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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테이크아웃하다 - 서른과 어른 사이, 사랑을 기다리며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신윤영 지음 / 웅진윙스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사랑'이라는 말보다 '연애'라는 말이 더 상큼하고 발랄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이제 '사랑'을 원하고 '사랑'에 목숨걸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나이가 들었다는 걸 말하는 걸까? "나, 요즘 연애하고 있어~"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한마디 하고 싶지만 "나, 요즘 사랑하는 사람 있어."라는 말은 아무래도 낯간지러워서 못하겠다. 사실, 지금 그런 상황도 아니고.
<연애를 테이크아웃하다>라는 이쁘장한 책을 발견했을 때 그 상큼발랄한 연애 이야기를 들어나볼까? 얼마나 톡톡 튀고 감성적일거야? 라는 반항심도 있었다. 나는 못 하고 있는 연애를, 남들은 다 하고 있는 연애를 얼마나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풀어놨을까 하는. 그렇게 책을 펼쳐들었는데 이 책 안에는 사랑의 달콤한 얼굴보다는 어린 시절의 사랑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에 대한 담백한 감상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나도 충분히 공감하면서(반항하려던 마음은 잊어버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하며 저녁부터 밤까지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영화 예고편을 보고 잔뜩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갔다가 예고편이 전부였다는 걸 알고 실망했던 일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의 책 소개글에 실려있는 짤막한 몇 개의 글을 보고 이 책은 과연 소개글이 다일까, 아니면 빙산의 일각이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숨겨져 있을까 라며 불안 반 기대 반으로 시작을 했다. 일단 나는 이 책에 합격점을 준다. 소개되어 있지 않은 글들 중에 임팩트가 큰 글들이 상당히 있으며 잔상이 오래 남는 부분도 많았다.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몇 개의 문장들을 소개해 본다. "당신이 사랑하는 나는 많은 부분, 내가 사랑했던 이들의 조각들로 빚어져있다."(118쪽), "만약 누군가의 마지막 인상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상대 몰래 혼자서 마지막을 준비했던 사람일 게다."(51쪽) ".....불과 일주일 전에 털어놓았던 '절절한 진심'이 '되새기고 싶지 않은 헛소리'로 상하는 꼴..."(140쪽) 읽고서 잠시 손과 눈과 머리와 심장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그저 가만히.
서른셋인 저자는 스물일곱 때의 자신과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 한창 이쁘고 사랑에 자유로웠을 그 때를 그리워하지만, 딱 그 나이인 나는 지금이 늦었다고 생각하며 정말 자유로웠던 스물 셋의 나와 사랑을 그리워한다. 서른셋의 저자는 내 나이가 그립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아직 내 감성이 무뎌지거나 메마르지 않은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치만 나는 절절히 연애나 사랑을 바라지도 않고, 외로울 수 있는 하루하루를, 그저 무사안일한 하루를, 스스로 무뎌진 혼자만의 하루를 아무렇지 않게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슬퍼졌다. 더이상 20대 초반처럼 그저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밖에 안 보여서 달려들었던 무모할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없게 되버린 지금, 나는 그 때를 추억하고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런 무모하고 무턱대고 뜨겁기만 했던 사랑말고 조금 똑똑한 사랑을 하고 싶다. 지금 같아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마도 나는 또 바보같이 사랑하겠지? 그리고 사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깨진 사랑을 다시 돌이킬 수 없듯이 흘러간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그냥 지금이 가장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충실하게 보내야겠지.
오랜만에 가슴에 바람이 불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다만, 저자의 화려한 글솜씨를 뽐내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너무 많은 미사여구와 수식어가 붙어 한국어임에도 불구하고 몇번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문장도 종종 있었다. 어릴 적엔 줄줄 흘러나오는 문장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하는 담백한 문장이 더 끌린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글을 쓸 때 담백하게 쓰지는 못한다. 그게 훨씬 많이 어려운 것같다.)
내 지난 사랑은 어디쯤에서 흘러가고 있고, 내 다가올 사랑은 어디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