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민 교수는 대한민국 심리학자 중에 유명하기로 손꼽힌다. 각종 매체를 종횡무진 출연할뿐만 아니라 팟캐스트 <황상민의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는데, 벌써 시즌 7을 맞았다.
<황상민의 성격상담소>는 황상민 교수가 10년 넘게 연구한 '황상민표 성격 유형 검사'(WPI, Whang's Personality Inventory)를 소개하고, 각 유형에 부합하는 상담 사례를 수록했다. WPI의 자기평가는 총 5가지로, 나는 어떤 성격 유형일까를 진단한다. 리얼리스트, 로맨티스트, 휴머니스트, 아이디얼리스트, 에이전트로 나뉜다.
또한 타인평가가 있는데, '주변 사람이 생각하는 나'를 체크하는 것으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결과를 알려준다. 릴레이션(relation), 트러스트(trust), 매뉴얼(manual), 셀프(self), 컬처(culture) 등 이 또한 5가지로 분류한다. 자기평가와 타인평가를 종합하여 WPI 프로파일을 도출하고 결과 내용을 해석한다. WPI는 기존 외국 심리 검사를 답습하지 않고 황상민 교수가 한국인의 특성을 10여 년간 연구하여 만들었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적합한 성격 검사라고 할 수 있다.
화자는 W-tbot(WPI translating robot)이다. 설록 황(황상민 교수의 별명 - 온화한 미소 속에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고 하여 그렇게 지었단다.)의 상담을 번역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라는데, 황상민 교수의 입담을 십분 활용하면서 때로는 사례자에 대한 쓴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로봇을 화자로 내세운 이유 같다.
성격상담소 1권 <무난하게 사는 게 답이야>는 5가지 자기 평가 중 '리얼리스트의 진정한 자기 찾기'를 조명한다. 리얼리스트는 타인의 인정을 통해 존재감을 획득하고, 소속감에서 안정을 느낀다. 예컨대, 전형적인 공무원이나 공사, 혹은 샐러리맨의 표상이랄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옛 성현들은 자신을 아는 것이 큰 지혜라고 설파했다. 물론 그분들 말씀엔 더 큰 함의가 있지만, 세상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끼며 내가 잘 살고 있는지 한탄하는 이가 수두룩하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자기 성격과 진정 원하는 목표를 아는 것이 주춧돌이다. <황상민의 성격상담소>는 자아 찾기를 위해 나선 이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황상민의 성격상담소 2편은 <좀 예민해도 괜찮아>로, '로맨티시스트'에 촛점을 맞췄다. 제목처럼 로맨티시스트는 예민하고 불안정하고 걱정이 많다. 예술적 감성으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우울함이나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기대로 몰아넣기도 한다.
타인평가(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트러스트(trust)다. 타인에게 믿음직스럽게 보이고 싶어하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한편으론 리얼리스트와 달리 대중 앞에서 긴장하고, 낯선 환경을 부담스럽게 여긴다.
로맨티시스트의 약점은 감성적이라 내면의 감정을 잘 캐치하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우물쭈물한다는 데 있다. 내면에 대한 자제력이 아니라 일부러 억제하며 사는 것이다. 속으로 수십, 수백 번 망설이지만 그렇다고 저질러버리면 결과는 썩 좋지 않을 때가 많다.
사례자들을 보면, 명색이 로맨티시스트임에도 감정 표현에 서툴고 연애에 어려움을 겪는다. 또 한 사례자는 본인을 아이디얼리스트로 여기고 역사, 철학 교양을 쌓지만 실천하지 못해 자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누구는 아이디얼리스트가 되고 싶고, 누구는 에이전트가 꿈꾼다. 내 성격과 이상향이 다르다. 실제로 자기평가는 로맨티시스트지만 타인평가(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에이전트 성향의 컬쳐로 나오기도 한다. 물론 자기평가 항목에선 에이전트 유형이 바닥이지만.
예컨대, 앞서 사례자처럼 자기평가가 로맨티시스트인데, 아이디얼리스트로 착각하고 역사, 철학 교양을 쌓는 공부는 단순히 나는 이렇게 보이고 싶다는 일종의 의지표현에 가깝다. 교양을 쌓는 그 자체는 권장할 일이지만 지금의 불만족을 해결해주는 기제는 아니다. 로맨티시스트의 장점은 오히려 예민한 감정과 공감에 있다. 지금 입는 옷이 불편하다면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남에게 보이고 싶은 장신구보다 나에게 어울리는 치장이 더 멋있는 법이다.
