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사이비 1
간호윤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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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흉흉할수록 고전이 새롭게 다가온다. 온고이지신(溫故以知新),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안다는 <논어>의 글귀처럼, 고전으로 사회을 새롭게 읽고 사회상을 통해 고전을 되새긴다. 고전이 끊임없이 읽히는 이유는 세상은 요지경이기 떄문이기도 하겠다. 신간 <사이비(似而非)>는 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 박사 에세이다. 고전 프리즘으로 세상 읽기다. 저자의 네이버 블로그 '단서장사'(短書長思,http://blog.naver.com/ho771) 기고글을 선별하여 엮었다. 제목은 왜 사이비고 고전독작가란 누구인가.


​"이야기 마디마디는 정의요, 민주화요, 학자의 양심이요, 등으로 종횡무진 널뛰었습니다 …… 그렇게 우리는 사이비였습니다. 그분도 나도 서로의 말은 고담준론이지만, 행동은 영판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p.4~5) 사이비는 지식인의 반성이 아닐까 싶다. 고전독작가란 "옛 글을 읽고 글을 쓰기에 붙인" 직업명이란다. 고전에서 올곧은 기개와 날카로운 정신을 만날수록, 사이비같은 현실이 개탄스럽고 스스로 성찰하게 되는가보다.

사이비란 제목을 짓고 연암 박지원 선생이 그리워졌다고 한다. 꼿꼿한 정신과 사회비판의식에서 현실 담론을 찾는다. 교육부 고위공무원의 망언, 세월호 참사를 보며, 연암이 지은 <민옹전>을 떠올린다. 민옹은 '황충(蝗蟲 : 백성들이 땀흘려지은 벼를 갉아먹는 메뚜기)'를 비유하며, 종로 네거리를 메운 칠척 장신의 황충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그것들을 잡고 싶어도 커다란 바가지가 없는 것이 한"이라 했단다. 예나 지금이나. 신경숙 작가의 표절 시비와 창비 사건 때도 그렇다. 연암은 글쓰기를 소단적치(騷壇赤幟)라 했고, 향원(鄕愿)은 절대 아니되겠다고 말했다. '전쟁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아첨하는 짓거리를 하는 자'를 미워한 비판의식을 배운다.



<사이비>는 시사, 일상, 독서, 학문, 인문학 담론, 리뷰 등 다양한 소재를 풀어낸다. 저자의 해박한 고전 지식과 사회를 보는 식견에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공감한다. 고전은 배울 게 많다. 하지만 제대로 배워야 한다. '감사원장 사퇴의 변을 보고'가 인상적이다. 감사원장 내정자가 지난 수입이 물의가 되어 사퇴하면서, "고니는 날마다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먹칠하지 않아도 검다"고 변을 남겼다. 그러나 원전은 다르다. "이처럼 검고 흰 것은 태어날 때부터 소박함이니 검다 희다 따질 것도 없고 명예가 있다느니 없다느니 시끄러운들 명예를 넓힐 수는 없을 겝니다."(p.314) 이후 구절이다. "공자의 인의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는 말이지, 자신의 청렴과 개결을 증명하는 인용구로 쓰일 수 없다." 아전인수식 고전 인용은 "고전의 명예도 욕되고 본인은 더욱 욕될 뿐이다"(p.314)라고 정확히 꼬집는다.



비록 사이비처럼 말과 행동,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고뇌할 때도 있지만, 간호윤 박사의 고전 사랑과 독서 담론, 지향하는 정신은 500쪽 넘는 책을 정독하게 만든다. 특히 독서론은 책에 대한 사랑과 배움의 자세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비록 재주가 없더라도 그칠 수가 없다. 천재 실학자 정약용 선생은  복사뼈가 세번 헐었다는 과골삼천(踝骨三穿)의 일화를 남겼다. 공자는 제자 염구가 도를 구할 힘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하자,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가던 길을 그만두겠다는 게 아니냐."라고 호되게 꾸짓었다. 연암 박지원은 "쇠똥구리는 스스로 쇠똥을 사랑하여 여룡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롱 역시 그 구슬을 가지고 저 쇠똥구리의 쇠똥을 비웃지 않는다."며 재주를 부러워하지도, 재주 없는 이를 비웃지도 말라고 하였다. 결국 공부란 임제 선사의 선어처럼,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정신이 아닐까. (고전 속에서 거니는 단상(斷想) 몇, -책,벽 지둔의 공) 고전, 인문학은 사람 공부고 내 삶의 주인되는 공부지 싶다. 간호윤 박사의 고전 에세이를 읽고 깨닫는다. 비록 소시민의 삶을 살더라도 나름껏 식견을 넓히고 비판의식을 갈고 닦는 일은 일생의 과제다. 재주 있는 사람이 부럽지만, 한편으론 재주가 없어도 해야 할 일이니 창피하지 않아서 안심이다. 어설픈 위로보다 힐링이 된다.



밑줄 치고 필사하고 싶은 문장과 고전 인용구가 많다.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사서삼경, 노장, 정조 등 종횡무진이다. 그 중에 정조의 충고를 새기고 싶다. 독서 마음가짐을 다잡게 된다. "옛 사람은 일을 만나서 사리를 판단할 때는 반드시 두 겹, 세 겹 빈틈없이 꿰뚫어 보았다. 그런데 지금 사람은 반 겹도 꿰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이 눈앞에 닥치면 망연자실하여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 모른다. 이것은 바로 글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p.348) 반가운 책을 만나니 말이 많아졌다. 서평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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