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테이크아웃하다 - 서른과 어른 사이, 사랑을 기다리며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신윤영 지음 / 웅진윙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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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말보다 '연애'라는 말이 더 상큼하고 발랄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이제 '사랑'을 원하고 '사랑'에 목숨걸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나이가 들었다는 걸 말하는 걸까? "나, 요즘 연애하고 있어~"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한마디 하고 싶지만 "나, 요즘 사랑하는 사람 있어."라는 말은 아무래도 낯간지러워서 못하겠다. 사실, 지금 그런 상황도 아니고. 

<연애를 테이크아웃하다>라는 이쁘장한 책을 발견했을 때 그 상큼발랄한 연애 이야기를 들어나볼까? 얼마나 톡톡 튀고 감성적일거야? 라는 반항심도 있었다. 나는 못 하고 있는 연애를, 남들은 다 하고 있는 연애를 얼마나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풀어놨을까 하는. 그렇게 책을 펼쳐들었는데 이 책 안에는 사랑의 달콤한 얼굴보다는 어린 시절의 사랑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에 대한 담백한 감상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나도 충분히 공감하면서(반항하려던 마음은 잊어버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하며 저녁부터 밤까지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영화 예고편을 보고 잔뜩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갔다가 예고편이 전부였다는 걸 알고 실망했던 일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의 책 소개글에 실려있는 짤막한 몇 개의 글을 보고 이 책은 과연 소개글이 다일까, 아니면 빙산의 일각이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숨겨져 있을까 라며 불안 반 기대 반으로 시작을 했다. 일단 나는 이 책에 합격점을 준다. 소개되어 있지 않은 글들 중에 임팩트가 큰 글들이 상당히 있으며 잔상이 오래 남는 부분도 많았다.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몇 개의 문장들을 소개해 본다. "당신이 사랑하는 나는 많은 부분, 내가 사랑했던 이들의 조각들로 빚어져있다."(118쪽), "만약 누군가의 마지막 인상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상대 몰래 혼자서 마지막을 준비했던 사람일 게다."(51쪽) ".....불과 일주일 전에 털어놓았던 '절절한 진심'이 '되새기고 싶지 않은 헛소리'로 상하는 꼴..."(140쪽) 읽고서 잠시 손과 눈과 머리와 심장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그저 가만히. 

서른셋인 저자는 스물일곱 때의 자신과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 한창 이쁘고 사랑에 자유로웠을 그 때를 그리워하지만, 딱 그 나이인 나는 지금이 늦었다고 생각하며 정말 자유로웠던 스물 셋의 나와 사랑을 그리워한다. 서른셋의 저자는 내 나이가 그립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아직 내 감성이 무뎌지거나 메마르지 않은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치만 나는 절절히 연애나 사랑을 바라지도 않고, 외로울 수 있는 하루하루를, 그저 무사안일한 하루를, 스스로 무뎌진 혼자만의 하루를 아무렇지 않게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슬퍼졌다. 더이상 20대 초반처럼 그저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밖에 안 보여서 달려들었던 무모할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없게 되버린 지금, 나는 그 때를 추억하고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런 무모하고 무턱대고 뜨겁기만 했던 사랑말고 조금 똑똑한 사랑을 하고 싶다. 지금 같아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마도 나는 또 바보같이 사랑하겠지? 그리고 사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깨진 사랑을 다시 돌이킬 수 없듯이 흘러간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그냥 지금이 가장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충실하게 보내야겠지.

