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도록 8
윤지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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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무슨 책을 읽고서 목차를 무시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목차를 무시하고 읽는 습관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이 도서 목차를 보지 못했더라면 어쩌면 '노라'가 무엇인지 모른채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새삼 목차를 염두에 두고 읽으니 왜 목차를 이런 제목으로 했을지 생각하며 읽게 되더군요. 장르가 만화여도 말이죠. 그 중 한 챕터만을 다루기는 뭐하니 이번엔 목차별로 감상을 써보려고 합니다.


 Track 18 안개로 만들어진 사람

 송시현이 하륜은 같이 지방으로 내려갑니다. 송시현은 과거 자신의 선임이었던 강사를 만나고, 하륜과 귀가합니다. 송시현이 강사와 만났을 때,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하륜과 대화할 때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납니다. 살아오면서 생각대로 사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꼈다는 그녀. 뭐 하나 제대로 정한 대로 되는 법이 없었던 그녀의 과거 때문에 '안개로 만들어진 사람'이라 짓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Track 19 노라의 현관

 석린과 희안의 연애 과정이 드러납니다. 너무 진도가 느리다 싶었는데, 느린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인가 봅니다. 희안이 과거 여자친구의 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석린은 희안과의 사이를 다시 생각해 보고 결국 희안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결혼한 뒤 아무 탈 없이 살았던 노라는 희안과 사귄면서 아무 탈 없던 석린. 이 둘은 아무 탈 없던 그 관계를 되돌아보며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라 여기고 정리합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스스로 정리했다는 의미에서 '노라의 현관'이 아닐까요. 

 이렇게 추측은 해보지만 노라와 석린은 다르지 않나요? 굳이 따지자면 석린에게 고백하기 전의 '석린'이 '노라'와 닮지 않았나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던 그 때의 석린이. 


Track 20 연극이 끝난 후

 '노라'는 연극 <인형의 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입니다. 그러니까 석린도 '희안과의 연극'을 끝낸 것입니다.  그 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말 그대로 '연극이 끝난 후'인 셈입니다. 안 그래도 희안과 헤어져서 왜인지 공허한 상태인 석린은 아버지로부터 유학 간 동생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동생은 재능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여기며 자신의 꿈을 억눌렀던 석린은 자신의 울분을 토로합니다. 공허해진 석린에게 BoA 님의 <그런 너 http://www.youtube.com/watch?v=ac4e7PRl_Ec >를 들으면서 실컷 슬퍼한 뒤 정호승 님의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http://book.naver.com/bookdb/today_book.nhn?bid=2115057 >를 읽으며 재충전 해보기를 추천해 봅니다. 

 

