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는 왜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을까? - 고통과 상처 받은 사람들을 위한 정신건강의학적 처방
최환석 지음 / 태인문화사(기독태인문화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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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꼴통에 대처하는 처세술 관련서로 알았다. 각종 연구 결과 인간관계가 주된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여러 인격장애는 익숙한 용어다. 요즘은 자신의 심리적 문제에 해답을 주는 책, 힐링 서적도 많지만, 이상한 놈 혹은 꼴통을 인지하고 대처하는 처세에 관한 책들이 서점가에 여럿 보인다. 대체로 여러가지 성격장애와 발암형 인간을 특성별로 분류한 다음, 어떻게 대응하라는 식이다.



<내 옆에는 왜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을까?>도 아류라고 생각했다. 사이코패스, 저자의 표현대로 '공감 능력 제로' 인간형을 특별히 분석하였다는 점이 여느 관련서와 차이점이지만. 막상 읽어보니 착각이었다. 기대보다 인간의 공감 능력을 뇌과학, 심리학, 인류학적으로 심도 있게 분석하고, '공감 제로'의 특징 12가지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단순히 공감력과 양심, 도덕성과의 연관성을 넘어서, 공감력이 부재한 부류가 어떻게 행동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이들을 인지하고 휘둘리지 않도록 조언한다. 실제로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이웃은 인터뷰에서, 그는 착하게 생겼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만약 사이코패스가 내 직장 동료, 상사, 암울하게도 내 가족, 배우자이고, 선한 인상이나 거짓으로 접근해 왔다가 나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주기 시작한다면 지옥이 따로 없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에 따르면, 스트레스와 신경증으로 정신과를 찾은 내담자 중에 공감 제로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가 상당하다고 한다. 



저자는 단순히 사이코패스에 한정하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공감 제로'를 설명한다. 뇌과학에 따르면, 공감 능력은 거울 뉴런과 관련 있다. 타인의 행동을 관찰할 때 마치 자신이 경험하듯이 뇌가 반응하게 만든다. 공감력을 발휘할 때, 복내측전전두피질과 안와전두피질 회로가 활성화되고 대뇌변연계에 감정 작용을 일으킨다. 반면에 측두두정접합부와 등측전전두엽은 상대방의 의도를 읽는 데 전문화되었다. 양심과 관련된 공감력은 복내측전전두피질의 활성화와 연관된다. 유전자학으로 보면, 공감 제로는 선천적인 유전으로 태어난 경우가 많다. 그중 공격성과 관련된 것은 MAOA 유전자인데, 만약 이러한 유전인자를 많이 타고난 사람이 부적절한 환경에서 성장할 경우에 반사회적 행동을 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공감을 촉진하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유독 인간에게 공감력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면서 골반이 좁아진 탓에 다른 동물보다 미성숙한 태아를 출산한다. 모성애와 태아의 생존 능력이 필요한데, 바로 공감 능력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공동체를 존속시키기 위해 상호 호혜주의, 사회성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공감 제로는 일종의 기형일까.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선 공감력이 필수다. 그러나 사냥을 하고 전쟁에 나가기 위해선 마냥 공감할 수만은 없다. 냉정하고 잔인한 성향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간이 공동체 내에서 카리스마와 결단력을 발휘하여 지도자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인류가 전쟁과 함께 한 이유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내 배우자, 가족이 폭군이라면 상황은 다르다. 25명 중 1명 꼴로 존재한다는 공감 제로는 인생에서 가급적 피해야 할 상대다. 즐겁게 살기도 짧다면 짧은 삶. 이런 인간에게 휘둘려서 고통받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저자는 12가지 특성을 제시한다.



1. 극단적 사고와 이간질을 잘한다.

2. 이중적이며 위선적인 모습을 취한다.

3, 즉각적인 만족과 자극 추구 그리고 무모한 행동을 저지른다.

4. 충동조절이 안 되는 행동과 동정 연극을 잘 꾸민다.

5. 모순적인 언어 사용과 혼란스러운 표현을 잘한다.

6. 무책임한 행동을 쉽게 한다.

7. 지나친 강박적 성향이 있다.

8. 자기애적이며 과대망상적 사고를 한다.

9. 어색하고 과한 웃음을 짓는다.

10. 냉담하고 차가운 모습을 보인다.

11. 향수를 지나치게 뿌린다.

12. 의외성과 우연성을 지닌다.



위의 특성을 자주 보인다면 '공감 제로'를 의심해야 한다. 이들은 오히려 타인의 측은지심, 공감력을 이용하여 자기 잇속을 챙기고 잘못을 용서받는다. 그들은 잔인한 장면을 보거나 반사회적 행동을 접했을 때, 오히려 심리적으로 차분해졌다. 일반인은 당연히 긴장하고 불안감을 느낀 상황이었다. 거짓말에 능숙하고 잘못을 저지른 후에 뻔뻔할 수 있는 이유다. 비양심적 행동에 대한 필터, 공감력이 부족하므로 거리낌 없이 순간의 욕망에 충실하다. 그들은 먹잇감을 찾는다. 특히 어렸을 적 학대나 분리불안을 겪은 사람 중에는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갖는 경우가 있는데, 공감 제로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교도소 죄수 가운데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에게 실험을 한 결과, 걸음걸이나 행동거지 등을 보고 희생양 유형을 쉽게 찾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책 제목대로 '내 옆에는 왜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을까?'라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자신이 피해자 유형에 가깝지 않은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범죄자가 되지 않는다면, 공감 제로는 능력자로 칭송받기도 한다. 자기 이익에 철두철미하고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된다. 특히 기업, 금융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과감한 투자, 무서운 집중력, 남을 이용하는 높은 협상력을 보인다. 일반인과 사이코패스 집단을 연구하였는데, 그들은 처벌에는 무디지만 보상에는 일반인보다 훨씬 민감했다. 이익이 된다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이런 성향이 일시적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조직 전체을 무너뜨리는 기제로 작동한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코퍼릿 사이코패스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명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다. 단지 공감 제로라고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공감 부족을 오히려 찬양하는 일면에는 자본주의 이윤추구 사회, 경쟁 사회의 맹목적이고 무자비한 냉혹함이 밑바탕에 있다. 그것이 문제다.



사이코패스, 혹은 공감 제로 인간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들의 특성을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 상당수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여성이다. 상대방이 공감 제로 성향이 다분하다면 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타인의 착한 성향을 이용하여 거짓말, 잘못된 죄책감을 심어 자기 욕망대로 타인을 조종하려는 그들. 공감 제로에겐 초기 경험이 중요하다. 성장기에 제대로 된 도덕 교육을 받으면 정상인과 함께 공생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 위주의 교육과 사회 분위기는 공동체의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고, 오히려 사이코패스가 가진 욕망 추구, 냉정함을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경고한다. <내 옆에는 왜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을까?>를 읽으면서 인류학적으로 사이코패스가 왜 발생했으며, 일반인과 어떻게 다른지를 과학적으로 알게 되었다. 12가지 특성과 함께 제시된 사례를 읽으면서 소름 끼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코퍼릿 사이코패스 성향을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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