오랜만에 가슴에 바람이 불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다만, 저자의 화려한 글솜씨를 뽐내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너무 많은 미사여구와 수식어가 붙어 한국어임에도 불구하고 몇번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문장도 종종 있었다. 어릴 적엔 줄줄 흘러나오는 문장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하는 담백한 문장이 더 끌린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글을 쓸 때 담백하게 쓰지는 못한다. 그게 훨씬 많이 어려운 것같다.)
내 지난 사랑은 어디쯤에서 흘러가고 있고, 내 다가올 사랑은 어디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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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아는 여자 2030 취향공감 프로젝트 1
김정란 지음 / 나무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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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 슬프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야구를 알고 즐기면서 보면서 롯데를 응원하려 했건만 내가 <야구 아는 여자>를 읽고 있는 도중에 롯데는 1차전에서 승리하고도 세번 연거푸 패하는 바람에 결국 이번 시즌을 마감했다. 내가 응원하면 지는 건가....
요즘 TV에서 오합지졸 연예인들이 모여 야구를 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야구에 관심없는 나도 몇 번 봤는데 꽤 재미있었다. 이 참에 나도 야구에 관심 좀 가져봐?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내 눈에 띈 책 한 권. 바로 <야구 아는 여자>였다. 야구선수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가씨의 모습이 유치찬란하게 그려져 있는 이 책이 책 자체로서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아마도 이 책은 아까 말했던 연예인 야구 프로그램의 인기에 편승해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긴 했지만 이 세상의 야구를 잘 몰라 슬픈 여자들에게 한줄기 빛이 된다면야. 그 여자들 속에 나도 포함. 그리고 혹시나 알까? 겉으론 알은 체 하지만 사실 야구를 잘 모르는 남정네들에게도 은근슬쩍 도움을 줄지도.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 '야구 늦둥이'를 위하여. 야구의 기본 상식들을 알려주는 친절한 코너이다. 2부 - 입맛대로 취향대로 야구 맛들이기. 미국 야구를 보겠다는 것도 아니요, 일본 야구를 보겠다는 것도 아니니 기본 야구를 알았다면 이제 그것을 적용할 우리나라 프로야구에 대해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프로야구 구단과 감독, 선수들에 대한 맛깔나는 소개가 실려 있다. 3부 - 야구 ENJOY 올 가이드. 프로야구의 한 시즌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가르쳐주고, 실제 야구장에 가서 잘 할 수 있도록 팁을 알려준다. 4부 - 야구로 통하는 여자가 섹시하다. 이제 야구의 기본 룰을 알게 되면 조금 아는 눈으로 봤을 때 잘 이해 안 되는 장면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의문을 해소해주고 야구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이 마지막으로 소개되어 있다. 

다 알차고 영양가 있는 정보이지만 아무래도 나처럼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1부가 가장 요긴하게 읽혔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지만(세상에 모든 '공부'라고 하는 것들은 지겹지 않을까? 1부는 아무래도 공부의 성격이 강하다.) 꼼꼼하게 읽으면 그만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야구지식이 풍부하다. 1부를 나름 소화했다면 어디 가서 "나? 야구 아는 여자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소리를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더니만 롯데가 져버렸다...............................

일러스트들도 상당히 재밌고, 문체도 유쾌하다. 실로 <2030 취향공감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을 걸고 나올만한 책이었다. 책 날개에 보니 <축구 아는 여자>도 출간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책도 꼭 읽어봐야 겠다. 박지성은 좋아하지만 축구는 모르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바로 여기, 나... 