Track 21 산화(散花)에 대한 기록

 뜬금없이 동화가 펼쳐집니다. 공주님, 왕자님이 등장하는 동화. 이 동화의 정체는 퓨어드림 송시열, 김규원에게 곡을 의뢰한 사람의 꿈입니다. 이 꿈을 앨범 하나로 제작하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동화가 너무 평범하기도 하면서 은근 감성적이어서 어떤 앨범으로 나올지 궁금하지만 현실 속 앨범으로 제작될리가 없을 테죠. 제목은 9권에 나올 뒷이야기까지 읽어야 이해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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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6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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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좋아라 하는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 <경우>가 출판됐습니다. 이미 드라마를 통해서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보지 못했던 터라 잔뜩 기대하던 터였던지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경우>와 함께 책 속에서 사건을 이끌어내는 매개체인 동화 <파란 하늘 리본>이 같이 왔습니다. <해피 해피 브레드> 때처럼 동화를 먼저 읽기를 추천합니다. 동화를 통해 받은 느낌이 <경우> 속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읽어가는데 보탬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이야기는 요코와 하루미의 시점이 교차되며 전개됩니다. 주인공들의 생각과 상대방의 마음상태를 추측하는 이야기가 주로 등장합니다. 그렇다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것은 범인을 추리해내는 좌뇌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우뇌입니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화를 내거나 울거나 하듯이 요코와 하루미의 감정에 이입이 된다면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화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라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시절에 만난 요코와 하루미는 경우가 다릅니다. 요코는 단란한 가정 속에서 살았으며, 하루미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런 두 여성이 친해졌습니다. 전혀 안 친해질 것 같던 두 사람이 친해진 이유는 과거 속 자신들의 경우였습니다. 자신들의 피가 연결된 사람을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을 지탱할 곳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코와 하루미는 그 지탱할 장소로 서로를 골랐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지탱하면서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피 대신 물로 관계를 형성한 셈이 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이 둘은 자신들의 뿌리를 궁금해합니다. 하루미는 이런 이유로 기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자신 뿐만 아니라 요코의 뿌리까지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밝혀낸 진실. 그 진실 앞에서 복수하고 싶은 마음과 안식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 갈등이 내린 결론과 그 사건의 전말이 무엇인지는 <경우>를 통해서 직접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코와 하루미의 관계가 "피만큼 진한 물의 관계"였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http://sady_46.blog.me/140179866546 에 올린 글과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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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2 신의 카르테 2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신주혜 옮김 / 작품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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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카르테>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1권보다 조금 더 두껍습니다. 진지함도 더했졌습니다. 1권에서 주인공은 대학 병원에 가지 않고 혼조 병원에 남기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주인공의 우유부단한 결단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 판단은  '질병에 대한 치료를 행하고, 고통이 있으면 없애주고, 불안하면 그 불안함에 대한 호소를 들어주는 것'을 주치의의 역할이라고 믿는 주인공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괜시리 미안해지더군요. 확고한 신념의 주인공을 우유부단한 캐릭터로 만들 뻔했으니까요.


 1권 내내 드러났던 대학 병원에 이동하고 싶어했던 이유 중 '부인과 같이 지낼 시간을 만들고 싶다'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인은 사진가로서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그 탓에 주인공이 병원에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가도 부인이 없는 날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부인이 돌아와도 며칠 휴가 내어서 시간을 보내기도 어렵습니다. 주인공은 의사이며, 환자의 상태는 예측불가하며, 환자가 위급해지면 주인공은 신념에 따라 병원으로 갑니다. 주인공이 의사이기에 부인을 방치하는 날들도 많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미안해서 심각하게 고민했을 거라고 추측해 봅니다. 


 그런 고민을 품던 주인공이 혼조병원에서 계속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러한 주인공의 신념을 부인이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힘들고 지칠 때 곁에 있어준 사람이 있어서 견뎠다는 뻔한 스토리의 일부입니다. 그런데도 뻔하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주인공의 고민이 정말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본업이 의사인 작가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의사로서 겪는 고충이나 고민, 느낌이 잘 드러납니다. 환자를 위해서 상시 대기하며 일해야 하는 의사의 역할과 부인과 자녀를 책임지며 돌봐야 하는 가장의 역할을 양립할 수 없는 고충, 매일 몇 번 씩이나 마주하며 살리려고 노력했던 환자의 죽음 앞에서 손 쓸 도리 없이 가만히 있을 때의 박탈감 등 힘든 현실이 표현됩니다. 사실에 가까운 표현 방식 덕에 '부인의 존재'와 '신념이 통하는 동료'도 현실 속에 많이 존재하듯이 보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배우자가 일에만 집중한다는 이유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사람이 많은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주인공의 신념을 이해하는 부인과 동료는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르고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환상입니다.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그려낸 환상말입니다. 그래서 독자들도 믿고 싶습니다. 어딘가에 이런 의사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마치 꿈인줄 알면서도 눈을 감았던 엘리스의 언니처럼.


*http://sady_46.blog.me/140179588303 에 올린 글과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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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1 신의 카르테 1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작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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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출판된 지 나름 된 책입니다. 요즘에 이 책이 서점에서 누워있을지 어떨지도 확신이 안 섭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사쿠라이 쇼와 미야자키 아오이가 주연으로 영화화 됐습니다. 그 시기에 맞추어서 한국에서 번역본이 출판되었고요. 그 시기에 한창 의학 드라마를 보던 때여서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고 구매했습니다. 다른 책들에 밀려 뒤로 미루다가 요즘에서야 읽었습니다.


