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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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감상한 기분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은 마치 영상을 보는 듯이 생생했다.   맹인 프랑스 소녀와 독일 고아 소년이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 한 순간이지만 가장 빛났고, 그래서 더 애틋했다. 2015년 퓰리처상, 카네기 메달상 수상, 그리고 60주 연속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라는 화려한 실적. 무엇보다 영화화가 진행되어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개봉이 되면 다시금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않을까. 


소설은 1944년 8월 7일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 해안의 작은 도시 '생말로'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전쟁의 포화와 폭격이 빈번한 도시. 맹인 소녀 마리로르 르블랑은 폭격의 굉음을 들으며 아버지가 만들어준 도시의 모형을 숙지하고 있다. 독일군 소년 베르너는 아비유(꿀벌) 호텔이 폭격으로 붕괴되자 지하에 갇힌다.


작품은 시간을 이동하며 마리로르와 베르너를 번갈아가며 조명한다. 6살 선천성 백내장으로 맹인이 된 마리로르. 아버지가 자연사 박물관에 근무하며 외동딸을 지극정성으로 살핀 덕분에, 마리로르는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 '80일 간의 세계일주'를 점자책으로 읽고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접하며 감성적으로 풍부한 생활을 누린다. 한편, 독일에선 베르너가 동생 유타와 함께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베르너는 하인리히 헤르츠의 '역학의 원리'를 품속에 끼고 살며, 라디오에서 프랑스어로 나오는 과학이야기에 심취한 소년이다. 과학과 기계에 관심이 많고, 특히 라디오 수리는 동네에서 정평이 날 정도였다.


전쟁이 발발하고 소년과 소녀의 생활을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마리로르는 아버지와 함께 생말로로 피난을 가고, 베르너는 국립정치교육원 원생에서 기술병으로 전선에 참전한다. 소설은 생말로를 배경으로 맹인 소녀 마리로르가 프랑스인의 입장에서 겪는 2차세계대전의 참상. 엔지니어가 꿈인 베르너가 독일군이 되어 겪는 전쟁의 잔혹함을 주로 그린다. 무엇보다 작품의 구성이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전개하지 않고, 시간을 오고 가면서 두 소년 소녀를 조명하는 덕분에, 마치 퍼즐 조각 조각으로 전체적인 얼개를 맞추는 듯이 긴장감과 속도감 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특히, 독일에서 히틀러 독재가 공고해지고 국가 전체적으로 제국주의의 물결이 만연해지고, 프랑스가 전쟁으로 붕괴되고 나치 치하로 편입되는 시대적 상황을, 직설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반면에 맹인 소녀와 꿈으로 가득한 소년을 그리는 문체는 너무나 서정적이었다. 그래서 더욱 애잔했다. 선천성 백내장으로 맹인이 되었지만 박물관과 책을 통해 세상의 빛을 알아가는 소녀가, 풍족하지 못한 보육원 생활 속에서 동생을 보살피며 과학자의 꿈을 키우는 소년이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꿈과 낭만을 가졌기에 전쟁으로 고통받고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아팠다.


특히 작은할아버지 에티엔이 라디오 송출기로 레지스탕스 활동에 조력하게 되는데, 마리로르가 송출기에 '해저 2만리'를 읽는다. 마침 붕괴된 호텔 지하에서 베르너가 라디오를 통해 마리로르의 나레이션을 듣는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정적이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영화 <제이콥의 거짓말>에서 나치 치하 하에서 라디오 소지는 중죄였듯이, 소설에서도 라디오는 그 자체로 자유의 상징이자 억압의 대상이었으며, 긴장감 있게 인물들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풍부한 감성과 꿈을 가진 두 소년 소녀가 겪는 전쟁의 참상을 서정적이면서도 긴장감 있게 다룬 <우리가 볼수 없는 모든 빛>. 비극적이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 "뇌는 완전한 암흑 속에 갖혀 있습니다....뇌는 단 한 점의 빛도 없이 살아가면서 무슨 수로 우리에게 빛으로 가득한 세계를 지어 주는 것일까요?"(p.80) 베르너는 보육원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이 질문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읽고 독자 나름의 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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