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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을 포기한 사람들 - AI 시대,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
메리 미즐리 지음, 여인옥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10월
평점 :

『판단을 포기한 사람들』
언제부터인가 세상이 참 묘해졌어요.
누군가 ‘이건 옳고, 저건 틀렸어’라고 확실하게 목소리를 내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싸늘해요.
오히려 ‘ 각자의 취향이지요’, ‘세상이 원래 복잡하잖아요’라며 슬그머니 한 발짝 물러서는 사람이 훨씬 사려 깊고 지적인 사람으로 대접받는 시대죠.
요즘엔 아예 깊은 고민 대신 복잡한 질문을 AI에게 통째로 떠넘기고, 그 대답 뒤에 숨어버리는 일도 너무나 흔해졌고요.
하지만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 메리 미즐리는 그의 저서 『판단을 포기한 사람들』을 통해 이 시대의 쿨한 태도에 ‘판단을 내려놓는 그 태도야말로, 실은 가장 강력한 또 하나의 판단이 아닌가?’ 하고 정면으로 묵직한 돌직구를 날려요.
30여 년 전에 쓰인 책이라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을 이토록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게 소름 돋을 정도로 놀라웠던 책이었어요.
이 책은 어느 토론장에서 나온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늘 선을 넘는 일 아닌가요?’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요.
우리는 흔히 타인의 문화, 취향, 또는 복잡한 사회적 이슈를 마주할 때 갈등을 피하기 위해 도덕적 판단을 유예하곤 하죠.
한 걸음 물러서는 게 성숙한 관용이자 겸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태도가 과연 진정한 의미의 관용인지 매섭게 파고들어요.
사람들은 판단을 멈추면 평화로워질 거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불의나 부조리 앞에서 침묵하고 방관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죠.
즉, ‘판단하지 않겠다’는 태도 자체 이미 현상을 그대로 용인하겠다는 또 하나의 강력한 도덕적 선언이라는 거예요.
책은 판단을 회피하고 ‘중립’이라는 이름 뒤에 숨는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해부하며, 우리가 왜 다시 옳고 그름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차근차근 짚어줘요.
보통은 요즘처럼 AI가 척척 정답을 떠먹여 주고, 복잡한 윤리적·철학적 질문까지 순식간에 정리해 주는 세상에서는 둥글게 사는 게 장땡이고, 분란을 만들지 않는 게 현명한 어른의 태도라고 합리화하죠.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비판적 사고를 거쳐 책임져야 하는 ‘판단’의 영역을, 이제는 기계에게 완전 외주 줘버린 채 그 뒤에 비겁하게 숨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내린 결정이 틀릴까 봐, 또는 누군가에게 ‘판단질한다’는 소리를 들까 봐 아예 생각하기를 멈춰버렸던 것이죠.
‘판단을 포기하는 것이 과연 안전하고 착한 일인가?’
책을 읽으며 가장 깊게 가슴에 박혔던 문장이에요.
우리는 오해받을까 봐, 비난받을까 봐 ‘판단하는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지만, 우리가 도망친 그 빈자리를 고스란히 채우는 것은 결국 무관심과 방관이에요.
역사의 수많은 부조리와 거대한 폭력 앞에서도 가장 무서웠던 것은 적극적인 악(惡) 그 자체뿐만 아니라, ‘내가 관여할 바 아니다’, ‘내 알 바 아니다’라며 판단을 포기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침묵과 방관이었으니까요.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완벽한 정답을 내리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다만 비록 내 판단이 조금 서툴고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끊임없이 세상의 부조리에 의문을 품고 내 입장을 가져보려 애쓰는 것, 그 치열한 고민의 과정 자체가 인간으로서 얼마나 중요한 책임이자 존엄인지를 깨닫게 해준답니다.
‘모른다’는 말 뒤에 숨어 스스로의 생각을 지워가던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아주 아프면서도 시원한 각성제 같은 독서였어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정답을 찾기 힘들수록 우리는 쉽고 편한 길(판단 유예나 AI의 대답)을 찾게 되죠.
하지만 저자는 조금 흔들리더라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무엇이 옳은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증거라고 말해요.
‘판단하는 삶’의 용기를 잃어버린 분들께, 이 책이 작지만 단단한 나침반이 되어줄 거예요.
😍 르온서평단 @gbb_mom 모집을 통해 헤이북스 @heybookscg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