참, 예전에 재미나게 읽었던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다시 읽어보면 좋겠다. 제목 그대로 프로야구 초창기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활약(?)을 아주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는데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중에도 소설이 아주 재밌었던 걸 보면 야구를 아는(풋!) 지금 다시 읽으면 완전 배꼽 잡고 무너지겠지?
오랜만에 유익한 책을 읽어서 몸과 마음이 다 꽉 찬 느낌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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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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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작가의 책을 연달아 읽었다. 이 작가를 조금 알 것 같다. 그래서 다음 번에 이 작가의 다른 책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선뜻 그 책을 집어들까, 아니면 외면하고 말까. 여기서 이 작가는 '이시모치 아사미'이고 연달아 읽은 그의 책은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와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이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책표지가 섬뜩하다. 여인의 나체인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보면 나무뿌리 같기도 하고, 어쨌든 머리부분에 얼굴은 없고 활짝 만개한 꽃이 아름다우면서 서글프게 그려져있다. 핏방울이 튀어 있고, "이 손으로 창조한 그녀들을 이 손으로 죽여야만 한다!"라는 무서운 한마디도 적혀 있다. 도대체 이 책의 내용은 무엇이고, 어떻게 전개되고, 결국 그는 그녀들을 죽일 수 있을까..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시모치 아사미의 추리소설 혹은 미스터리소설에는 주인공이 탐정 역할이 아닌 범인이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에서는 이미 후배를 죽이고 그 살인을 은폐하려는 범인이 탐정역할을 하는 후배와 두뇌싸움을 벌였다면,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에서는 세명의 여자를 죽이기로 결심한 범인의 하룻밤 행적을 따라가며 그의 고뇌(정확하게 말하면 살해방법에 대한 고민)를 풀어내고 있다. 독자들은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범인과 동화되고, 그가 성공하기를 바라게 된다. 아무리 이 사람이 살인이라는 죄를 저지르려고 해도 그의 심리와 함께 움직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가 실패하여 좌절하는 것보다 결국 완전범죄를 성공시켜 유유히 미소지으며 현장을 떠나는 것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 (나만 그런걸까?) 사실 범인이 하는 짓이 나쁜 짓이란 걸 알지만, 그래서 탐정역할을 하는 등장인물이 그를 막아주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결국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은 들킬랑말랑하는  아슬아슬한 장면이고, 그 장면을 무사히 지나가면 뭔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채 우리의 주인공 나미키 나오토시는 세 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중기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목요일 밤, 예상치 못한 애인의 등장과 그녀의 공격으로 정당방위이긴 하지만 그녀를 죽이고 그 날 밤에 세 사람을 죽이기로 급히 결정을 내리고 움직이게 된다. 과연 그는 세 사람을 무사히(?) 죽이고 아침을 맞을 수 있을까?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에서는 장기기증에 관한 이야기가 중요한 소재였다. 아니, 주인공에게는 매우 중요했지만 사실 살인이 일어나고 그것을 숨기고, 그것을 캐내고 하는 과정에서 장기기증은 그저 단순한 빌미밖에 되지 않았다. 범인과 탐정의 두뇌 싸움만 부각되었을 뿐. 두번째로 읽은 이시모치 아사미의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에서는 원죄 사건 피해자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리게 된 후 그 때부터 용의자가 아닌 범인 취급을 받으며 고생하는 당사자와 그의 가족들을 지원해주는 단체에 지원자와 피해자가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여기서도 솔직히 원죄 피해자는 그냥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원재료에 불과하고 거기서 파생되는 살인과 살해방법, 살인자의 내면만이 공허하게 떠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회적인 문제를 살짝 건드리면서, 그렇다고 그게 목적은 아니었던 것처럼 오로지 문학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 그게 이시모치 아사미의 원래 속셈일까? 아니면 사회문제를 정면돌파해서 제대로 파헤치는 것은 무리였던 것일까.

