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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의 심리학 - 두 번째 가족을 맞이한다는 것
크리스토프 포레 지음, 김미정 옮김 / 푸른숲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으나 적지 않은 난관 앞에서 힘들어하는 당신을 위해 이 책을 썼다. 나의 목표는 남여를 불문하고, 당신이 아버지든 엄마든, 새아빠든 새엄마든 자신의 심리와 감정의 현주소를 더 잘 들여다보고, 현재 겪고 있는 인생의 면면을 더 잘 이해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p.6)
요즘은 재혼가정을 심심치 않게 볼수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우리나라의 조이혼률(인구 1000명당 이혼건수)은 2.3으명로, OECD 국가 중 9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이혼이 드문 일이 아닌 만큼, 재혼가정도 늘어나고 있지만 막상 재결합때문에 빚어지는 가족 간의 문제와 해결책에 대해선 의외로 무관심하다.
아픔을 겪은 후에 인연을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지만,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다. 초혼보다 신경쓸 일이 더 많다. 특히 서로의 자녀 문제는 친자녀든 새자녀든 풀기 어려운 숙제다. 재결합 당사자들은 어른이지만, 새로 맞닥들이는 현실 앞에선 당황스럽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금전문제부터 전 배우자와의 관계까지, 무엇보다 나와 상대방 자녀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재혼가정 멘토나 적어도 참고할 만한 매뉴얼이라도 있었으면 오죽 좋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은 네 선택이니 스스로가 책임지라거나, 다만 남의 자식 키우는 일이 어렵다고 하지 않느냐며 감정적으로 묵살한다.
<재혼의 심리학>은 이러한 문제를 다룬다. 앞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자녀에 대하여 예민한 문제를 꺼낼 때 방어적으로 나오는 배우자와 갈등을 일으킬까 두렵고, 자기를 아이와 다투는 미성숙한 사람으로 볼까봐 무섭다. 시부모님이나 주변 친척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도 겁난다.(p.56) 하지만 문제를 회피하고 나를 희생시키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재혼 가정의 파경률이 초혼보다 높은 데는 이유가 있다.
재혼 가정에서 당사자가 느끼는 죄책감, 가정에서 권위와 입지를 찾지 못한다는 초조감과 우울함, 의붓자녀나 상대방의 전 배우자에게 느끼는 시기와 질투심을 직설적으로 언급한다. 재혼 가정을 꾸리면서 인간의 본질적이고 당연한 감정 트러블을 겪지만, 현실에선 이러한 갈등을 금기시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를 초래한다.
무엇보다 책은 갈등의 양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문제에 대한 조언을 제시하는 것이 장점이다. 새엄마, 친엄마, 새아빠, 친아빠의 입장을 나누어 그들이 겪는 문제점과 다양한 감정들을 허심탄회하게 밝히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조언한다.특히 재혼 가정의 자녀들이 겪을 상처와 감정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부모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다룬 대목은 유용하다. 특히나 저자는 유명 프랑스 정신과 의사임에도 책의 내용이 낯설지 않다. 개인주의가 강한 프랑스에서도 재혼 가정이 겪는 관계 갈등들이 우리나라 정서와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랍다. 반면에, 프랑스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겪는데, 관계지향적인 문화 속에서 우리나라 재혼 가정 당사자들은 얼마나 더 큰 심리적 어려움과 갈등을 겪을지 상상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재혼 가정을 꾸린 지인 중 한명은 어려움을 토로한다. 아이가 하필 밥상머리 앞에서 기지개를 켜고 다리를 떠는 것이 보기에 거슬린단다. 내 자식같으면 간단히 훈계하고 말 일을, 재혼 가정의 당사자들은 속으로 끙끙 앓으며 정서적 갈등을 키우는 것이다. 책은 말한다. 당신은 완벽하지 않고, 친부모의 자리에 과도한 욕심보다 새부모의 위치를 인정해야 한다. 아이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관대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오히려 아이에게 갈등 상황을 대비하도록 알려주고, 일관적인 가정의 규칙들을 고수해서 아이에게 안정감을 줘야 한다. 무엇보다 부부끼리의 신뢰관계를 자녀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나 모든 새부모가 재혼 가정에서 잘해보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의붓자녀들에게 악의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어른들도 있다. 실제로 새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잊을 만하면 기사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재혼의 심리학>은 안타깝지만 악의적인 학대 부모를 타겟으로 하지 않는다. 적어도 책을 찾고 읽는 독자라면 바람직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선의를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배우자가 내 아이를 학대하는 정황이 보이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배우자와 신뢰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 등의 논의를 하지 않는 점은 솔직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