겁이 나는 이 기분.
이제 곧 스물 아홉이 되고 서른이 되는 이 시점에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을까? (결국 나는 다른 사람 눈에 보이는 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여기서 또한번 느끼고 만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생각이란 건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참, 인상깊은 구절이 하나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칼의 대사인 책보다 체험이 중요하다는 식의 그 말도 꽤 괜찮았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든 구절을 하나 소개한다. "자동차를 살 때는 매력적인 특징을 요모조모 따져보고 포괄적인 보증서까지 받아야 안심이 되지만, 택시를 탈 때는 기본적으로 도로를 달리기에 적당한가만 알면 되는 법이다."(212쪽) - 결혼할 남자와 그저 연애만 할 남자를 구분하는 정도의 뉘앙스인데, 딱 적절한 것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