범인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니 아무래도 똑같은 말이 계속해서 나온다. 사실 우리 머리속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들을 글로 써내려가다보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말들이 난무하겠지만, 그래도 책을 통해서 계속해서 똑같은 이야기를 읽어가는 것은 지겹기도 하다. 물론 편협하고 옹졸한 범인의 꽉막힌 생각이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방법이긴 하지만. 어쩌면 이래서 이시모치 아사미의 소설은 건조하고 재미없고 지겨울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이 남아있으니, 그 기막힌 반전의 맛을 보려면 그 정도 쯤이야 좀 참아야 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제일 첫머리에 내가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다시 이시모치 아사미의 다른 소설을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책을 손에 들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 지나쳐버릴 것인가..
흠... 아무래도 삼세판이라고 한 번은 더 읽어보고 싶다. 그 다음 소설에서는 너무 한 사람의 사고방식을 좇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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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읽는 CEO -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읽는 CEO 8
김진애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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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태어나서 20년 정도 살다가 최근 인근의 작은 도시로 이사를 했다.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는데, 고향과 부모님을 떠난 것이 꽤 두렵고, 외로웠지만 그런 감정은 한 두달이 지나니까 차츰 무뎌져갔다. 하지만 대도시의 편리한 생활수단을 당연하게 누리다가 소도시에서 그런 것들을 누리기 힘들어지니까 그 불편함은 무뎌지기는 커녕, 불만이 가득해졌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대중교통수단이었다. 부산에 당연히 있는 지하철과 버스 환승시스템을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만, 적어도 정확한 배차시간과 편리한 노선운행만이라도... 라며 울며 겨자먹기로 버스를 타고 다니다가 최근에 자가용을 마련해서 이제는 잊어버리고 살고 있긴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도시의 교통시스템이라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도 사람들이 시스템을 개발하고 연구하고 다듬고 실행하고 고치고 하는 중에 지금의 시스템이 완성되는 것이고, 생각해보면 교통시스템은 도시를 구성하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 수도, 행정, 산업 등등등.. 도시 안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는가. 도시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 누가, 어떻게 만들었으며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김진애의 <도시 읽는 CEO>는 이런 궁금증을 적절히 해소해주었고, 실례로 전 세계의 다양한 도시들을 소개하며 좋은 점은 칭찬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생각할 점을 남겨주었다. 중간 중간 들어있는 사진들은 실제 그 도시에서 이 글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끔 해주었다.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런던과 파리를 비교한 '지적 감동의 순간을 축복하라'는 곳이었다. 런던은 생각보다 도시가 질서정연하지 않고 복잡하다고 한다. 왠지 영국 런던과 영국 신사라는 이미지로 보면 딱 떨어질 것같은 느낌일 것 같은데, 완전 반대라고 하니 의외였다. 런던의 제 1명소라는 트래펄가 광장(사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긴 하다.)은 교통이 복잡하고 탑과 분수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사람들은 들끓는다고 한다. 반대로 프랑스 파리는 왠지 자유롭고 낭만적인 이미지 덕분에 굳이 따지자면 파리가 자유분방하게 도시가 만들어졌을 것 같았는데, 도시가 균질적이라고 한다. 도시 전체가 평평하고 건물 높이가 균일하여 축이 확연히 눈에 띈다고 한다. 책에 실려 있는 파리 에투알 광장의 사진은 가히 놀라웠다.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깊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에투알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쫙 뻗어있는 방사상 가로축이 자로 잰 듯 깔끔하여 도시의 건물 사진을 보고 '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였다. 한데 이런 도시가 만들어진 이면에는 도시의 컨트롤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그런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이 대단하기도 하고.. 깔끔한 도시 모습과 달리 마음은 복잡해졌다.

<도시 읽는 CEO>라는 책 제목처럼 '도시'라는 소재로 인간의 마음을 읽고 올바른 행동을 알려주고 이런 걸 의도한 것 같은데 솔직히 뭔가 교훈을 주려는 듯이 보이는 부분은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단지 내가 잘 모르는 세계의 다양한 도시들을 여행자의 시선이 아닌 전문가의 관점으로 설명해준다는 점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조용한 도시를 살기 편하고 좋은 도시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도 좋았다. 내가 그런 큰 힘은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 두 가지 제안을 할 수는 있을테니, 늘 불만만 품고 있지 말고 그것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좋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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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투 커버 - 책 읽는 여자
로버트 크레이그 지음, 나선숙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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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 대신 지성, 남자 대신 책을 품은 스물아홉 살 타냐의 두 번째 사춘기'라는 문구를 내걸고 나를 유혹한 이 소설 <커버 투 커버- 책 읽는 여자>는 솔직히 기대 이하였다. 나도 책을 좋아하고, 나도 현재 남자친구가 없으며, 나도 이제 곧 스물아홉이 멀지 않았으니까, 도대체 영국에 사는 이 아가씨는 어떻게 쿨하게 서른을 맞이할까? 라는 궁금증으로 책을 펼쳤으나, 도대체 공감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일삼는 이 아가씨에게 어떤 정도 붙일 수 없었다. 
 