황상민의 성격상담소 3권 <오지랖 넓은 게 어때서>는 '휴머니스트의 멋진 자기 찾기' 여정이다. 그런데 휴머니스트와 오지랖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휴머니스트는 사교적이라 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남들에게 번듯하게 보이고 싶고, 자기 감정을 잘 표현해서 인간관계의 달인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오지랖 넓은 사람이다.
반면에 깊고 복잡한 관계엔 서툴다. 남의 감정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일 자체보다 인간관계에 포커스를 맞추는 타입이다. 사람은 좋지만 덜렁댄다던지, 일보다 사람에게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한 사례자는 결혼 20년차 주부다. 아이디얼리스트 고3 딸과 불화를 겪고 있다. 10년 전 난소함을 겪고 가족에게 헌신하고자 마음 먹었지만, 딸은 웹소설이나 판타지 세계에 빠져 성적이 떨어진다. 잔소리를 할수록 관계는 더 악화돼 고민이다.
사례자는 휴머니스트다. 타인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외향적인 스타일인데, 가정에 충실한다는 명분 아래 에너지를 안으로만 쏟고 있으니 제 뜻대로 되지 않는 딸이 더욱 못마땅하다. 게다가 딸은 하필이면 리얼리스트가 아닌 아이디얼리스트다. 리얼리스트라면 현실에 순응하겠지만 아이디얼리스트는 다르다. 받은 만큼 몇 배로 되갚아주고 자기 관심사에 천착한다. 그러니 엄마에게 딸은 문제의 근원이다. 다 딸 탓이다.
차라리 휴머니스트 엄마가 가정에 집착하지 말고 대인관계 등 자기 삶의 영역을 갖고 있었다면, 아이디얼리스트 딸이 가진 관심사를 인정해주고 칭찬과 격려로 이끌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누구나 잘잘못을 따지고 손가락질하긴 쉽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각자 성향을 이해하고 서로 인정하는 길에 있다. 그래서 '멋진 자기 찾기'가 필요하다.
황상민의 성격상담소 4권 <독특한 게 어떄서> 표지를 보고, 인기 미드 <빅뱅 이론>이 떠올랐다. 칼텍 출신의 네 과학자, 혹은 공학자의 일상을 다룬 시트콤인데, 남다른 등장 인물 중에서도 더 유별난 "셸든"이 아이디얼리스트의 표본이 아닐까 싶어서다.
셸든은 사고방식이 독특하다. 천재형이니 이상주의적이고 창의성 높은 거야 더할 나위 없고, 에고이스트에 고집이 강해서 레너드가 오기 전까지 룸메이트들이 다 셸든을 욕하며 떠났다. 자아도취 빼면 시체다. 그러니 조직 생활이나 관리 차원은 잼병이다. 남의 욕구를 맞추는 일이나 반복적인 작업은 질색이다. 이른바 4차원의 전형이다.
주변에도 4차원으로 불리는 인간들이 꽤 있다. 그들은 자기 세상에 빠져 살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면을 캐치해 낸다. 시쳇말로 독고다이지만 창의력이나 업무 능력은 인정할 만하다. 이렇게 아이디얼리스트로서 개성을 인정받고 살면 오죽 좋으련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치 시지포스가 산꼭대기에 바위 올리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삶이 무기력하고 거기서 의미를 찾지 못해 고민하거나, 조직 생활에 적응이 어렵고 특히 상사와의 트러블로 고생하는 아이디얼리스트가 많다. 그들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두 번째 사춘기를 맞기도 한다.
아이디얼리스트에겐 자기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 창의력을 발휘하고 흡수할 수 있는 예술같은 취미, 그리고 타인평가 중에 셀프(self) 항목이 중요하다. 삶의 의미와 자존감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덕목이지만, 4차원 인종이 살아가는 데 더없는 필수품인 까닭이다.
