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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기로 했다 - 남의 말에 늘 휘둘리고 상처 받는 당신을 위한 감정정리법
노은혜 지음 / 청림출판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더 이상 눈치보지 않기로 했다>는 언어치료사, 부모교육 전문가로 활동 중인 노은혜 대표가 쓴 심리 에세이다. 제목처럼 내 감정과 자존감을 존중하며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가난하고 폭력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학창시절 트라우마로 여러 행동장애가 있었고, 성인이 돼서 알콜 중독에 빠졌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러던 중 언어치료,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고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아픈 경험을 승화시켜 나갔다. 에피소드를 읽으며 공감이 되었다. 저자가 참고했던 언어치료, 심리 치료법이 자연스레 마음에 와 닿았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저지르는 문제 행동은 자신이 모르는 상처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성장기, 혹은 성인이 되고 겪은 트라우마는 무의식에 남아 사람의 생각, 감정,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갈림길에 선다. 무의식의 상처가 나를 지배하게 둘 것이냐, 그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냐. 저자는 후자를 선택했고, 그 길을 독자와 공유하기 위해 책을 썼다.
무의식을 바꾸기 위해선 익숙한 삶의 방식과 결별해야 한다. 하루 아침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스스로 자존감을 챙기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끊임없이 주입해야 한다. 여기서 끝나면 일반적인 자기계발서겠지만, 이 책은 엄연히 심리 에세이다.
아들러에 따르면,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더 형편없다고 느끼게 된다"(p.40)고 했다. 인간은 남에게 존중과 격려를 받으면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는데, 이를 '로젠탈 효과'라고 한다.(p.42) 하지만 세상은 내 감정과 자존감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영화 <굿 윌 헌팅>에 정신과 박사로 나오는 로빈 윌리엄스같은 은인을 삶에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남에게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스스로 자존감이라는 단단한 흙기둥을 세우고 굳히는 데 노력해야 한다.
사람은 처음 맺은 인간관계가 애착유형으로 굳어진다. 애착 유형은 불안정 회피, 불안정 양가, 불안정 혼란, 올바른 양육 방식에서 나오는 안정 애착 등 형태가 다양하다. 태초의 관계는 부모와의 관계다. 나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저자 또한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고생을 해야 했다. 완벽한 부모는 없지만, 웬만한 부모는 적어도 자식이 심리적 장애를 갖지 않고 나중에 부모를 인간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아 자녀가 불안정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여 성인이 돼서도 고통받고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으로 자라는 사례도 많다. 그렇다고 마냥 부모탓을 하며 삶을 허비하기엔 인생이 너무나 아깝다.
저자는 치유법을 제시한다. 언어, 심리 치료법은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 뇌에 있는 뇌간은 무의식을 담당하는데,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나 자책, 비난의 언어들은 자신도 모르게 뇌간에 깊이 각인된다. 그런데 뇌구조는 주어를 인식하지 못한다. 내가 남에게 욕을 하면, 그 말은 남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욕 자체로 뇌간에 각인된다. 그동안 부정적인 생각, 언어 습관, 행동으로 인해 스스로 삶을 망치고 있었다면, 언어 치료와 심리적 자기 암시가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마냥 좋은 말, 예스맨이 되어 남에게 휘둘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 자존감과 감정을 챙기는 삶이 중요하다. 바로 '행복한 개인주의자'다. 예스맨, 착한 아이 콤플렉스 또한 심리적 상처에서 기인된 문제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대체로 자존감이 낮거나, 부모가 자식의 감정을 무시하고 강요하는 환경에서 자란 경우다. 책은 자존감을 높이는 다양한 언어 암시법을 가르쳐 주고, 실제로 치료에 사용되는 방법들을 챕터 뒷장에 넣어놓았다.
특히 거절하지 못하고 남에게 휘둘리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공격성과 단호함은 다르다고. 부당하고 어려운 부탁과 강요를 들어주다보면 감정이 상한다. 이럴 경우 거절을 해야 하는데, 적당한 거절 방식을 몰라서 힘들어 한다. 꼭 화를 내거나, 어물쩡 변명하며 쩔쩔매지 않아도 된다. 공격과 단호함은 다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로 결론부터 말하기가 있다.
상황
ㅇㅇ 씨, 주말에 나와서 여기 청소도 좀 하고 팀장님 서류파일 정리도 좀 해주세요.
여기서 공격적 거절법, 변명의 거절법, 결론부터 이야기하는 거절법이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는 법을 대입하면,
죄송합니다만, 어렵겠습니다. 주말에 조금 쉬어야 평일에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팀장님께서 처리해야 할 서류파일이 많다면 평일에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p.208)
공격적 거절법은 불화를 일으키고, 변명의 거절법은 상대가 꼬치꼬치 캐 묻거나 꼬투리를 잡는 식으로 괴롭히기 일쑤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상대방의 페이스에 휘둘린다. 반면에 결론부터 이야기하기는 단호하지만 공격적이지 않다. 불화를 일으키지도, 상대방에게 끌려가지도 않으면서 감정을 지킬 수 있다. 처음엔 어렵겠지만 만날 남에게 휘둘리고 거절에 서툰 사람은 지금부터 연습해 나가면 좋다.
삶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상처받고, 남에게 휘둘리며 감정을 소모한다. 실타래가 한 줄 한 줄 꼬이기 시작하고 급기야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를 만큼 엉켜버린다. 그리고 고착화된다. 저자의 말처럼, 반복되는 문제 행동을 관찰하여 원인을 찾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자기 감정을 바라보며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 텍사스대학의 한 연구는 어떤 생각을 일부러 억압할수록 더욱 뇌리에 맴돈다는 실험 결과를 밝혔다. 실제로 피실험자들은 백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지만, 백곰을 떠올리지 않으려할수록 백곰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고 한다. 상처도 마찬가지다. 억누르고 숨길수록 곪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드러내고 치유의 길을 선택해야 할 때다.
그리고 어렵겠지만 지난 날 힘들게 했던 것들에 대한 '용서'를 배우자. 강요된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아니다. 용서도 감정을 추스리는 과정이고 훈습이 필요한 일련의 행위다. 심리학에선 하나의 연구 대상이다. 용서는 그만큼 어렵다. 예컨대, 프레드 러스킨 박사는 정의한다.
"용서란, 이미 일어난 나쁜 일이 비록 나의 과거를 망가뜨렸을지언정 오늘과 미래는 결코 파괴할 수 없다는 힘찬 자기선언이다."(p.179)
완전히 다 낫는 상처는 없다. 다만 상처를 더 올바른 방향으로 다루고, 성장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역피해의식이다. 트라우마를 통해 삶을 더욱 이해하고 자신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노력이다. 저자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길을 택했고, 그 경험을 언어치료사와 부모교육전문가가 되어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활용한다. 아픔을 승화시켰다. <나는 더 이상 눈치보지 않기로 했다>가 특별한 이유는 책에 나온 언어, 심리치료법이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겪은 역정과 치유 과정 속에서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로 삶을 되돌아보며 치유법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따뜻한 심리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