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 찾기/열네 살이 어때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 조선 시대의 놀라운 기록 문화 책과함께어린이 찾기 시리즈
신병주.이혜숙 지음 / 책과함께어린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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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문화, 문화재, 역사에 관심은 많으나 그 관심만큼 많이 알고 있지 않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때문에 이런 책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보물이라니 이번 기회에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만큼 책 안에는 놀라운 사실들이 있었다.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마라
규장각은 숙종 때 처음 만들어졌지만 그때는 역대 왕들이 쓴 글이나 글씨를
모아두는 용도로 사용됐는데, 정조가 왕위를 계승한 후 왕권 강화를 위해
규장각을 다시 지어 인재들을 모은 후 왕들의 글이나 책들을 정리하고 
연구하는 곳으로 사용했다 한다. 이때 규장각에서 일하는 관리들에게
분명히 밝혀 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매우 흥미롭다.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말, 일할 때는 공적인 일이 아니면 마루로 내려가지 마라,
규장각에서 공부하는 학자가 아니면 아무리 높은 관리라 하더라도 규장각에
올라갈 수 없다, 일할 때는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해라.” -page.10
학자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렇게 조선의 입지를 굳건하게 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법한 규장각은
정조가 죽은 후 예전처럼 자료를 보관하는 정도로 빛을 잃었다니 안타깝다.
조선 후기 일본이 규장각을 없애버렸는데, 일본이 물러간 후 다시 빛을 보며
현재 규장각이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재탄생했다니 무척 다행한 일이다.
이곳에 26만 가지나 되는 옛 책, 문서, 지도, 정부 기록물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홈페이지에는 약 30만여 점이라고 돼 있는데 
그동안 자료가 늘어난 걸까? :) 하여튼 규장각을 들어보기만 했지 
단 한 번도 직접 발걸음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사실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언제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우선
어떤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는지 책으로 만나보자.

조선 시대의 놀라운 기록문화
기록문화가 매우 발달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당시의 역사가
세밀하게 자료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왕이 쓴 글씨나 그림은 물론이고 왕실의 행사가 그림에 세세하게
표현되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재밌는 건 원로가 된 각료들을 위해 나라에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김유신 장군이 나이가 들어 벼슬에서 물러났을 때 
의자와 지팡이를 선물로 받은 것도 그림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애쓴 각료들을 극진히 대접하던 조선왕실의 마음이 잘 드러났다.

몇 가지 주목을 끄는 자료가 있었는데 하나는 청계천이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물을 다스리기 위해 태종 때 팠던 청계천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자 영조 때 청계천 공사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랏일을 위해 백성들에게 일을 시킬 때엔 품삯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영조는 일한 백성들에게 일일이 품삯을 지불했다는 것도 놀랍다.
내가 백성이었어도 정말 신나서 더 열심히 일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자리를 만들어 백성도 돕고 청계천도 살렸으니 영조는 센스 있는 왕!
공사 책임자인 홍봉한에게 청계천이 몇 년이나 버티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100년은 갈 거라고 했다는데 지금도 서울에서 청계천이 흐르고 있으니
공사는 대성공이다. 

그리고 아직도 신기하고 놀라운 조선시대의 첫 세계지도가 있다.
현대에 비하면 기동력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그 시대에 대체
전국지도는 물론 세계지도까지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 정말 궁금하다.
그 시대에 나라 밖으로 나가서 여행하며 기록을 했다는 것도.
단순히 지리를 알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지도를 통해 나라를 지키는 군사용
지도까지 만들었으니 옛날이라고 절대 무시하지 못할 일이다.
아니 더 대단하다. 시대의 한계를 극복했으니.

마지막으로 박수치며 즐겁게 봤던 부분이 있는데 세상에!
조선시대에도 외국어 교재가 있었다는 것이다. 와하하하.
<노걸대 老乞大> 상대를 높여 부르는 노(우리말로 치면 ‘씨’ 영어로는 미스터), 
걸대는 몽골 사람이 중국 사람을 가리키는 말. 한마디로 미스터 중국인정도 된단다.
상, 하 두 권인 노걸대 책속에는 요즘 배우는 외국어 교재처럼 예문이 실려 있다.
노걸대는 여행하면서 쓰는 중국어인 반면 비슷한 박통사(박씨 성을 가진 
통역사)라는 책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한다.
또 일본어책도 있으니 조선시대가 외국과의 교류를 중요시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나라가 어려움을 겪으며 빼앗겼던 우리의 소중한 자료들이 반환된다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반가운 일이지만 반환이 아닌 인도 혹은 
대여를 해준다며 반환을 거부하는 프랑스 등은 각성해야 할 것이다.
입장을 바꿔 자신들의 문화재를 누군가 강제로 가져가 돌려주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반환을 위해 애쓸 것이 아닌가. 
속히 우리의 소중한 보물들이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를 위해선 우리가 더욱 우리의 것을 잘 알고 아껴야한다.
나부터 우리의 문화재에 대해 더 많은 걸 알아보고 공부해야겠다. 

얇은 책 한 권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걸 배우고 느꼈는지 모른다.
그리고 꼭 직접 눈으로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올 겨울엔 아이들과 규장각으로 나들이를 가볼까.
빛나는 조선시대의 기록문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뜻 깊은 계절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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