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진정 자립을 한다는 것. 사람이 진정 어른이 되어 자기를 책임진다는 것은 간단하더라도 자기가 먹을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포함돼. 아주 중요한 요소지."(p.239)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삶이 깃든 레시피. <딸에게 주는 레시피>이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이후 공지영 작가가 맏이딸 위녕에게 전하는 편지글 형식의 두 번째 에세이이자, 엄마로서 뜻 깊은 레시피들을 담았다. 나는 아들래미인지라 모녀 간 정담이 오글거리고 어색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러나 작가가 겪은 곡절과 마음을 담은 멘토링은 공감이 되었다. 무엇보다 일용할 양식을 스스로 만들어 먹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지가 놀랍다.

"얼마 전 어떤 사회복지사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독거노인 중 남자 노인의 자살 충동 중에는 먹거리를 한 번도 책임져보지 못해 이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절망도 상당히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더라." (p.239)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는가는 생각 이상으로 사람의 자존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마치 삶이 지치고 귀찮을 때, 허기를 간단히 떼우기 위해 인스턴트 음식으로 연명하는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작가가 굳이 레시피를 딸에게 가르치는 이유. 자연 재료로 간단하지만 건강한 레시피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점이 아닐까. 고난과 역경은 늘 있지만, 그럴수록 함부로 먹거리를 먹고 스스로 비하하며 존엄성을 깎지 말라는 엄마의 따뜻하면서도 따끔한 마음. 실로 먹거리는 생명과 연관되어 있으니, 건강한 자연 재료를 먹고 힘내라는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그렇다고 거창한 레시피를 다루지는 않는다. 요리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10분에서 15분 사이의 초간단 요리법들이 주류를 이룬다. 음식도 가지가지. 안심 스테이크, 알리오 올리오부터 어묵두부탕, 시금치 된장국까지 ​한식, 양식을 오가는 27가지 요리들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 내가 이 간단한 시금칫국을 끓이는 법을 모르고 살았듯이 끓이기 전에는 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쉽고 간단해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기 전에는 없는 것이지."(p,102) 요리법 하나하나에는 작가의 삶과 성찰이 담겨 있었다. 특히 시금치 된장국에는 친정 엄마와의 애증이 담겨 있었는데, 딸이 만드는 법을 물었을 때의 심정이란. 작가의 뛰어난 글솜씨로 표현한 문장을 너머 마음으로 느끼게 했다.

요리법에 담긴 조언들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삶이 다사다난해서일까. 특히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 스스로 자기의 영역을 가지고, 남의 영역을 인정하고 이해할 줄 알라는 일상의 진리도 상투적이지 않다. 다만 이해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러기에 사귀지 사람들에 대한 충고를 한다. 폭력적이니 사람, 자존감이 낮은 사람, 불행한 사람은 절대 만나지 말라고 한다. 때로는 딸이 연애와 실연에 지혜롭게 대처하기를 바라는 조언들. 그리고 스스로 일어서기와 노동이 삶에 주는 신성한 건강함까지. 한편으론 작가가 직접 살갗을 맞대며 깨달은 삶의 날것같은 성찰들이라, 아픔이 느껴진다. 작가가 직접 겪은 아픔의 시간들을 푹 고아서 딸에게 보약을 주는 것일까.


"위녕,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있게."(p.27) 실로 산다는 것은 의미를 모르는 부조리와 문제의 연속이고, 더구나 예측할 수도 없다. 작가가 서른 초반 파경을 맞고 어린 딸과 더불어 친정집에 빈손으로 돌아갈지를 어떻게 알았을까. 애증의 관계였던 친정 엄마에게 손을 벌리며 죽고 싶은 충동이 순간순간 일어난 시절. 그리고 그 후에도 다사다난했던 작가의 인생이 담긴 레시피이기에, 소금 한 꼬집, 간장 한 숟깔까지 허투루 다가오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시금치 된장국과 어묵두부탕을 끓여보고 싶다. 삶의 애증이 따뜻하고 정감있게 승화된 요리를 직접 보글보글 끓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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