일상에 회의감을 느끼고 무기력하다고 다 아이디얼리스트는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창의적이고 이상적인 성향으로 분류되길 원한다. 은연중에 착각한다. 다만 그런 성향이 없다는 게 아니라, 아이디얼리스트로 규정짓기엔 다른 성향이 더 강한 경우가 다반사다. 황상민표 성격 유형 검사(WPI)를 하면 자신이 아이디얼리스트인 줄 알았다는 사례자들이 꽤 있다. 내가 입고 싶은 옷과 내 스타일에 맞는 옷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내 체격과 스타일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황상민의 성격상담소 5권 <일 열심히 하는 게 어때서>는 '에이전트의 뿌듯한 자기 찾기'를 다뤘다. 에이전트는 일을 통한 성취에서 존재감을 찾는다. 리얼리스트, 휴머니스트가 인관관계 중심이었다면 에이전트는 업무가 우선이다. 과업와 결과 중심으로 사고하고, 자기중심적인 업무와 평가관을 가지고 있어서 전문직 스타일에 어울린다.
예컨대,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멋진 정장을 빼입고 워커홀릭처럼 일하고 퇴근한다. 집 장식장엔 취미 생활 용품이 컬랙션처럼 진열되어 있다. 일이든 취미든 자기가 설정한 기준에 부합하고 그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강박증이 엿보인다. 만약 드라마라면 어느날 로맨티시스트나 아이디얼리스트 여주인공을 만나 자기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자기 세계 외에 진정한 사랑을 알아간다는 도식적인 스토리텔링이 이어질 것이다.
이들의 현실 문제는 무엇일까. 자기 적성에 맞고 역량을 십분 발휘하는 직장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전전하거나, 직장 동료가 무능력한 탓에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혹은 일과 양육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스스로 원하는 성과가 나지 않아서 둘 다 낙제점이란 느낌이 들 때다. 자기 기준에 따라 일에 몰두하고 역량을 십분 발휘해서 성과를 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닐 때 스트레스와 회의감이 든다.
에이전트에게 필요한 것은 목적의식과 그것에 부합하는 노력이 가능한 직장과 취미, 개인적인 업무 공간이다. 그렇지만 과연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부류가 몇이나 될까. 이리저리 치이지 않는 세상사를 위해 지금도 사람들은 얼마나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그래서 나를 알고 내 성향에 맞는 세상살이 지혜가 필요하다.
황상민표 성격 유형 검사(WPI)는 "넌 리얼리스트야. 이런 삶이 옳아!" 식의 독단적인 검사가 아니다. 자기 평가가 리얼리스트지만 휴머니스트 성향을 높게 가질 수 있다. 리얼리스트라고 하여 타인 평가가 꼭 릴레이션(관계)으로 도식화되지 않는다. 다양한 자기 평가와 타인 평가가 나오고, 자기 찾기에 반영한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이면을 발견할 수도, 타인을 섣불리 평가했던 부분을 반성할 수도 있다. 일단 후회없는 삶을 살려면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황상민의 성격상담소>를 읽고 팟캐스트 <황상민의 심리상담소>와 웹사이트 "황상민의 심리연구소"에 있는 WPI 검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책에서 다룬 사례를 바탕으로 내 성향이 대충 짐작은 가지만, 공식적으로 WPI 검사를 통해 진정 나를 알아가는 여정을 떠나보고 싶다. W-Tbot은 말한다.
"WPI는 '나란 인간'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자기 성격 시스템과 마음의 작동 원리를 정확하게 알고 제대로 대응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성격은 저마다 고유한 성질과 품성이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심리 패턴이기 때문이죠.
WPI 프로파일 해설서에 나온 정답지를 보고 답만 달달 외울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아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문제와 직면해야 합니다. 그게 먼저예요.
자기 알기.
말은 쉬워 보이지만, 어려워요. 인정해요. 그런데 쉽다면 셜록 황과 제가 왜 있겠어요. 셜록 황이 저 개발하느라 시간, 돈, 에너지 엄청 썻어요. 세상에 공짜는 없답니다."(p.19~20)
팟캐스트 <황상민의 심리상담소>를 검색하거나, WTI에 관심이 있다면 아래 주소로 접속하면 된다.
https://check.wisdomcenter.co.kr/home/home.htm
WTI 검사는 공짜는 아니고 11,000원을 지불하는 유료 검사다. 사례자들을 보면 검사 결과를 받아보고 평소 본인이 생각했던 성향과 달라서 놀라는 경우가 많다. 검사가 삶의 정답지는 아니겠지만 심리학, 심리검사를 좋아하거나 본인도 몰랐던 성격을 확인하고 싶은 독자에겐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