 책은 생명을 살리는 소설답게 마음을 울리는 '생명의 가치'를 볼 수 있다는 광고문구가 등장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분명히 그것이 드러납니다. 병이 완치되기까지는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장면이나 구리하라 이치토가 환자를 의료기기로 그저 호흡만 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치료인지 고민하는 장면을 통해서 충분히 느껴집니다. 그런데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독자의 몫이라고 했던 가요. 저는 주인공이 지방에 있는 365일24시간 병원과 조건 좋은 대학병원 사이에 고민하는 부분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지방에 있는 365일 24시간 운영하는 혼조병원에서 일합니다. 의사도 간호사도 턱없이 부족해서 늘 당직에 시달리고, 하루에 진찰하는 환자만 기본 30명이 넘습니다. 그런 와중에 의사도 간호사도 많고 첨단의료기기도 제대로 갖춘 대학병원으로부터 오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평소 약간의 관심은 가지고 있던 터여서 구리하라 이치토는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대학병원으로 일종의 견학까지 갔다 옵니다. 그래도 주인공은 눈 앞에 있는 환자들과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그냥 혼조병원에 남기로 결정합니다. 대학병원에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채.


 여기서 궁금합니다. 이 사람은 우유부단한 걸까요, 소신이 있는 걸까요.


 지금 당장 마주하는 환자를 놓고 떠나는 것이 싫어서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다가 환자들과의 추억에 이끌려 우유부단하게 남은 경우일까요, 아니면 어디에서든 생명을 구하는 것은 똑같다고 생각하며 소신을 가지고 남은 경우일까요.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고민은 하되 네 마음이 들어간 결정을 하라고 하잖아요. 실패하든 성공하든 어떻게 되든 일단 마음이 들어가야 후회하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구리하라 이치토는 안 그래 보여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자기가 이렇게 하겠다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혼조병원에 남는다는 선택을 한 것 같은데, 그게 꽤 자기 마음에 충실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또 마지막 페이지에 글을 보면 대학병원에 미련이 남아 보입니다. 구리하라는 과연 어느쪽일까요?

 

 *http://sady_46.blog.me/140179463899 에 올린 글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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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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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1월18일부터 일본 TBS에서 드라마로 방영되는 도서입니다. 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는데 드라마화 소식을 접하고 한 번 더 읽었습니다. 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어서 꽤나 흥미롭더군요. 전에 읽었을 때는 서로를 향한 분노가 강하게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자세가 보였다고 할까요. 제목이 왜 야행관람차인지도 어렴풋하게 느껴졌어요.

 

 등장인물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전체의 평온을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굳이 드러내지 않습니다. 나약함 혹은 배려심이겠죠. 그렇게 감춘 마음이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 대한 반발심으로 이어집니다. 반발심이 심해지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면서 그저 '왜 자신의 상태를 몰라주는가'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상호 간의 이해'가 '자기 불안'으로 바뀐 것이죠.

 

 '자기 불안'은 오가던 대화를 멈추게 하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게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어지면서 충동적으로 갖은 소동을 일으킵니다. 작은 소동들이 일어나면 타인 손에 의해서 마무리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다른 가족(어머니,아버지,아내,남편,아들,딸)이나 이웃의 마음을 짐작해보거나 추리하면서 이해를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의 마음도 돌이켜 보며 대화도 주고 받습니다. 결국 다시 '상호 간의 이해'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인생을 다시 시작합니다.

 

 제목이 '야행관람차'인 이유도 이런 뜻에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불안'까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저 삐그덕거리는 느낌만 존재할 뿐. 그러나 맨 위에 올라갔을 때, 그 존재를 외면한 결과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치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재시작하기 위해서요. 발버둥쳤을 때의 그 느낌을 누가 잊을 수 있을까요?

 

 그 발버둥을 치기 싫어서라도 상대방을 정도껏 이해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올바르지만, 지나치면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착각으로 인해 상대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즉 '이해'가 '무시'로 바뀝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이해는 정도껏 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http://sady_46.blog.me/140177910869 에 올린 글과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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