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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 처음 만나는 에티카의 감정 수업
심강현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스피노자를 안 들어본 사람은 드물다. 진위여부 논란은 있지만, 자주 회자되는 명언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남긴 철학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막상 그의 철학은 난해하기로 정평이 났고, '능산적 자연', '소산적 자연' 같은 개념만 학창시절 윤리 수업에서 수박 겉핧기로 짚고 넘어갔다. 대표작 <에티카>는 스피노자가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윤리학" 이라 할만큼 수학 논증식 정리와 증명의 연속이다.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은 이러한 스피노자 철학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었다. 저자 심강현씨는 의사로, 의대 재학 시절 유독 정신분석학, 심리학 강의에 심취했고, 철학, 역사와 같은 인문학까지 관심을 넓혔다. 지금은 의료와 인문, 철학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책은 문학적인 문장으로 스피노자 철학을 물 흐르듯 전개한다. 철학 원전의 해설서는 외려 원작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우를 종종 범하는데, 마치 저자가 철학을 충분히 음미하고 내적으로 숙성시킨 것처럼 쉽고 아늑하다.
하룻밤에 다 읽었다. 철학이 따뜻한 힐링과 용기를 북돋을 줄 몰랐다. 고단한 삶 속에서 후회와 자기 연민에 휩싸이기도 하고, 때로는 미움과 슬픔으로 아파한다. 스피노자는 독자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려놓으세요. 당신 어깨의 짐을. 그것으로 이제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힘들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 뿐이니까요." (p.23)라고. 어려운 철학 속에는 다정한 위안이 들어 있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욕망과 다양한 감정을 다룬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무의식적인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다. 월요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길에 오르는 것은 쉬고 싶은 마음보다 경제적 안정에 대한 욕망이 컸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이미 무의식적 욕망에 의해 정해져 있으며, 그의 세상에서 자유의지란 허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능력이 '역량'인데, 그때 그때 사람의 욕망과 역량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 잘못했던 당시로 돌아간들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세상은 이러한 필연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우연은 없다. 그러니 후회하고 자책한들 무엇하리!
스피노자는 자기연민보다 역량 기르기를 권한다. 사람의 근본적인 욕망은 '코나투스', 즉 자기보존의 욕구, 삶에 대한 욕구다. 욕망이 충족될수록 기쁨을 누리기에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역량의 기준이 무엇일까. 바로 이성이다. 스피노자에게 이성은 욕망의 우위에 있거나 그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나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력자이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더 넓은 안목을 가질수록 욕망의 크기와 질 또한 높아진다.
욕망이 충족될수록 기쁨을 누리듯, 감정은 욕망의 표현이다. 스피노자는 사랑부터 시작하여 증오, 무관심까지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이야기한다. 슬픔, 자기연민, 교만 혹은 경쟁심, 질투 등 그가 설명하는 감정의 연원과 이유들이 단순히 피상적인 철학을 넘어 하나하나 납득이 되고 깨달음을 주었다. 특히, 기쁨과 사랑을 북돋아주는 관계를 '결합관계'. 슬픔을 주는 관계를 '해체관계'로 인식했는데, 전자는 코나투스를 늘리고 후자는 감소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은 정해져 있지 않고,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은 누군가에겐 착하지만 특정한 상황에서 해체관계를 맺었을 수 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겐 선하지만 더러는 슬픔을 준다. 이러한 관계의 성찰은 독자에게 반성과 관용의 메시지를 내민다.
스피노자는 근본적인 감정을 사랑이라고 보았다. 미움과 슬픔은 사랑의 눈금에서 멀어진 감정일 뿐이다. 철학을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phy)으로 정의하듯, 무언가를 이해하는 행위의 밑바탕에도 사랑이 깔려 있다. 그에게 이성과 사랑은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단순히 세상의 편견과 수동적인 정념이 주는 '혼란된 생각'을 넘어, 필연적 인과관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교감, 공감하는 '공통 개념'을 가능케 하는 것도 사랑이란 감정 덕분이다. 나아가 공통감각이란 단계적인 이성 인식에서 우주와 신(인격신이 아닌 능산적 자연)에 대한 지적 사랑까지 도달하는 '직관지'도 사랑과 다르지 않다.
스피노자 철학은 기하학적 외피 안에 사랑, 공감, 자유를 담고 있었다. 그에게 사랑, 공감, 자유는 서로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은 이렇듯 딱딱한 껍질 속에 숨겨진 따뜻한 치유의 과실을 독자에게 맛보인다. 종교적 파문을 당하고 평생 광학 렌즈를 깎으며 힘든 삶을 살다 간 철학자의 정밀하고도 긍정적인 메시지로 힐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는 자신과 같이 어려운 경에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말할 것이다. 후회와 자기연민의 시간을 넘어, 타인의 편견과 선입견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삶의 주인된 능동적인 기쁨을 누려보라고. 오히려 사랑, 관용과 용서의 마음가짐이 생기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