읽을 책이 떨어질까봐 서점에서 책 쇼핑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타냐는 비호감사에서 카드 디자인을 하며, 카펫 수리공인 잘생기고 꽤 괜찮은 남자친구 리처드가 있다. 마냥 순하고 착한 캐릭터는 아닌 모양으로 속으로나 겉으로 꽤 시니컬하고 독하며 오만하기까지 하다. 그러던 어느 날 헌책방에서 <가짜 종이꽃가루>라는 책을 구했는데, 글쎄 저자의 이름이 타냐의 이름과 똑같고 마치 자서전인 양 타냐의 과거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과거는 물론 미래까지.. 

<가짜 종이꽃가루>로 인해 미래를 읽게 된 타냐가 복권에 당첨되거나 아주아주 멋진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오히려 황당하긴 하지만, 그런 기분 좋은 상상에 동참할 수 있으니까 그걸로 만족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타냐는 자신의 과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책을 겁을 내고 읽기 두려워했으며 얼핏 본 미래의 모습에서 약간의 도움을 받아 용기있는 결정을 내리는 정도(사표를 내거나, 앨리슨에게 절교 편지를 보내거나..)만 한다. 또한 엄마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그로 인해(?) 엄마가 죽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의 장례식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아,,,,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을 거라고, 이 아가씨의 현명하고 속깊은 마음 씀씀이와 삶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우고자 했던 나는 오히려 표독하고 야멸차고 정나미 없는 이 아가씨 덕분에 마음의 정화는 커녕 마음이 어수선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타냐를 기다려주고 보듬어주며 사랑하는 칼이라는 남자 덕분에 이상형은 더더욱 높아지고 말았다. 다만 한가지 배운 점이 있다면, 타냐가 9년동안 오매불망 마음으로 그리고 그리던 마틴이라는 완벽한 남자가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저 그런 보통 남자가 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세상의 모든 남자는 다 똑같다. 혹은 세상의 모든 여자는 다 똑같다. 아니,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똑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약간 놀라운 것은, 나도 최근에 마음으로 완벽한 남자라고 믿고 있던 어떤 남자가 오랜만에 만났더니 그 모습이 아니더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걸 책으로 비슷한 상황을 읽게 되었다는 것. 

나의 과거가 고스란히 적혀 있는 책을 만나게 된다면, 과연 그 책은 재미있을까? 다시 말하면, 얼마 안 되는 내 인생은 책으로 적어 낼만큼 재미가 있었던가? 그저 무심히, 그저 보통으로, 그저 평범하게 흘러흘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남은 삶은 익사이팅하고 서프라이징한 인생으로 살아내야 되지 않을까? 지금 이대로라면 나조차도 지겨워서 그 책을 덮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만약 그 책에 내 미래가 예언이 되어 있다면, 나는 과연 그 부분을 펼쳐 볼 용기가 있을까? 내 미래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막상 물어보려니 겁이 나는 이 기분.
이제 곧 스물 아홉이 되고 서른이 되는 이 시점에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을까? (결국 나는 다른 사람 눈에 보이는 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여기서 또한번 느끼고 만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생각이란 건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참, 인상깊은 구절이 하나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칼의 대사인 책보다 체험이 중요하다는 식의 그 말도 꽤 괜찮았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든 구절을 하나 소개한다. "자동차를 살 때는 매력적인 특징을 요모조모 따져보고 포괄적인 보증서까지 받아야 안심이 되지만, 택시를 탈 때는 기본적으로 도로를 달리기에 적당한가만 알면 되는 법이다."(212쪽) - 결혼할 남자와 그저 연애만 할 남자를 구분하는 정도의 뉘앙스인데, 딱 적절한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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