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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랑
박정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에 작성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이 책은 첫사랑이 끝나고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주인공 이지환이 두 번째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역시 쉽지 않은 여정에서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보통 첫사랑의 실패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며 이어지는 두 번째 사랑은 더 진지하게, 그리고 더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두 번째 사랑은 상대에 대한 이해와 나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지환은 졸업식에서 동기들이 대학 졸업장을 받는 것과 다르게 대학 수료증을 받게 된다.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였지만, 지루한 학교생활과 정비일을 배우고 정비공으로 일한 생활고로 인한 휴학 생활, 그리고 집시법 위반으로 교도소에 다녀온 덕분이다.
이런 상황의 이지환이 첫사랑 지영을 만난 건 어느 겨울이 끝날 때쯤 대학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다. 더 이상 춤추기도 힘들 만큼 술에 절어 있었지만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지환이에게 다가온 것이다. 지환은 무언가 통하는 느낌, 순간 발달한 육감으로 그녀와 함께 따로 나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책속에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쏟아지고 있을 때
그녀 대신 메모 한 장만이 남아 있었다.
지난밤에 알몸으로 잠든 것 같은데,
나는 옷을 모두 입고 반듯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생각날 떄 연락 주세요. 012-000-0000. -지영
그 후 유일한 소득원인 독서실 알바도 해고당하면서 지환은 지영이의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이렇게 지환에게 잊지 못할 첫사랑의 스토리를 쓰게 된다. 지환은 지영이 덕분에 자신이 하고 싶던 글쓰기를 다시 하게 되었고, 이 둘의 사랑은 영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영의 전남친 박필주와의 만남으로 곧 헤어질 것이라 직감한 지환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고 그녀 곁에 눕고만 싶어 지영과 처음 하룻밤을 보낸 여관을 다시 찾게 된다. 그녀는 처음 본 그날 처럼 지환의 자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여관방을 떠났다.
(책속에서)
일요일 아침, 나의 곁에 잠들어 있을 거라 믿은 그녀는 나의 곁에 없었다.
(중략) 분노가 밀려들었고 일단 집으로 향했다.
집은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고 순간 희망이 들었다.
하지만 말끔한 방 안에 놓여 있는 것은 나의 옷 보따리 하나였고
그 위에 종이가 한장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펼쳤다. 입영통지서였다.
지환은 의정부에 있는 보충대대로 향했다. 잠시나마 지환에게 진실한 사랑을 가르쳐 준 지영이를 생각했다. 지환이는 그녀가 택한 이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버린 이별 앞에 혹독하게 당하고만 있었던 그녀의 눈물을 떠올렸으며, 이렇게 지환이의 첫사랑은 끝이 났다.
군을 제대하고 지영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녀가 다니던 공장에 찾아갔으나, 공장 직원을 통해 쪽지 하나를 전달 받았다. '뭔가 떳떳한 글 한 편이 준비되었을 때, 우리 그때 만나도록 해요. 오늘로부터 1년 후 오후 여섯 시에 안면도 바람 아래 해변에서 만나요.'
그렇게 1년이 지나 안면도로 향한 지환이에게 쪽지를 전달해주었던 공장 직원이 기다렸고 그 쪽지를 받기 1년 전에 이미 암으로 세상을 떠났음을 전하며 그녀와 동거할 때 썼던 수많은 습작 원고들이 담긴 봉투를 건냈다. 이후로 지환이는 다시 누군가와 사랑을 할 수 없었다.
지환이는 대기업에 베어링을 납품하는 작은 기업체를 이끌며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정비 센터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중에 한 여자가 다가와 차를 살펴봐 줄 것을 부탁했고, 직원도 아니었지만 흔쾌히 도움을 준 지환은 이를 계기로 윤정을 만나게 되었다. 지영이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사랑을 하기 힘들었던 지환에게 윤정은 다시 찾아온 사랑이었던 것이다.
지환은 윤정을 마지막 사랑인 것 처럼 사랑했지만, 윤정의 부모는 딸과 스무살 이상 차이가 나는 지환을 강하게 반대했다. 지환은 윤정을 사랑하면서도 윤정의 부모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곁에 두고 싶으면서도 언제든지 윤정을 보내줄 준비를 한 것이다. 결국 윤정은 부모가 정해놓은 약혼자와 결혼이 결정되었고, 결혼식 전 마지막 날에 지환은 두 번째 사랑을 떠나보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윤정을 만나게 된다.
(책속에서)
"당신은 나에게 유일한 남자였어요.
나는 절대로 당신과 헤어지지 않겠어요. 죽어서도.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건 당신의 조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중략) 그녀의 말이 멈추었다. 내 뺨 아래 이미 그녀의 의식이 없었다.
나의 의식도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마취가 오듯이 벽의 무늬가 스탠드 불빛 아래 점점 희미해져 갔다.
끝내 천장의 조명이 빙빙 돌다가 뿌옇게 사라졌다.
이 책을 통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 사랑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무겁지도 결코 가볍지도 않은 한편의 소설이 저자 박정인의 다음 책을 기대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