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임종학 강의
모니카 렌츠 지음, 전진만 옮김 / 책세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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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가장 큰 실존적 문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숙명이지만, 죽음은 개별적이고 그 이후의 세계는 알 길이 없다. 실제로 인간의 많은 불안과 행동의 동기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한다.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는 환자의 죽음을 다루는 임종학 강의다. 임종 과정은 어떤 단계를 거치고, 그 과정에서 환자가 겪는 원초적 불안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리고 가족과 의료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논의한다.



저자 모니카 렌츠는 정신병리학, 신학, 철학 박사로 다소 생소한 정신종양학 의사로 재직중이다. 정신종양학이란 암을 의료적 차원을 넘어 심리적, 사회적, 행태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로, 암환자의 심리적 지지치료, 호스피스 서비스를 포괄한다. 책은 저자가 종합병원 병동에서 17년간 근무하며 1,000여 명에 달하는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고 경험한 연구 결과이다.



일반적으로 죽음의 과정을 설명할 때 퀴블러 로스의 5단계를 인용한다. 죽음을 앞둔 인간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관점은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일은 다루지 않고, 당사자가 죽음을 수용하는 내적인 여정만을 보여주는 한계가 있다. 저자는 임종 과정을 특이하게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넘나드는 상태로 이해한다. 크게 세 단계인, 통과 이전(의식과 무의식의 내적 경계 전), 통과 순간(이 경계를 넘는 순간), 통과 이후(경계를 통과한 이후)로 나눈다. 예컨대, 시한부 환자가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소생하는 과정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쉽다.

 

통과 이전 단계는 인간의 '몰락'이 심화되는 시기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아의 정체성과 희망을 잃어버린다. 이 시기는 최고의 고통완화 의학과 간호가 필요하고, 존엄성의 측면에서 의연하게 대처하도록 유도한다. 통과 순간은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는 경우로,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고 환자가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통과 이후는 죽어가던 사람이 평온을 찾는 단계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아의 상태에서 보다 자유롭고 본질적인 상태에 자연스럽게 접어든다. 죽음은 개별적인 탓에 이러한 단계는 공식적이지 않고, 드물게 통과 순간에서 임종을 맞이하거나 여러 번 교대로 진행되는 등 다양한 양상이 나타난다.



죽음 현상을 다루기 위한 위의 관점은 지극히 실존적이고 독특하다. 환자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오가는 동안 원초적 불안과 누미노제를 경험한다. 누미노제(Numinose)란 인간이 신적인 존재를 만날 때 나타나는 종교적 경험으로, 그로 인한 전율적인 두려움, 신비로운 경외심 등을 일컫는다.



임종을 앞둔 환자는 위의 단계마다 와해되고 조각된 언어를 사용하지만 영적이고 신비한 상징적인 체험을 표현하기도 한다. 영적인 존재, 혹은 환영을 묘사하거나, 빛과 어둠의 대결, 천사와 악마가 대결이 벌어진다고 호소를 하는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임사체험, 즉 죽을 고비를 넘겼다가 살아온 사람이 저승사자를 봤다는 이야기에 비유할 수 있겠다.

모니카 렌츠 박사는 이러한 환자의 영적 체험을 적절히 도와주는 것도 호스피스의 중요한 과제로 언급한다. 예컨대, 환자의 체험에 알맞는 종교적 의례를 치뤄주거나, 직접적으로 "천사가 올 때까지 당신은 계속해서 대립하고 있어야 합니다.", 대천사 미카엘이 당신을 집어삼키는 용을 물리치기 위해 곧 나타날 거라며 격려하는 식이다. 임종 치료를 위해 구스타프 융의 무의식적 상징이나 신학적 차원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는 죽음이다. 존엄사 찬성이 아니다. 인간의 내적 가치를 지키고, 책임감을 환기시키며, 칸트식의 정언적 존엄을 존중하는 태도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자기중심적인 자아에서 죽음을 수용하는 마지막 성숙으로 심리적 이행을 하는데, 이는 퀴블러 로스의 5단계 과정과 흡사한 면이 있다.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는 저자 모니카 렌츠 박사의 풍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죽음을 실존적으로 이해하고, 임종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환자의 원초적 불안과 영적 체험까지 다룬 점은 독특하다. 책에서 나온 다양한 사례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스캇 펙 박사는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에서 존엄사 반대 논리로 퀴블러 로스의 5단계 과정에서 겪는 인간의 영적 성숙을 들었는데, 모니카 박사는 여기서 더 나아갔다. 물론 저자의 영적인 가치관과 도덕주의적 관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일본은 벌써 사회적으로 임종 치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고 한다. '어디서 죽을 것인가'가 중요한 의제로 거론되고, 재택 요양 등 다양한 대안이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보낼 수 있는 두터운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 호스피스 치료, 정신종양학과 임종학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국가적 지원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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